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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하나님, 학교에 가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사진: pixabay.com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이란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6)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나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선숙아, 너 중학교 못 보낸다. 오빠 학비 대기도 너무 힘들다.” 하시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 시골에 잠깐 있었던 나는 그곳 복음 중학교에 1등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서울 계셨기에 나는 먹고 살 곳이 없었다.

진학할 학교 교무실에 찾아가서 “혹시 밥해줄 아이 필요하신 분 없으세요?” 물었다.

한 분 여선생님이 오시더니 잠깐 있어 보라고 하셨다. 잠시 후 오셔서 “우리가 밥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셔서 그때부터 밥해 드리며 중학교 1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서울에서 남, 여 선생님 두 분이 오셨으나 각각 결혼할 애인이 있고 관사는 하나였다. 취사문제로 애매하던 차에 내가 나타나니 밥 일보다, 두 선생님이 편안히 지내게 되어 더욱 잘된 일이었다고 했다. 할렐루야!

중학교 1학년을 꿈결같이 마친 후 어머니 계신 서울에 와서 중학교에 가자니 역시 막막했다. 학비며 생활비며 내가 벌어야 모두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근거지가 없었다.

어머니 친구들은 밤에 집에서 주무시지를 않았다. 모두 교회에 가서 철야하고 눈 좀 붙이고 새벽기도 하고야 집에 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나도 하도 답답해서 밤에 따라갔다.

맨 앞에 엎드려서 소리소리 지르며 “하나님, 나 학교에 가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어느 날 엉엉 밤새 울면서 어찌나 울부짖었던지 어머니 친구들이 와서 소리 좀 줄이란다. 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하나님께 반항하며 졸라댔다.

그 밤 이후 아랫집 아주머니가 혹시 학교에서 심부름 할 수 있냐고 우연히 물으신다. 나는 물론 O.K! 했다. 학교에서 급사로 심부름하고 월급은 그 당시 쌀 한 가마 값 받고, 학교도 야간 중2에 편입했다. 와! 기도는 최고다! 하룻밤 울고불고했더니 우리 식구 모두 먹고 남을 양식과 학교까지 해결해 주시다니!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눈물 뿌려 기도하신 어머니의 후광이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의 기적은 까먹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우쭐해져 대학교 안 보내준다고 앙탈하며 하나님께 칭얼댔다. 그런 나를 어떻게든 사람 만들어보려고 어머니가 친구 남편 장로님께 “우리 애 좀 붙들어 주세요.” 부탁했다. 그 장로님이 나를 보시고는 “저런 애는 사람 안됩니다.” 하셨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내가 변화되어 새벽기도로 시작해서 교회에서 살다시피했다. 당시는 어머니 친구 장로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생각하시는 줄을 몰랐다.

친구 아버지 소개로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충실하게 못하고, 앞날이 불투명하니 위통 신경병이 다시 재발했다. 삶에 즐거움이 없고 힘들기만 했다. 결국은 마음이 자꾸 무거워져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어머니가 잘 가시는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기로 했다. 그곳에 가니 모든 사람이 금식기도를 밥 먹듯 한다. 나도 이왕이면 금식하다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40일 기도가 유행이니 나도 그리할까 생각했고 금식을 시작했다.

내 마음으로는 응답 안 해주시면 40일 아니라 그냥 기도하다 죽을 각오였다. ‘나는 어디로 가야되냐’ 그것이 기도 제목이었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응답 주실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30일이 되니 정말 죽음이 왔다갔다 했다. 목숨이 끊어진다 생각하니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 주님께 내 생명 마음대로 하시라고 나도 모르게 두손 두발 다 들고 하나님께 항복했다. “알아서 해주십시오. 이 기도 기간 40일 끝나면 첫 번째 열어주시는 길로 가겠습니다.”라고 나도 모르게 말씀드렸다.

그 후 다시 새 힘이 솟기 시작했다. 친구가 어떤 회사에 자리가 있는데 오라고 편지가 왔다. 그러나 기도 기간이니 못 간다 하고 기도 기간을 채우고 집에 왔다. 아무데서도 일자리가 안 나타났다. 그런 어느 날, 어머니 친구의 남편 장로님이 신학교 가라는 제안을 하시기 위해 나타나셨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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