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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박태양 칼럼] “너의 뜻대로 살라”

사진: Jared Rice on unsplash

눈먼 기독교(27)

사탄교를 아는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탄을 예배하며 그에게 영혼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은 기독교의 예배와 의식(儀式)을 변형시킨 자신만의 신앙 체계가 있으며, 그 내용은 악마적이며 오컬트적이다.[1] 지금도 그들은 갓난아기를 죽여 사탄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고[2] 각종 주술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구약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러한 일들이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 한복판에서 비밀리에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탄교의 계율 중 제1계명이 뭔지 아는가? 바로 “너의 뜻대로 살라”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거짓말을 사탄은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을 구체적으로 세상에 적용시킨 사조(思潮)가 바로 뉴에이지(New Age)다.

문자적으로 ‘새 시대’를 의미하는 뉴에이지는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이 시대의 주류 사상으로 등장하였다. 뉴에이지를 종교적으로 추앙하고 있는 자들에 의하면, 과거 2천년 동안은 점성술이 말하는 ‘물고기자리’ 시대였는데, 지금은 ‘물병자리’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물고기’는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교회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물고기가 고대 헬라어로 ‘익투스’인데 그 글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머리글자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이러한 기독교의 물고기자리 시대가 무질서, 혼돈, 어둠의 시대였는데, 물병자리 시대는 사랑, 평화, 빛, 깨달음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기독교의 영향력과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고, 대신 종교가 아닌 사상이 종교의 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뉴에이지다. 뉴에이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반(反)기독교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특별히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서 그 영향을 급속도로 확산시키고 있다.

뉴에이지의 핵심 사상은, 한 마디로, 사람이 신(神)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같은 신을 찾지 말고 스스로 신이 되라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사람이 각자 신이므로 서로에게 자신의 신을 강요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므로 절대적인 그 무엇을 내세우면 안 된다. 절대적인 신은 ‘절대로’ 없고 모두 상대적인 신이므로, 기독교의 신은 폐기 대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죄’와 ‘구원’ 역시 상대적인 의미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관용’의 가치는 부각되고, 모든 종교와 사상과 가르침이 다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이 관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가 된다. 그래서 기독교의 비관용적 태도와 독선적 진리관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으므로 비판받는다.

뉴에이지는 성경의 가치를 다른 종교 경전 수준으로 여기므로 당연히 그 세계관이 성경적 가치와 첨예하게 차이가 나는데, 기독교의 핵심 주제에 대해서 뉴에이지가 말하는 것을 요약해서 살펴보면〈표-기독교와 뉴에이지의 핵심 주제〉와 같다.[3]

인격적 절대 신을 배격하는 잡탕 신론

뉴에이지는 유일신 혹은 절대 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이 신이고 세상 모든 것에 신이 들어있다는 범신론을 주장한다.

내가 느끼기로는 우리의 존재 영역이, 상식적이고 단순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부터 전혀 다른 존재의 차원으로 돌입하는 것 같다. … 우리가 물질계에 속하는 것보다는 이 차원에 속하는 것이 보다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상의 세계는 본래 친숙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 나는 이런 우주의 보다 높은 차원을 신이라고 하겠다[4]

이는 윌리엄 제임스라는[5] 철학자가 한 말인데, 그는 우주적인 그 무엇을 신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인격적인 절대 신을 믿고 있는 기독교와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사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목회자 중에는 이러한 우주적 그 무엇이 하나님이라는 사상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

(이 우주엔 곽 차 있는 어떤 기운이 있는데) 저는 그 근원적 에너지를 성서가 말하는 ‘사랑의 에너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 첫 장 첫 구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신앙 고백적으로 선언하였고, 그 하나님은 신약성서 목회 편지 속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태초에 천지만물이 사랑의 에너지(근원적 에너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6]

강원용 목사에게 하나님은 우주적 에너지다. 말씀(Logos)이자 삼위일체로 존재하며 인간들과 교제하는 인격적 하나님이 아니라 그냥 우주의 에너지라는 형이상학적 존재일 뿐이다. 강 목사는 과학을 신봉하여 진화론을 수용하며 이것을 창조론과 조화시키려는 시도도 하였는데, 이러한 우주적 에너지 개념이 바로 그러한 진화론적 사고의 결과인 것이다.

