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평안 대표(히스킹덤뮤직)
272호 / 나눔&나눔
일상에서 경험한 하나님, 그분을 높이고 노래하는 염평안 형제를 만났다. 어느 날 자녀를 잃은 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나눠주셨다. 그런 마음을 노래에 담았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로 기쁨과 슬픔을 담아 하나님을 찬양하다 보니 어느덧 찬양 사역자의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요게벳의 노래’로 알려진 작곡가이고, 히스킹덤뮤직 대표 염평안입니다.”
– ‘요게벳의 노래’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첫아이를 낳고 나서 둘째 아이를 유산했어요. 우리 부부가 엄청 슬퍼하고 힘든 시간을 지났는데, 하나님이 쌍둥이를 주셨어요. 감사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돌아보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임신 23주쯤 됐는데,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조산을 해야 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지금 태어나면 살 수 있는 확률이 없었어요. 거기서 무너졌어요. 한 아이를 잃은 것도 힘들었는데 두 아이를 동시에 잃을 수 있다는 게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렸어요.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5주라는 시간을 주셨어요. 그 시기가 제가 하나님을 가장 깊게 만났던 시간인 것 같아요. 아무 일 없이 지나는 하루가 너무 소중했죠. 결국 29주에 아이들이 1.38kg, 1.41kg으로 태어났어요. 뇌출혈이 있었고, 한 아이는 폐가 안 좋았어요. 둘 다 한 달 반 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아이들이 태어난 것에 먼저 감사했고, 하나님이 어떻게 주신 아이들인데 잘 키워보자고 생각했어요.”
“신생아 중환자실을 거친 아이를 보며 요게벳을 묵상했어요”
– 어려운 일을 겪으셨군요. 아이들의 건강은 회복이 됐나요?
“네. 아이들이 건강을 되찾아가니까 어떻게 잘 키워야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녀 양육에 대한 책도 많이 보고 말씀도 많이 듣다가 하루는 ‘성경으로 아이 키우기’라는 책을 보게 됐어요. 거기서 요게벳이라는 인물을 만났어요. 요게벳의 입장으로 서술한 내용을 보게 됐어요. 지금까지 출애굽기를 얼마나 많이 읽었겠어요. 그러나 한 번도 부모의 마음으로 이 본문을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를 잃고, 또 잃을 뻔 하고 나서야 아이를 떠나보내려고 역청과 진흙을 바르는 요게벳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됐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도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거든요. 요게벳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아이를 떠나보내지 않았을까, 저도 요게벳의 마음이 동감이 되면서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경을 좀 더 읽다가 히브리서 11장에 모세의 부모가 언급되는 것을 봤어요. 이들이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믿음으로 아이들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자는 마음으로 곡을 쓰게 됐어요.”
– 어려운 시간을 신앙으로 통과하셨는데, 주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교회에 있었어요. 중학생이 되기 전에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우리 교회는 구원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죄인이었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십자가를 통해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기로 결단했어요. 지금까지 어렵고 힘든 고비도 있었지만 신앙 안에서 크게 소용돌이치는 삶은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안에서 평범하게 살았어요.”
– 초등학생 때 복음을 만나신거군요. 아직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인데요. 그 신앙이 잘 이어졌나요?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혼자 있었어요. 부모님은 뒤늦게 목회를 하겠다고 결정하시고 뉴질랜드에 공부하러 가셨거든요. 방황하고 싶어도 티를 낼 사람이 없기도 했고, 나름 힘든 시간에 교회 안에 있으면서 사랑을 받으면서 소소한 고비들을 잘 넘겨왔던 것 같아요. 가난했지만 이런 것들이 나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어요. 친구들이 다 가난했거든요. 어려운 생활 속에서 순수한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해주셨어요. 형편이 어려운 탓이었는지, 부모님이 어린 시절 저에게 교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계셨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가치가 있다고 하시면서 권하셨는데, 저는 그저 우리 집 사정이 어려우니까 교사를 하라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정적이잖아요. 그렇게 교원대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후에 교직에 16년 동안 있었어요.”
부모님 권유로 교사로 16년 봉직
– 교사를 하셨군요. 보람이 있으셨나요?
“교사가 저와 잘 맞았어요. 큰 스트레스 없이 아이들과 잘 놀았어요. 승진에 대한 욕심도 없어 매우 편했어요. 교사가 되고 두 번째 해에 4학년 담임을 맡은 때였어요. 학기 초에 게시판을 꾸며야 했는데 미술에 소질이 없어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서 색지로 덧대고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아이들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같이 하다가 교무실에 갔다 왔더니, 정말 아이들이 다 해놨어요. 그때 초등 4학년이 가위질을 못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아이들이 칭찬을 받고 싶은 눈망울로 저를 보고 있어서 일단 칭찬해주고 저는 밤 9시까지 가위질을 했어요. 그때 아이들에게 좋은 말로 격려해줬던 말들을 생각하면서, 나도 변변치 않았는데 내게 괜찮다고 해준 사람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바라보셨겠구나.’ 생각하면서 이와 관련된 곡을 쓰기도 했어요. 그게 ‘아버지’라는 노래에요.”
