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홍콩 국민들이 자유를 찾아 대만으로 피했지만, 피난처를 약속한 대만 정부의 계속된 말바꿈으로 영국으로 재이주하고 있다고 크리스채너티투데이가 최근 전했다.
웡 시우융 목사는 작년에 대만에서 홍콩 기독교인을 위한 교회를 개척했고, 30명 이상의 성도가 모였다. 그러나 당시 대만에서 유일하게 광둥어 예배를 진행한 이 교회는 성도들의 많은 이동에 직면했다.
몇몇 성도들은 이전 거주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떠난 10명 중 대부분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웡 목사는 “나는 그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만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두 번 이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웡 목사 자신도 이주에 동참했다. 48세의 윙 목사는 6000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정착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지난 8일 영국 노팅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것은 웡 목사가 2020년 7월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갔을 때 예상했던 여정이 아니었다. 당시 2019년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면서 잠재적인 정부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즉시 고국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대만은 처음에 웡 목사와 같은 수천 명의 홍콩인에게 ‘거주지 및 보살핌’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달 동안 정부는 홍콩인들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까다롭게 해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정착하는 것을 막았다. 대만 정부 관계자는 대만 정부가 홍콩인을 대만에 재정착하도록 돕는 것은 중국을 자극하고 중국 공산당(CCP) 잠입자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웡 목사와 신도들은 계속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들은 홍콩에서 집을 팔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대만에 왔지만, 영주권 발급 조건이 바뀌면서 곤경에 처했다. 웡은 “홍콩인들은 대만 정부의 사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자 이들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영국으로 떠나는 대열에 합류했다. 웡 목사는 두 번째 이주에 착수한 약 50명의 홍콩인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웡 목사는 대만에 있는 동안 친밀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불신자들을 믿게 하고, 심지어 민주적인 정부라도 정부에 희망을 두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인들은 세상 정치 제도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순진한 관점을 가져서는 안 된다며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피난처 찾기
2020년 6월 중국의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 후 자유를 추구하는 많은 홍콩인들이 대만으로 눈을 돌렸다.
대만은 홍콩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어 가족들도 쉽게 만날 수 있고, 기후, 문화, 언어도 친숙했다. 홍콩에서는 광둥어를, 대만에서는 만다린어를 사용하지만 문자는 동일하고 홍콩 학교에서는 만다린어를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인 대만이 홍콩을 탈출하는 홍콩인들을 공개적으로 환영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만 7000명 이상의 홍콩인이 2019년에서 2021년 사이에 임시 비자로 대만에 도착했다.
웡 목사는 홍콩 교회는 정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할 것이라는 성명 발표를 도운 직후 홍콩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한 국영 신문은 그와 다른 주최 측이 새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국가 전복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최대 10년의 징역형이었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 것으로 잘 알려진 대만의 황청센 목사는 웡 목사에게 대만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그의 교회인 타이완의 츠난 장로교회는 출석하기 시작한 홍콩 사람들을 위해 광둥어를 사용하는 목사가 필요했다.
웡 목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더 많은 학생들과 가족들이 대만으로 이주함에 따라 교회는 몇 달 안에 30명에서 100명으로 성장했다. 그곳에서 홍콩인 플로렌스 장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이민 과정에서 어려움에 빠져 좌절하고 있는 자신을 도와준 교회에 감사했다. 그녀는 “나는 그들과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며 그들 없이는 “여기 혼자 있는 내 상황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웡 목사는 대만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그는 홍콩에서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별 비자로 대만에 도착했다. 이로 인해 그와 그의 아내는 대만에 머물 수 있었지만 일을 하거나 대만의 국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6개월 후 그는 일반적으로 불교 승려들이 사용하는 종교 비자를 신청해 3년 동안 머물면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웡 목사는 자신의 법적 신분과 대만 장로 교회의 요건상의 문제(목회자들에게 교단의 신학교를 졸업하도록 요구)로, 급여를 받지 않고 설교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웡 목사는 홍콩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교회인 영광스러운 예배(Glorious Worship)에서 설교하고 강의했다.
