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손은식 칼럼]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

▲ 오늘도 거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 사진: 손은식

민감하고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 하지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지난 50여 일 동안 태국에 와서 만난 태국 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만나 30분에서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을 찾기 힘든 국가이기에 만났던 현지인은 모두 불교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태국에서 10년 이상 활동하신 선교사님을 두 번 만났고, 한 분과는 한두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분의 한국분을 만났습니다. 은퇴 후 태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하고 계시고 교회는 다니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현지 한인들의 생활 모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대만, 중국, 이스라엘, 이태리 로마, 이집트를 방문하여 그곳의 현지 선교사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래 글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선교지에서 볼 수 있었던 공통적인 이야기를 태국 내에서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했습니다.

태국의 200년 선교 역사

​태국의 개신교 역사는 200년에 가깝습니다. 한국보다 60년 가량 앞섭니다. 그런데 현실은 태국 총인구 7000만 명 중 크리스천은 60만 명, 그 중 반은 소수민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국 내 주류인 타이민족 5000만 명 중 크리스천은 30만 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한국의 선교 역사와 동일하게 태국도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 미국, 유럽 개신교 각 교단에서 200년 전부터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과 그 결과물을 볼 때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200년의 선교 역사를 제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결과는 아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모습이 어떤지가 중요하고, 이제부터 무엇을 할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프레이포유연합이 관심을 갖는 부분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마음은 태국 내 어디를 향하고 있고 그 시선은 어떠한지가 지금 중요합니다.

태국 젊은 청년과의 대화

태국 내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시선은 그 수치가 말해주는 대로 젊은이들은 기독교에 대해 별 관심과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윗세대로 올라가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입니다. 대화를 나눈 청년 중 한 명은 대화 가운데 제가 교회와 예수님 얘기를 꺼내니 자연스럽게 본인의 친척 중 누군가가 교회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자 그 친척이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유가 자녀가 중병에 걸리자 주변 누군가 종교를 바꿔보기를 권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개종 뒤 병이 나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잘 모른다고 한 뒤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10대 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대마를 피운 이야기며,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의사로부터 경고의 말을 듣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 결혼을 했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임신을 하면 아내가 위험할 수 있어 자녀는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이제 33세 밖에 안 되었다는 말에 잠시 충격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말은 본인은 자녀가 없기에 친척들에게 재산 다 물려준 후 60세까지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자녀의 출산을 위해 기도해주겠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좀 더 나누긴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 청년을 지금 만나주세요!”

​위와는 다른 상황에서 만난 태국의 젊은이들도 위 대화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누군가 한국인이 들었다면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에 뭔가 모를 슬픔이 묻어나는 듯하여 안타까웠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현 생활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2014년 태국 내 군부가 쿠데타로 잡은 정권하에서의 태국 생활에 여러 불만과, 앞으로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그들의 현재 모습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선교사님과의 대화

태국에서 10년 이상 현장에서 선교하신 선교사님을 만나 그분께 프레이포유의 거리 사역을 말씀드렸고, 선교사님을 만난 날 아침에도 거리를 걸으며 거리의 분들께 선물을 드리고 기도해드렸다고 하자, 지금까지 태국에서 이와 같이 선교했던 선교사님은 볼 수 없었다 하시며 본인도 환경과 여건이 된다면 교회 밖 현장 사역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 아래의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태국에 왔던 선교사님들이 이곳은 전도가 힘들다며 많이들 철수하셨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태국 내 불교의 이미지가 기독교보다 더 좋기에 선교가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태국 내 대부분의 봉사 단체는 불교 재단에서 운영됩니다. 동네마다 있는 사찰에 노숙인이 가면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습니다. 사찰의 승려는 승복 한 벌만 입고 거리를 맨발로 걸으며 깡마른 모습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니 기독교 선교사, 목사의 모습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선교사님이 태국으로 파송 받아 오면 처음 하시는 일이 집을 구하고 차를 구하고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위의 일도 중요합니다. 위 세 가지 일을 마치게 되면 이전 선교사님이 하시던 사역을 물려받고 교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태국 현지 신학생, 목사님들이 한국 선교사는 돈이 많으며 그들을 파송한 한국 교회는 부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질문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그 돈을 주질 않느냐? 라고 합니다.”

선교사님도 처음 몇 년간은 태국 현지 목사님을 만날 때 선물을 가져다 전해드렸는데, 돈으로 선교하는 것에 열매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는 돈이 아닌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고 합니다. 한 번은 태국 현지 목회자 모임에서 이전에 반갑게 인사했던 태국 목사님을 만났는데 선교사님께 인사를 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아예 본체만체 무시하고 지나가더라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많이 주는 한 선교사님께 다가가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태국의 얼마 되지 않는 교인들의 영적 지도자인 태국 목사님들은 우리네 선배 선교사들이 뿌려 놓은 돈으로 하는 선교의 결과물을 지금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이 전체 태국 교회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변질된 모습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는 1950년대 후반 미국 장로교 선교부가 수백 년간 이어져오던 해외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꿔 선교 헌금으로 그동안 세우고 운영했던 학교, 병원 등 모든 시설, 물적 자산을 현지인에게 전부 이양해준 일이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승계이자 바람직한 선교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름다운 유산을 후대에서 잘 이어가질 못하고, 태국 기독교 총회 총무가 수십 억의 총회 돈을 미국의 개인 계좌로 송금하고 도망가 버렸다는 등 갖가지 총회 내 비리와 횡령 사건이 터집니다. 현지 교단 총회장이 되면 그의 집은 대문에서 집까지 가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등 태국 사회 내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함께 교회 내에서도 오래전부터 심각한 병이 되어 자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프레이포유연합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

기독교는 천지를 만드시고 살아계신 유일신 하나님, 십자가 대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을 믿고 동행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기독교의 진리를 문자적인 정보로만 전하는 것은 아닌지요? 다른 말로 4영리를 펴놓고 만나는 사람에게 읽어주는 것으로 전도나 선교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청년 시절 무수히 전해보았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년간 수많은 선교사님들과 그분들이 길러낸 신학교의 제자들도 그와 같이 태국 내에 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위 방법으로 부족하다는 분은 또 다음의 방법을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이가 직접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초월적인 방법으로 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태국은 귀신과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나라로 이미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적의 이야기, 신비한 체험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도 그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기독교와 비슷한 영적인 체험을 말하고 있고, 축사와 신유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는 프레이포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저는 시공을 초월해서 언제나 바른 선교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생애 3년간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거리를 걷거나 성에 도착하여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백성이 모여 있을 때에는 그들을 향해서 언제나 “너희 믿음이 회칠한 무덤과 같고, 겉과 속이 다르다.”며 책망하셨고, 제자들을 향해서는 “믿음이 없다.”며 슬피 여기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외 시간 천대받고 소외받는 이웃들을 찾아가서는 항상 그들을 마음으로 안아주시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또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도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교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거리로 나와 ‘거리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 태국의 거리의 분께 선물로 전하는 100밧은 한국돈 1만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 손은식

​* 맨발로 이동 중인 태국 승려의 뒷모습, 사진을 촬영 후 다시 보니 검은 발바닥이 참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사진: 손은식

​* 아래는 윗글을 기록하며 참고했던 기사와 글입니다.

​https://naver.me/5mg2fxOy

https://ryeopo.tistory.com/1969

[복음기도신문]

손은식 목사 | 2013년 말부터 서울 시내의 노숙자와 홀로 사는 어르신을 돕고 기도하는 프레이포유 사역으로 이 땅을 섬기다 2023년 초 태국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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