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에티오피아 통신] 불의에 대항하던 목사, “이제는 복음전도자로만 살겠다”

▲ 교회 연합 예배 사진: 다니엘 정 제공

평화의 허울 속에 감출 수 없는 진실

연방 정부와 암하라 민병대 간의 1차 내전은 2주 만에 끝나버렸다.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장거리 버스 길도 다시 열렸다고 한다. 너무 싱겁게 암하라 민병대가 손을 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에티오피아 공영 뉴스에서는 서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모양이다. 그런데 암하라 사람들은 만나면 이런 합의에 불만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합의했다고. 이유가 있는 불만이다.

한창 내전 중에 연방 군인들이 차 위에 올라타고 시내를 질주하면서 허공을 향하여 총을 쏘아 댔다. 그런데 어느 날 군인들이 쏘아 올린 총알 중 한 발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불행히도 아이 셋과 평화롭게 있던 한 남성의 머리를 관통하고 말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졸지에 어처구니없는 일로 한 가족은 가장을 잃어버렸다. 그의 세 아이는 그들의 눈앞에서 황당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이 소문이 암하라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이들에 대한 배상? 그런 것은 없었다. 배상은커녕 보상도 없었다. 고의가 없던 군인 측에게는 처벌이 없었다. 더구나 그 총알이 누가 쏜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있은지 한 주 정도가 지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여당인 번영당의 암하라 지역의 리더가 암하라주의 한 도시에서 사무실로 가는 길에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함께 있던 4명의 수행원도 함께 살해됐다. 그래서 연방 정부는 즉시 47명을 체포했다. 이 암살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체포했다. 독심술로 체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을 아비 총리의 지시에 의해서 죽였다는 소문도 나돈다.

수그러들 수 없는 분노가 다시 암하라 사람들 마음속에 끓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은 내전이다. 이 암살 사건이 있고 난 뒤 다시 암하라와 수도로 연결되는 길이 닫혔다. 암하라인들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연방 정부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 며칠 전 곤다르에서는 모든 상인이 상점들의 문을 닫아 버렸다. 연방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연방 정부는 더욱 암하라 지역을 통제할 것이고 표면적으로 암하라 리더들과 또다시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약 3 주전으로 기억된다. 연방 정부는 오로모 자유 군대(OLA) 리더들과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협상했다. 에티오피아 남쪽에서 연방 정부는 2년 훨씬 넘게 싸우고 있는 OLA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이 협상을 하게 된 것은 여러 서방 국가들이 에티오피아 연방 정부를 압박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서방의 기사들은 보도했다. 사실 이 회담은 연방 정부가 OLA를 무력으로 섬멸하려고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해서 이루어진 협상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차 협상은 결렬됐다.

현재 연방 정부는 에티오피아의 어느 지역에서 연방 정부에 대해 반기를 들면 일단 무조건 인터넷과 도로를 신속히 차단한다. 언론도 통제한다. 이것은 현 연방 정부의 통치 방법의 하나인 통제 시스템이다.

현재 에티오피아 연방 정부는 다른 나라에 자신의 나라가 안전한 나라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라고 홍보하는 일에 굉장히 노력한다. 그래서 서방 나라에서 에티오피아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 땅에서 일하고 있는 어느 나라 외교관이 이 나라 현 정부의 이 같은 홍보 행위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에티오피아 연방 정부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오직 돈 때문이다. 에티오피아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면 외국 NGO 단체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고 서방 나라들의 원조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나라 중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안전한 나라로 보여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평화로워야 하는 이유가 생명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되었다. 돈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그 돈이 국민들을 위해서 사용된다면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복음전도자로만 살겠다”

수도에서 한 에티오피아 목사를 만났다. 그는 티그라이인이다. 그는 한동안 연방정부의 불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이었다. 약 2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가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복음 전도자로서만 살겠다고. 주님께서 자신을 정치가로서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정권이 바뀌면 에티오피아가 잘 될 줄 알아서 그렇게 싸웠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기대할 곳 없는 척박한 땅으로 그는 갔다.

