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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통신] 그 종된 리더를 누가 지금 맡을 수 있을까

ⓒ 민경수

아브라함 카이퍼. 지금으로부터 185년전인 1837년도에 네덜란드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2)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동과 서에서 부흥의 불씨를 앞당긴 1907년 10월 29일은 온 나라가 그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지난 40년 동안 네덜란드, 교회, 주, 사회, 언론, 학교, 과학에 대한 역사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는 쓸 수 없다.”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던가!

지금은 영국이나 사랑하는 고국에 이러한 독실한 기독교인 섬김의 리더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 리더를 누가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독특한 사회적 영향은 개혁적인 목사이자 신학자이자 한때 네덜란드의 총리였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삶과 그로 비롯된 사회적 변화로 들 수가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1975년 런던에서 열린 청교도 회의에서 주어진 강의 발제에서 이 ‘카이페리아 전통’에 대해 말했다. 그는 그것이 ‘프랑스 혁명의 세속적 인문주의 원칙 전체에 대한 가장 비범하고 놀라운 반대’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카이퍼의 사상은 17세기 네덜란드 칼빈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주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였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조화시켰다. 그것이 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천국에 있는 것이든 간에.

그는 마태복음 28장 18절(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의 말씀을 믿고 “모든 권력은 이 땅에 있는 것이든 내게 주어진다”와 같은 것이 성경에서 파생되었다며, 모든 삶의 영역에서 보다 긍정적인 삶으로의 진면모를 보여주셨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창조물을 즐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먼저 주권을 부여했다며 생성 권한을 가르쳤다. 이 권한에는 기술, 예술, 정치와 같은 분야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인 부 섭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가을이 되자 아담은 창조물을 자신의 죄악의 목적으로 돌렸고 이러한 이유로 창조물도 하나님의 저주로 끌려갔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0-22).

그러나 창조된 질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한 도덕률을 이행하고 그 자리에서 고통받고 죽는 화신이 되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둘째, 그는 제2의 아담으로서 창조물 위에 군림하는 아담의 본래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스도는 구원을 통해 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 창조된 질서에 대한 인간의 통치를 회복한다. 즉, 기독교인들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땅 위에 군림할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의 시민이자 그의 구원받은 몸의 구성원이 된다.

카이퍼는 세계성을 추구하지 않고, 전 세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의 실현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그는 유명한 진술을 했다: ‘그리스도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어떤 평방인치도 없다.’ 그리스도의 생명주권에는 문화, 정치, 상업, 과학기술이 모두가 다 포함된다. 오늘날 네덜란드에는 그의 영향력은 많이 상실되었다. 법률은 세계 어느 곳보다 더 인도주의적이며, 복음주의는 ‘기분 좋은’ 접근법에 의해 스며들었다. 하나님과 인간, 창조에 대한 우리의 책임보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느낌의 ‘경험’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유럽의 여러나라와도 마친가지로 정신적 소비주의가 팽배하다. 놀라지 말라. 예를 들면 복음방송은 정신적인 ‘오락’으로 변모했다. 교회 구성원들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철수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기독교인의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세상의 ‘전문가’에게 맡겨진다.

일부 신자들은 네덜란드 서부의 도시 지역에서 ‘성경 벨트’ 지역으로 이주했다. 더 나아가서 주요 도시에서는 교회와 기독교 학교들이 문을 닫고 있고, 기독교 증인들은 그 어려운 지역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고맙게도, 감사할 일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복음주의자들이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그들은 열정적인 전도와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인 관점을 결합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오늘날 교회들의 주요 과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의 왕국에서 다면적인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기독교 증인의 미래를 향한 기대감은 삶으로 나타난 진정한 회개함을 들수도 있다.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들인 우리에게 지혜와 힘을 주시고 그의 나라 복음으로 말미암는 나라로 발전시키시기를 위하여 두손을 모아본다.

지금의 시대에 리더는 카이퍼처럼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종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가 필요하다. 그 리더를 누가 맡을 수가 있단 말인가?  [복음기도신문]

민경수 | 목사.선교사(본지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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