강 목사처럼 비인격적인 신 관념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Being)를 하나님으로 지칭하고, 시인 김지하는 ‘생명’(Life)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샤르댕과 화이트헤드 같은 과정신학자들은 ‘생성’(Becoming)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어디 이들 같은 인본주의자들만 그러한가? 혼합주의에 빠져있는 미국의 노먼 빈센트 필 목사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신학적으로 정의되는 어떤 존재인가? 그분은 신학으로 정의되기에는 너무 크시다. 하나님은 생명 에너지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에너지이시다. 당신이 하나님을 당신의 숨을 통해 들이마심으로써 당신은 하나님의 에너지를 마음에 그릴 수 있게 되고 당신은 새로운 에너지로 재충전될 것이다.[7]

이 말은 어떤 힌두교 구루가[8] 한 것이 아니라 개신교 목사가 한 것이다. 힌두교 사상을 빈센트 필 목사가 알고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는 뉴에이지 영성에 이미 함몰돼있는 것이다. 기독교지만 실제로는 비인격적인 하나님을 주장하는 모습은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1991년에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총회에서 하버드 신학대학교의 크리스터 스텐달 교수는 “생명을 위한 에너지-오소서 성령이여, 온 우주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앞의 강원용 목사나 노먼 빈센트 필 목사와 유사하게 스텐달 교수는 성령 하나님을 우주의 에너지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인격적인 하나님 관념에는 죄, 속죄, 구원, 은혜 같은 성경적 개념이 자리 잡을 여지가 전혀 없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신을 비인격적 존재로 규정하는 시도는 종교적 접근 외에도 철학과 사상의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왔다. 20세기 서구 철학사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물질계 구조의 모체다. 물질계는 불완전하다. 모든 사물의 바탕에 어떤 본질이 있어야 완전해지는 것이다. 그 본질이 바로 신, 즉 원초적 본질이다.[9]

비인격적이지만 모든 사물에 본성을 부여한 미지의 원초적 본질이 곧 신이라고 화이트헤드는 말하고 있다. 그에게 인격적이고 절대적인 신은 넌센스다. 그에게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게 있어 진리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다. 만약 신이 있더라도 그 자신이 우주와 같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것을 일컬어 소위 과정신학(철학)이라고 하는데, 이 변종 신학은 하트숀이라는[10] 철학자에 의해서 처음 주창되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우주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경험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결국 신의 불변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트숀의 과정신학은 현대 철학에서는 물론 현대 종교에서도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독교 서적의 이름으로 출판된 다음의 글을 보라.

나는 분명하게 말한다. ‘신이 꼭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우리들이 분명하고도 엄연하게 맞닥뜨리는 세계 안의 악의 발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그로 인한 하나님에 대한 제약 역시 불가피하다는 사실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신이라는 존재가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 신조차도 세계의 불완전함에 대해 그 영향을 불가피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결국은 신 역시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세계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11]

이 글을 쓴 사람은 신학과 불교학을 모두 공부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름 두 종교를 비교하고 분석했지만, 결국 그에게 기독교는 어서 불교의 품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종교일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조종하려는 신이지만, 진짜 신은 개인이 설사 악한 선택을 하여도 그것을 존중해주는 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 비극과 부조리가 이렇게 많은 것을 보아 신은 절대로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신은 부족하고 제약이 많은 존재라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런 신을 말하고 있다. 자기 의지가 있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신, 성품에 문제가 있어서 그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기도 하는 그런 신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신이 완전한 능력자고 사랑이 충만한 존재라면, 왜 이 세상에 이렇게 악이 난무하고 고통이 즐비한 것인가 하는 이슈를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한다. 신은 능력은 있지만 사랑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사랑은 있지만 능력이 부족하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 비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견해다. 악과 고통은 인간의 죄의 결과이며, 불순종이라는 죄를 없이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음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은 반드시 영원히 없어진다. 그때가 되면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기에 세상은 자기 나름대로의 신 관념을 만들어 그것이 진짜인 양 떠들어 대는 것이다.


[1] occult,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

[2] 필자는 미국 풀러 신학교 유학 시절, 찰스 크래프트 교수의 강의 중에 사탄교의 인신공양(人身供養)을 위해 돈을 받고 임신을 하여 자신의 아기를 팔아넘긴 십대 소녀에 대한 동영상 자료를 보았다.

[3] 『Rose Book of Bible Charts, Maps & Time Lines』, Rose Publishing, 168-171쪽 (필자 번역)

[4] 매릴린 퍼거슨, 『뉴에이지 혁명』, 정신세계사, 484쪽

[5] 실용주의 철학을 확립한 미국의 철학자 겸 심리학자

[6] 강원용, 『내가 믿는 그리스도』, 대한기독교서회, 54쪽

[7] 옥성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185쪽에서 수정, 발췌, 인용

[8] guru, 힌두교나 불교의 영적인 스승 또는 현자

[9] 매릴린 퍼거슨, 『뉴에이지 혁명』, 정신세계사, 485쪽

[10] 찰스 하트숀, 미국의 철학자·신학자·교육자

[11] 미선, 『기독교 대전환』, 대장간, 299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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