4일 전 곤다르에 있는 현지인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믿는다고 하는 자신들이 복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곤다르에 사는 사람들이 분노에 가득 찼다고! 그는 한 때 아비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주님께서 이제 이 땅에 회개의 부흥을 일으키실 모양이다. 병든 자아가 정의를 주장한다고 해서 정의로운 나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깨닫게 하실 것이다. 믿는 자들의 회개가 주님의 긍휼을 부르는 통로이다.

이것들은 나에게 작은 구름 한 점을 보여 주신 주님의 마음이다. 나의 눈을 이 땅의 불의와 비참함에서 돌려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더욱 주님께 간구하라는 신호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연방 군인들이 대중교통 차량 위에 올라타서 시내 중심부뿐 아니라 외곽지역에도 다닌다.

부흥의 그루터기를 소망하며

4월 16일은 에티오피아의 부활절이었다. 곤다르와 아제조에 사는 모든 개신교인은 이날 함께 모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한다. 개신교인들이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날은 이날이 유일하다. 나도 초대되어 함께 예배했다. 얼굴색이 다른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나는 이 예배에서 기쁨과 안타까운 마음이 섞여 일어났다.

나는 거기서 한 원로 목사를 만났다. 곤다르에 살아있는 유일한 원로 목사인듯 했다. 그를 통해 짧게나마 곤다르의 개신교 역사를 듣게 되었다.

개신교 교회가 곤다르에 세워진 것은 65년 전이다. 정말 어렵게 세워졌다. 정교회의 탄압 속에서 세워졌다. 정교회의 탄압을 어느 정도 잘 견딜 만할 때 개신교회는 새로운 탄압 세력을 맞이했다. 그것은 이 땅에 세워진 공산 정권이었다.

개신교인들은 민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부가 공개적으로 종교 탄압을 금지하기 전까지 정교회와 정부로부터 받은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특히 정교회 안에는 곤다르를 자신들의 성지로 여기고 정교회 외 어떤 종교도 받아들이지 않는 무장단체가 존재했다. 지금도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런 그 수많은 박해와 시련 속에서 개신교회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에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이 예배드리는 장소는 공산 정권 때 세워진 광장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인민재판을 받았다. 이 원로 목사의 말 속에서 이미 지나온 세월이지만 그들의 감격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며 더욱 감격스러워했다.

이분의 연세는 75세이다. 슬하에 6명의 자녀가 있다. 난 그에게 당연한 일로 알고 이렇게 여쭈었다.

“자녀들은 모두 크리스천이지요? 손자들도요?”

그의 자녀 중 세 명만 크리스천이고 나머지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장남이 캐나다에 사는데 그는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 외에 모두 수도에 산다고 했다. 다들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듯했다. 자녀들이 그에게 넉넉한 생활비도 보내 주는 모양이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치고 그 연세에 얼굴빛이 좋다.

그는 나와 대화하는 동안 언제나 밝은 얼굴빛을 유지했다. 그는 자기 자녀에 대해서 말할 때도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그에게 믿지 않은 자녀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아마 나의 암하릭 어의 수준이 짧아서 못 들은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사는 개신교인들이 부활절 연합 예배를 드린 지가 14년 째 된다고 한다. 그들은 한 번도 이 예배를 중단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난 예배 중에 예배드리는 자들의 수 대략 세어 보았다. 난 언제나 이곳 개신교인들의 수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던 차였다. 약 2000여 명 안팎이다. 65년 세월에, 인구 약 50만 되는 도시에서 개신교 인구가 2000명이라! 개신교인 수와 원로 목사의 얼굴이 자꾸 나의 마음에서 겹쳐졌다.

그래! 주님께서 당신의 때를 위해 이들을 그루터기로 남겨 두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이들을 통해 이 땅에 회개의 부흥을 일으킬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교회연합찬양대가 입장하고 있다. 사진: 다니엘 정 제공
연합 찬양대의 찬양 모습이다. 사진: 다니엘 정 제공
연합 예배 장면. 사진: 다니엘 정 제공
▲예배가 끝난 후 모여 춤추며 찬양하고 있다. 사진: 다니엘 정 제공

에티오피아=다니엘 정(본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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