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은 후에 로댕에 의해 재해석되었는데, 로댕은 이 부분을 단독 제작하여 원작보다 더 유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영적 표현 면에서는 로댕조차도 미켈란젤로를 능가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고상하다.미켈란젤로가 그린 생각하는 사람은 ‘죄 곧 나, 나 곧 죄’의 처절한 실상이다. 그가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서 천국으로 향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것은 복음을 알면서도 실제가 되지 못한 삶을 보여준다. 즉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의 발을 붙들고 있는 악한 영은 놀랍게도 이 생각하는 사람과 표정만 다를 뿐, 똑같은 얼굴의 동일인물로 그려졌다. 또한 발을 붙든 손은 가려져 마치 생각하는 사람의 발에서 뻗어 나온, 그야말로 죄와 한 덩어리가 된 모습이다.
왜 그는 천국을 목전에 두고도 죄를 떨쳐버리지 못한 걸까? 이유는 죄의 속성에 있었다. 이 사람의 위치는 심판자로부터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으며, 다른 인물들과 달리 혼자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만의 특허격인 역동적으로 몸부림치는 동작과는 전혀 상반되게 이 남자는 온 몸을 웅크리고있다. 마치 무엇을 숨기려는 듯…. 죄의 속성이 그러하다. 은밀하고 비밀스럽다. 때문에 누구에게 들키지 않으려 겹겹이 위장하다보니, 천국을 목전에 두고도 취하지 못하게 된다. “드러나는 것마다 다 빛이라”(엡5:13) 죄를 떨쳐버리려면 환부를 드러내야 한다. 주님 앞에 나의 죄 된 속성을 다 고발할 때, 주님은 반드시 빛 가운데로 인도해내신다.
(그림설명: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7-1541년,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벽화)
– 글. 이상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