광둥어 예배부를 교회의 공식적인 멤버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웡 목사가 깨닫기 시작하면서 웡 목사와 섬기던 츠난 장로교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웡 목사는 “우리는 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홍콩인들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황 목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점점 더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에 웡 목사는 현재 많은 홍콩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타이완에서 북쪽으로 15마일 떨어진 해변 지역인 단수이에서 독립 홍콩 교회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망명한 홍콩인을 지원하는 것은 대만 교회에서 민감한 주제다. 성도들은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는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 다른 일부는 중국 편을 든다.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교회는 정치적 주제를 회피한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 웡 목사는 새로운 교회 개척에 건물을 임대할 의사가 있는 지역 교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대다수가 그를 거절했다. 웡 목사는 자신이 수업을 듣고 있던 대만장로교회 신학교의 한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그에게 단수이에서 목회하는 친구를 소개해줬다. 그는 웡의 교회가 일요일 오후에 그들의 건물에서 모이도록 허락하는 데 동의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발병으로 첫 모임 일정이 연기되어, 단수이 홍콩 교회는 2021년 9월 첫 모임을 가졌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말을 나누며
웡 목사는 홍콩 이민자 교회 공동체가 그가 20년 동안 홍콩에서 목회했던 교회보다 단기간에 더 가까워진 것을 발견했다.
웡 목사는 “이전 교회 교인들이 서로 12년 이상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그룹 모임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고 느꼈다.”며 “만약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할 때, 우리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논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수이에 있는 홍콩 교회에 오는 홍콩인들은 같은 이유로 고국을 떠났다. 설교, 소그룹, 기도회에서 웡 목사와 협력 목사인 흥국힘 목사는 조국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성도들도 마침내 공개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이 교회를 다녔던 캣 웡(웡 목사와 연고 없음)은 교회에 있는 기존 교인들 때문에 그녀가 시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며 동의했다.
그녀는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목회자의 설교가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일상생활과 신앙이 통합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나는 기독교인들이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웡 목사님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이러한 부당한 일에 대해 논의하지 말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캣 윙은 성도를 하나로 묶는 또 다른 요소는 고향을 떠나 대만에서 거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홍콩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캣 윙은 그녀가 전문 비자로 대만에 온다면 영주권 신청을 위해 1년 정도만 머물면 될 것이라고 이민국 직원에게 들었다.
그러나 그 해에 이민국은 말을 바꿔, 그녀의 비자로는 일을 할 수 없고, 일 외에 그녀가 대만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도예 수업을 듣고, 자원 봉사를 하고, 대만의 역사를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녀의 사건을 담당한 이민국 직원은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며, 현지 회사에서 그녀를 고용하면 취업을 허가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만인 친구를 통해 그녀를 기꺼이 고용할 수 있는 새로 문을 연 노인 요양원을 찾았다. 그러나 노동부는 그녀가 대만 간호 면허가 없기 때문에 요양원에서 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요양원에서 그녀에게 관리직 일을 맡기기로 했을 때, 노동부 직원들은 그녀가 입국한 비자에 관리직 일을 한 경력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녀는 “여기서 1년 더 산다고 해도,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서 3월에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영국 맨체스터로 이사했다.
전문 비자를 통해 영주권을 얻으려고 한 웡 목사도 이민국의 잦은 말 바꾸기와 모순된 요구사항으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어느 시점에서 이민국 직원이 그가 대만 사회에 기여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작년에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노벨상”이라고 답변을 적었다.
홍콩 사람들을 위한 중간 기착지
홍콩인들이 대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웡 목사는 대만에 있는 홍콩 교회의 목사로서 자신의 역할을 보는 눈을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동료 홍콩인들이 새 집에 정착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할 방법을 찾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교회를 여행자들이 통과하는 중간 기착지 정도로 보고 있다.
웡 목사는 “우리는 당신이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 언제 떠날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며 “당신이 한 번만 와도 보살펴드리겠다. … 어느 날 당신이 떠날 때에도 우리는 당신을 축복할 것”이라고 했다.
웡 목사는 대만을 떠나는 신도들에게 적절한 배웅과 축복을 주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조용하고 신속하게 홍콩을 떠났을 때 그런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웡 목사는 노팅엄에 도착한 후 맥도날드에서 일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정상적인” 직업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에서의 힘든 시간들과 대만에서의 오랜 망명 생활로 인해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흥 목사가 단수이의 홍콩교회 목회를 맡게 된다.
웡 목사는 지난 2년 동안 대만에서 그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세상 정치 제도도 낭만화하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그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홍콩은 많은 불행한 일에 직면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만, 미국, 캐나다, 영국에 가고 싶고 홍콩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나빴으니 그 반대가 좋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왔다.” 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에 살면서 웡 목사는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는 국가에도 약점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정치 시스템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어떻게 발맞출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 세력과 마주했을 때는 머리를 맑게 하고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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