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관점에서 말하는 손들기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손들기가 안 될까요? 그리고 우리의 손들기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깨닫는다면, 우리 믿음이 실제 되는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은 제대로 손드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대로 싸우라고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밑에서 싸우고 있는 여호수아가 이깁니다. 모세가 손을 드는 행동을 기도라고 말합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말씀에 기도라는 단어가 분명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손을 들었다는 단어가 갖는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항복입니다. 손들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하나님께 항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모든 자원을 다 쏟았음에도 그것이 안 될 때 ‘손 들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없고, 방법과 도리가 없어 보일 때 손 들었다고 말합니다. 길이 없고 지혜가 없고 에너지도 없을 때 손 듭니다.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항복의 의미도 됩니다. 기도의 모형이 있다면 단연 주기도문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핵심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내용입니다. 주기도문의 이런 의미로 본다면 손드는 것은 기도가 맞습니다. 그러나 손을 들었다는 것의 직접적 의미는 ‘주님께 항복했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때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 싸우는 공간은 르비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성취해 가고 있는 세력입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방해하고 막는 세력입니다. 사울 왕 때 아말렉이 진멸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참으로 미워하셨는데 그 이유가 신명기에 나옵니다.
아말렉은 항상 이스라엘의 후방을 칩니다.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따라가 그 뒤를 칩니다. 여러분들의 구원의 여정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그 길에서, 항상 뒤에서 치는 세력은 아말렉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피곤할 때, 약한 자들을 쳤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 욕심내는 것은 복입니다. 어떤 믿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어디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따라 자리도 달라집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공간적인 자리도 달라집니다. 예배 때도, 마음이 뒤로 가면 앉는 자리도 반드시 후미진 뒷자리에 앉게 됩니다.
제가 대형교회 부교역자로 있을 때 일입니다. 저는 목사님 말씀이 선포될 때, 목사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서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받아 적었습니다. 동료들이 얼마나 미워했을까요? 그러나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긍휼하게 여겨주신 것 같았습니다. 거리두기로 띄어 앉아야 합니다. 기둥 뒤에도 앉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 마음은 살펴야 합니다.
아말렉이 피곤한 사람, 약한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이 아말렉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볼 수 있다면 혜안이 열릴 것입니다. 잠언 23장 26절, 사랑하는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95편을 히브리서 3장에서 인용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17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시편 95편입니다. 완고함과 완악함을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초자연적 역사로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구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완고함을 다루어가십니다. 해갈을 지체시키심으로 깊은 목마름으로 괴로워하는 그들에게 완고함을 보게 하고 처리하게 하십니다. 완고함이 처리될 때만 주님께 마음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완고함이 처리되지 않으면 우리 뜻을 위한다며 주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합력해 선을 이룰 것이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그 완고함을 다루어가십니다. 완고함을 끄집어내십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면 탄탄대로의 길이 아니라, 관계, 건강, 성취, 재물, 상처 등을 통해 우리의 완고함을 오히려 보게 하시고 제거하게 하십니다. 영광스러운 경험이 있다면 완고함은 반드시 다룸을 받습니다. 모든 게 완벽하다면 주님의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완고함을 다루십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드러나는 때입니다. 우리 완고함이 처리되었다고 해도, 또 처리되는 과정이라고 해도 아말렉은 또 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실감이 난다면 기쁜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기어이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이 실제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과 건강, 환경을 흔들어도 우리 마음은 여전히 주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말렉이 옵니다. 피곤할 때 쳐들어옵니다. 왜 피곤할까요? 마음을 쓰고 몸을 쓰고 신경과 감정을 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쓴 만큼 피곤해집니다. 하나님께 쓰지 못하고 세상일에 그렇게 썼기 때문에 피곤해집니다. 타락, 즉 음란, 욕심, 이기심! 그 속에서 힘을 써도 문제가 되지만, 세상일에 마음을 쓰고 몸을 쓰고 감정을 써도 피곤해집니다. 그 피곤함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때로는 주님께 마음을 써도 피곤합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교회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어서 저도 같이 풀을 뽑았습니다. 몸살이 심하게 와서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파스를 붙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해도 피곤해집니다. 세상일에 마음 빼앗기면 아말렉은 그냥 쳐들어옵니다. 생각과 감정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음을 빼앗깁니다. 아말렉은 우리가 피곤할 때 후미에서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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