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김종일 칼럼] 튀르키예와 유럽연합의 ‘밀·당’ 사랑

▲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후보국 승인(2004년), 출처: Haberturk

밖에서 보는 이슬람(35)

‘터키’에서 ‘튀르키예’ 시대로

우리에게 꽤 친숙한 나라, 튀르키예(Turkey)가 최근 나라 이름을 정식으로 튀르키예(Türkiye)로 바꾸었다. 우리에게는 입에 잘 붙지 않고, 발음하기조차 어색하지만, 사실, 튀르키예 안에서는 단 한 번도 ‘튀르키예’로 부르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이름이 아니다.

이제 명실공히 안팎으로 같은 이름을 갖게 된 튀르키예가 2023년이 되면, 공화국 창립(1923년) 100주년을 맞이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수백 년 동안 중동과 유럽 역사에 있어서 짙은 명암의 페이지들을 장식했던 오스만제국은 지금의 튀르키예 하나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 편으로 물어갔다.

우리에게 ‘튀르키예’하면, 과거 흉노와 돌궐의 후예로 같은 역사적 공간을 공유했으며 같은 알타이 언어군으로 우리와 비슷한 문법적 특징을 가진 나라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로마 제국 당시 수많은 유적을 그대로 간직한 땅으로 세계 관광객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매력의 땅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기독교의 주요 교리(사도신경, 삼위일체 등)가 확정된 땅이며, 수리아 안디옥, 사도바울의 고향 다소, 계시록의 일곱교회 등 지금도 성경 속 수많은 곳이 그 땅 아래로 고스란히 잠자고 있다.

오스만제국의 패망과 케말 파샤의 공화국 시대

돌궐, 흉노, 셀주크 터키를 잇는 튀르크 제국, 이슬람의 수용과 전파(11C), 비잔틴제국의 정복(15C), 세계사에서 근세로의 시작(15C), 유럽의 지리상 발견(15C)과 산업혁명(18C)의 간접적 원인제공, 중동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 동부유럽의 정복과 지배. 이 모든 서술이 하나의 이름을 가리킨다.

바로 중동을 중심으로 수 세기를 풍미했던 오스만제국(1299~1922)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독일과 함께 참전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제국 내 모든 영토가 갈기갈기 나뉘었으며, 또 하나의 거대 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결사 구국의 비장한 마음을 가진 한 영웅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국부 케말 파샤(1881~1938)이며, 그를 통해 공화국이 시작된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튀르키예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는 튀르키예의 모든 것이었다. 아니, 아예 튀르키예 그 자체였다. 그를 통해 공화국의 모든 기본 이념과 정체성이 확립되었고, 향후 튀르키예가 나아가야 할 좌표가 제시되었다. 이렇듯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시작한 그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튀르키예를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세속주의(secularism)로의 시작

이토록 위대하고 튀르키예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아 온 케말 파샤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국책(國策)이 바로 세속주의이다. 당시 새로 시작한 공화국의 모든 이념과 정체성이 이 세속주의 하나에서 파생된다. 그는 술탄 왕정 체제에 모순과 허점을 발견한 사람이었으며, 세속주의 공화국의 시작은 그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 세속주의를 받쳐주는 두 기본 정책이 있다. 하나는 ‘서구화’이며, 다른 하나는 ‘탈 이슬람 화’이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며 친화적이다. 그러므로, 튀르키예의 세속주의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면서도 정치에 이슬람을 결부시키지 않겠다는 탈 이슬람 의지의 천명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강력한 서구화 추진이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공화국의 건립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온 튀르키예와 유럽연합의 ‘밀·당’ 역사가 시작된다.

두 얼굴의 튀르키예: 드러낸 비굴함과 숨긴 야심

적지 않은 사람이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온 튀르키예의 유럽연합을 향한 끈질긴 구애를 가리켜 경제 악순환의 늪으로부터의 유일한 탈피 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다른 이유가 더 숨겨져 있다.

먼저, 튀르키예의 민족적 자긍심을 그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튀르키예는 과거 대 제국을 다스렸던 오스만의 후손들로서 역사나 문화적으로 아랍 국가보다는 한 수 우위라는 우월감과 자긍심이 상당히 높은 나라이다.

