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함께 교제하는 선교사님으로부터 그분이 소속된 단체의 선배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시는지 잠꼬대까지 ‘주님 감사합니다’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님 감사 합니다’를 생활화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주님 감사합니다’ 하려니 여간 멋쩍은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열 번 이상은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존재적 불평자’인 저는 일상생활에서 그 고백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도 못한 채 몇 날이 지났을까요. 그 고백이 실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천식 증세가 있었는데 점점 악화되어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아,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 했습니다.
그 날 새벽, 저는 천식 때문에 깼습니다. 끊이지 않는 기침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호흡곤란 증세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증세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선교사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주님,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화장실 문을 붙잡은 채로 기침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콜록…. ‘감사’ 콜록…. ‘합니다’…. 콜록 콜록….”
전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고백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고백은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느끼는 감정 또한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조금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로서는 할 수 없는 고백을 하염없이 올려 드렸습니다. “주님 감사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복음을 알았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좀 더 고상한 감사의 조건을 찾고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백을 통해서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저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 새벽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내 마지막 호흡이 끊어지는 날, 이 가쁜 호흡도 사치스럽게 여겨질 순간이 오겠지….’ 그러자 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고백이 울려나왔습니다. “한 호흡 한
호흡이 주님 것입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주님 감사 합니다’라는 고백은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고백은 결심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 감사 합니다’라는 고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허락하심은 최선’이라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허락하신 새 날이 밝았고, 학교 갔던 아들 녀석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태권!”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거수경례까지 해가며 하는 그 인사는 관장님의 명령으로 귀가할 때 마다 우렁차게 외쳐왔던 것입니다. 아들만 둘인 저는 ‘이게 아들 키우는 맛인가?’ 내심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습니다. “진표야, 그래도 목사님 아들인데 ‘태권’은 좀 그렇지 않니? ‘주님 감사 합니다’ 어때?”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어려워지며 상당히 난감해합니다. “아빠, 그건 쫌….” 복음으로 결론 난 아버지의 아들로서 합당하지 않은 반응에 사뭇 놀랐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일장 설교를 한 뒤에 결국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습니다.
다음 날, 돌아와서 인사하려는 폼이 익숙하게 ‘태권’ 할 것 같아서 가로챘습니다. “잠깐! 진표야. 알지?” 녀석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립니다. “자, 어서!”, “아웅~” 몸을 배배 꼬더니 결국 못합니다. 녀석도 존재적 불평자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아니랄까봐….
좌충우돌하며 아 들 녀석에게 ‘주님 감사 합니다’라는 고백이 점차 적응이 되어갔고, 저는 천식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의도적으로 ‘주님 감사 합니다’를 고백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럽니다. “여보, 당신 요즘 기침 안 하는 거 같아요.” “어? 그러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천식 증세가 호전되었고, 그 뒤로 병원 치료를 받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을 정도로 완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고 쳐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상황이 변하기를 기도해왔던 저에게, 주님은 상황 앞에 선 내가 변화되기를 계속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식이 치유된 뒤로는 몸이 아플 때마다, 짜증나고 화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전혀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 더욱 더 ‘주님 감사 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 감사 합니다’라는 고백은 우리 가족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제겐 아직도 실제가 되어지지 않은 고백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 중에 하나를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나머지 고백들도 주님이 받으실 것입니다. 지금도 아들 녀석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렁차게 인사합니다.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얼마 전 함께 교제하는 선교사님으로부터 그분이 소속된 단체의 선배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시는지 잠꼬대까지 ‘주님 감사합니다’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님 감사합니다’를 생활화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주님 감사합니다’ 하려니 여간 멋쩍은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열 번 이상은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존재적 불평자’인 저는 일상생활에서 그 고백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도 못한 채 몇 날이 지났을까요. 그 고백이 실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천식 증세가 있었는데 점점 악화되어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아,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 했습니다. 그 날 새벽, 저는 천식 때문에 깼습니다. 끊이지 않는 기침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호흡곤란 증세로 숨을 제대로 쉴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증세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선교사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 주님,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화 장실 문을 붙잡은 채로 기침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콜록…. ‘감사’ 콜록…. ‘합니다’…. 콜록 콜록….” 전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고백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고백은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느끼는 감정 또한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조금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저로서는 할 수 없는 고백을 하염없이 올려 드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복음을 알았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좀 더 고상한 감사의 조건을 찾고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백을 통해서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저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 새벽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내 마지막 호흡이 끊어지는 날, 이 가쁜 호흡도 사치스럽게 여겨질 순간이 오겠지….’ 그러자 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고백이 울려나왔습니다. “한 호흡 한 호흡이 주님 것입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은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고백은 결심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허락하심은 최선’이라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허락하신 새 날이 밝았고, 학교 갔던 아들 녀석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태권!”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거수경례까지 해가며 하는 그 인사는 관장님의 명령으로 귀가할 때 마다 우렁차게 외쳐왔던 것입니다. 아들만둘인 저는 ‘이게 아들 키우는 맛인가?’ 내심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습니다. “진표야, 그래도 목사님 아들인데 ‘태권’은 좀 그렇지 않니? ‘주님 감사합니다’ 어때?”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어려워지며 상당히 난감해합니다. “아빠, 그건 쫌….” 복음으로 결론 난 아버지의 아들로서 합당하지 않은 반응에 사뭇 놀랐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일장 설교를 한 뒤에 결국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습니다. 다음 날, 돌아와서 인사하려는 폼이 익숙하게 ‘태권’ 할 것 같아서 가로챘습니다. “잠깐! 진표야. 알지?” 녀석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립니다. “자, 어서!”, “아웅~” 몸을 배배 꼬더니 결국 못합니다. 녀석도 존재적 불평자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아니랄까봐…. 좌충우돌하며 아 들 녀석에게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점차 적응이 되어갔고, 저는 천식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의도적으로 ‘주님 감사합니다’를 고백 하였습니다.
그 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럽니다. “여보, 당신 요즘 기침 안 하는 거 같아요.” “어? 그러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천식 증세가 호전되었고, 그 뒤로 병원 치료를 받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을 정도로 완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고 쳐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상황이 변하기를 기도해왔던 저에게, 주님은 상황 앞에 선 내가 변화되기를 계속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식이 치유된 뒤로는 몸이 아플 때마다, 짜증나고 화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전혀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 더욱 더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은 우리 가족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제겐 아직도 실제가 되어지지 않은 고백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 중에 하나를 주
님이 받으셨습니다. 나머지 고백들도 주님이 받으실 것입니다. 지금도 아들 녀석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렁차게 인사합니다.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김진기 목사(동산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