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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구약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사진: Alabaster Co on Unsplash

어떻게 같은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선하다가 악해지고, 현명하다가 어리석어지고, 그토록 하나님 중심이었다가 돌연 자기중심으로 바뀔 수 있을까?

히스기야 왕이 얼마나 선하고 충실한 사람인지, 그의 생애와 시대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는 구약 본문이 무려 세 군데나 있다(왕하 18-20장, 대하 29-32장, 사 36-39장).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토라의 가르침에 맞게 나라를 개혁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히스기야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앗시리아 왕 산헤립과 맞섰을 때 드러난 히스기야의 놀라운 용기와 신실한 믿음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세 본문 중 그 어떤 것도 히스기야가 저지른 도덕적 실패를 대충 얼버무리지 않는다. 특히 두 본문(열왕기하와 이사야)은 그중 하나를 탁월한 슬픔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논의를 위해서 이사야 39:1-8에 초점을 맞추고, 다음 세 가지 세부 사항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도덕적 대조

다른 많은 성경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장은 놀라운 정도로 도덕적으로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사야서 36-37장은 히스기야의 믿음과 용기를 전해준다. 이사야서 37:14-20에는 그의 특별한 기도가 나온다. 그리고 등장하는 징징거리는 자기 연민에 빠진 38장 속 히스기야의 모습 앞에서 우리는 실망한다. 게다가 이사야 39:1-2은 바벨론 사절들에게 어리석은 자랑을 일삼는 그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39:5-7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책망이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선하다가 악해지고, 현명하다가 어리석어지고, 그토록 하나님 중심이었다가 돌연 자기중심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래도 영웅이라면 좀 더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도덕적 대조는 놀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가 이사야서 39장을 구약에서 가장 슬픈 본문 중 하나로 만드는 건 아니다. 이 이야기가 최상급으로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물론 충분히 슬프긴 하지만 확실히 가장 슬픈 건 아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수치스러운 거짓말로 아내를 위험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던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내려치며 독선적인 분노로 좌절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은 또 어떤가? 실로 죄가 많은 아버지일 뿐 아니라 간음과 살인을 자행한 자이다.

신약성서 속에서 예를 찾는다면, 당장 베드로를 떠올릴 수 있다. 하나님이 직접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었지만, 세 번이나 그를 부인했다. 사실, 성경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전혀 기록되지 않은 인물도 있다(예: 요셉, 다니엘, 에스더).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삶 속에서 실망스러운 모순과 뿌리 깊은 대조를 드러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이다.

섭리의 왜곡

겉으로 보기에 히스기야는 섭리의 교리를 고수한다. 그러나 사실은 바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섭리를 왜곡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향해 존중을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뚤어진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성취하겠다는 욕심에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 이스라엘을 찾은 바벨론 사절단 앞에서 그는 부요함을 자랑함으로 왕국을 위험에 빠뜨린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를 꾸짖으셨고 앞으로 있을 비참한 심판에 대해 경고하셨다. “너의 왕궁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오늘까지 너의 조상이 저장하여 놓은 모든 보물이, 남김없이 바빌론으로 옮겨 갈 것이다”(사 39:6). 더욱이 임박한 재난은 개인적인 차원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너에게서 태어날 아들 가운데서 더러는 포로로 끌려가서, 바빌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다”(사 39:7).

히스기야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대가 전하여 준 주님의 말씀은 지당한 말씀이오”(사 39:8). 언뜻 보기에 히스기야는 마치 하나님의 뜻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비록 심판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8절 후반부는 그의 이기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왕국 앞에 놓인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justice) 앞에서도 여유를 부린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자신은 안전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사 39:8).

심판의 위협 앞에서 전혀 달랐던 다윗의 반응

간음과 살인의 여파로 다윗은 왕국에 심판이 닥칠 것이며, 더불어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다윗은 죄를 회개했고, 선지자 나단은 선언했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님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삼하 12:13-14). 그리고 다음 주 아이가 사투를 벌이는 내내 다윗은 먼지와 재를 뒤집어쓰고 먹기를 거부했다.

아기는 결국 죽었고 다윗의 시종들은 주인에게 그 사실을 말하기 주저했다. 그러나 비극적인 소식을 알게 된 다윗은 몸을 씻고 깨끗한 옷과 로션을 바르고는 하나님께 경배했다. 그리고 좋은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시종들에게 다윗은 자신이 히스기야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삼하 12:22-23)

하나님이 내린 심판의 선언을 들은 다윗은 그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단지 원초적인 의지 이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교류하시는 자비로운 분이다.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아이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히스기야 역시 하나님의 뜻을 인식했고, 이미 선고된 심판이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그의 진심은 이기심이다. 히스기야는 백성을 위해서 중재하지 않았다. 후손 중 일부가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거세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산헤립과도 대적했던 이 왕은 이제 자신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심지어 자녀와 손자까지도 돌보지 않는다. 한때 이 왕에 대해서 이런 평가가 있었다.

그는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는데, 유다 왕 가운데는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 그는 주님에게만 매달려,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하였다(왕하 18:5-7).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의 안락함을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끝난다. 이 이야기에는 슬픈 신랄함이 있다.

심판과 소망

히스기야는 이사야 40-66장의 위대한 주제 중 하나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면에서 슬픔을 주는 이사야 39장은 예언의 나머지 부분을 통해 울려 퍼지는 북소리 중 하나를 발표한다. 선지자의 초점은 영적 활력과 파멸적인 정죄 사이를 계속 오간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자비로우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불성실하다(사 43:14-2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헛된 우상을 섬기며(사 44장) 죄악과 불의를 따른다(사 59장). 예루살렘은 회복되고(사 44:24-28; 51:1-16; 54장) 이스라엘은 자유를 얻겠지만(사 48:12-15; 49:8-21), 구원에는 심판이 따른다(사 65장).

마지막 두 장에도 심판과 희망이 모두 담겨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무시무시한 실패와 죽음이 있다.

개인이든 하나님의 언약 백성 전체이든, 우리는 용감한 믿음의 본보기는 따르고 타오르는 이기심의 본보기에 대해서는 슬퍼하도록 명받았다. 높으신 주님의 음성은 오늘도 여전히 말씀하신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 이 글은 Themelios 47, no. 3 (December 2022)에 실린 같은 제목의 논문을 간추린 것입니다.

원문: One of the Saddest Texts in the Old Testament

“ 선지자 이사야의 초점은 영적 활력과 파멸적인 정죄 사이를 계속 오간다 ”

[복음기도신문]

돈 카슨(Don Carson) | 캐나다 토론토 Central Baptist Seminary에서 석사학위(MDiv)와 영국 Cambridg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고, 일이노이주 디어필드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신약학 명예교수로 섬겼다. 팀 켈러와 함께 TGC를 설립하고 2019년까지 대표로 섬겼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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