비록 아랍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을 받아들이긴 했으나, 결코 아랍에 종속되거나 좌우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 의지는 이슬람이 국가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다른 아랍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같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강한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 다른 숨은 이유로, 국방수호와 안보에 대한 튀르키예의 강한 국가적 의지가 있다. 튀르키예공화국이 역대 외교에서 가장 민감하게 여겼던 사안은 바로 구소련과의 관계였다. 즉,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당시 소련의 남하정책으로부터 튀르키예를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안은 없었다.

이에 튀르키예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회원국 가입 성공(1952)은 튀르키예로 하여금 안도의 숨을 쉬게 해 주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유럽연합 정회원 가입을 공화국 최대 과업으로 정하고 오직 한 길만을 달려오고 있다.

마지막 숨은 이유는 튀르키예의 종교적 야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튀르키예가 세속주의 이념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른 아랍 이슬람 국가와는 구별된다고 해서 무조건 이슬람 배격주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튀르키예는 과거 오스만제국을 통해 수백 년 동안 이슬람 세계의 리더십을 가지고 이슬람을 발전시켜 왔으며, 매우 성공적으로 이슬람 포교를 수행해 온 나라다.

그러므로, 튀르키예의 끈질긴 유럽연합 가입 의지 뒤에는 자신의 고유문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유럽에 종속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의 이슬람화에 일조하려는 종교적 사명과 야심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이는 지금 튀르키예 공화국 사상 초유의 이슈로 거론되고 있는 20년의 연정에 성공한 튀르키예의 현 집권당(AKP)이 가진 유럽연합 정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튀르키예 집권당은 공화국 사상 가장 강한 이슬람 성향을 보이면서 그동안 줄곧 튀르키예 세속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오던 여성의 히잡 착용 금지 법안을 폐지하는 등 세속주의에 가장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현 집권당은 지금까지의 어느 정권보다도 유럽연합 가입에 더욱 강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실(失)을 감수하면서 득(得)을 향해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을 둘러싸고 튀르키예와 유럽연합 사이의 끊임없는 ‘밀·당’ 외교에서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국의 실리 추구’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간 외교에서 감추어진 부동의 목표이다.

그렇다면 양측의 득실은 무엇일까? 유럽연합으로서는 유일한 무슬림 국가를 받아들이면서 그로 인해 초래할 수 있을 유럽 고유의 정체성 상실을 감수해야 하는 대신 향후 튀르키예를 통해 중동과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지속적인 자원 확보가 더 원활해질 것이다.

한편, 튀르키예로서도 그동안 유럽연합의 요구조건에 따라, 자기들의 무슬림 정체성을 훼손시키면서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정도의 수많은 법안의 재정에는 실리 추구를 위한 국익 갈망이 숨어 있다.

하지만, 튀르키예로서는 유럽연합을 향한 끈질긴 구애 작전으로 국가적 자존심에 이미 상처를 입었다. 이에 따라 자기들의 정체성에 타격을 충분히 받았으며, 주변 이슬람 국가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실리 추구 측면에서 양측의 득실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지금 양측 모두는 ‘밀·당’의 혼란 속에서도 선점의 적시를 노리고 있다.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은 가능한가?

필자는 그동안 튀르키예의 끈질긴 가입 의지와 이를 위한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데 한 표를 던져왔다. 왜냐하면, 그간의 정황상 가입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커다란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시리아 난민 사태이다.

지금까지 400만에 가까운 시리아 난민이 국경을 통해 튀르키예 안으로 들어왔으며, 앞으로도 이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 뻔하다. 지금 유럽은 튀르키예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을 더는 원치 않는다. 그러나, 튀르키예로서도 날로 늘어가는 난민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으며, 이로 인한 사회는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국내 경제는 공화국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면서 2023년에 있을 대선에서 집권당의 정권 유지가 불분명한 위험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긴급 제의가 하나 튀르키예 측으로 전해졌다. 튀르키예에서 시리아 난민을 보호하는 조건으로 필요한 모든 재정을 공급하겠으며, 더 나아가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도 긍정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이다.

공화국 창립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지금 튀르키예는 유럽연합 가입의 마지막 관문을 넘으려는 문턱에 서서 공화국 사상 최고의 위기에 직면했다. 난민 문제를 빌미로 유럽연합에 결국 가입해서 극도로 난항을 겪는 자국의 경제를 살려내며 대국의 면모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유럽연합과의 밀·당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을 끌어안은 채 또다시 역사의 희생물로 남을지, 매우 커다란 갈림길 앞에서 지금 튀르키예는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장신대 신대원 졸업, 前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現 FOT 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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