– 이렇게 영감을 받으시면 곡을 쓰시는군요. 곡을 언제부터 만드셨나요?
“중학교 때 처음 만들었어요. 습작처럼 곡을 쓰기 시작했다가 극동방송 경연대회에 나가려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게 됐어요. 저는 작곡가가 되겠다거나 찬양 사역자 되겠다는 꿈은 없었어요. 제가 깨달았던 이야기들에 멜로디를 붙이면 노래가 된다는 게 즐거워서 일기 쓰듯이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런 곡들은 교회에서 특송을 한번 하면 컴퓨터 속에 묻혔죠. 말씀을 듣거나 일상을 살다가 주님이 주시는 마음들이 있으면 곡을 만들었어요. 곡들은 저와 관련된 가족, 아내, 아버지와 나누고 싶어서 만든 노래들이었기 때문에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할 필요도 없었죠. 누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노래가 좋아야 된다는 압박이 없었어요. 그저 그렇게 노래를 만들면서 사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300곡 정도 만들었어요.”
– 그러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찬양 사역을 시작하셨어요?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하네요.
“2020년까지는 교사를 했어요. 저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자라서 우리 가족이 어렵게 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아내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찬양 사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2014년부터 찬양 사역의 기회가 있었어요. 앨범이 나오면서 노래를 들으시고 교회에서 불러주시기 시작했어요. 주중에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주말에는 공연하고 주일에는 교회를 섬기는 삶을 살았어요. 그렇게 4~5년을 생활했더니 삶에 여러 문제들이 생겼어요. 잠을 잘 못자니까 먼저는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삶이 바쁘다 보니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잘 섬기지 못하니까 미안했어요. 이렇게 계속 사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찬양 사역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와 부모님이 지지해주셨어요. 그렇게 2019년에 결정을 하고 교장 선생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 이후에 일주일 동안 불안해서 잠을 못 잤어요. 우리 가족이 내가 어려웠던 것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어떻게 하나. 이런 두려움이 컸었죠. 게다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사직서가 수리되는 주에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어요. 불안함이 극에 달했죠.”
전임 찬양 사역자의 길을 선택하다
– 하필 그때 코로나가 터졌군요.
“본격적으로 음악 일을 하니까 집에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정작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거기서 울고 기도했어요. 쉼을 가지면서 생각해보니까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이들이 아프고…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지금의 상황도 차분히 받아들였죠. 내 신앙이 이제 성장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때를 허락하셨구나. 여전히 불안하지만, 신앙적으로 근사한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것도 잠깐, 불안이 또 찾아오기도 했어요.”
–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셨는지 궁금하네요.
“그 이후에 진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어요. 일단 퇴직금 받은 것으로 카메라와 영상, 조명 장비들을 샀어요. 또 저와 같이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여러 계획을 세웠죠.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유튜브에서 라이브 공연만 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것을 통해서 새로운 사역의 길이 열렸어요. 하루는 한 한인교회에서 저를 초대하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집회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이후에 계속 영상을 제작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어요. 불안함을 느낄 새도 없이 주님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어요.”
– 온라인 사역을 열어주신 거군요. 역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네요.
“‘요게벳의 노래’가 나오고 나서 찬양 사역의 기회가 많아졌어요. 매주 가니까 감사한데, 찬양을 만들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에 무거움이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이제 사춘기여서 말을 안 듣는데, ‘요게벳의 노래’는 계속 하나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주님께 맡긴다고 나눠야 했어요. 고백은 할 수 있지만 고백처럼 삶을 사는 건 다른 이야기여서, 집회를 하고 나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기도 했어요.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가사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요.”
– 히스킹덤뮤직이라는 기획사를 만드셨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음악을 하면서 만난 동료들 중에 대부분이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친구들이에요. 너무 좋은 친구들인데 생계 때문에 그만둘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히스킹덤뮤직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이들과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렇게만 하지 말고 회사를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들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기획사를 만들고 이들의 작업이나 활동하는 것들을 돕게 됐어요. 제 일은 뒷전이 됐지만, 좋은 결정이었던 거 같아요. 함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제 것을 조금만 희생하면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거든요.”
– 많은 음악을 만들려면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묵상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곡을 만드세요?
“절반 정도는 말씀을 듣다가 쓰게 됐어요. 설교는 말씀을 씹어 주시는 거잖아요. 그것이 내게 감동으로 왔을 때 인사이트가 되기도 해요. 이런 내용들을 새기고 싶어서 노래로 만들었어요. 말씀을 듣다가 노래의 어느 구절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물론 그것을 완성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또한 삶의 어떤 순간, 생각이 머물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곡을 써요. ‘낮은 곳으로’ 같은 경우도 헤드폰을 주문하고서 만들게 된 곡이에요. 가지고 있던 헤드폰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 음악 작업도 하니까 좋은 것을 하나 사고 싶어서 주문했어요.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었는데도, 주문하고서 마음이 찔렸어요. 좀 더 좋은 것을 찾고 편한 것을 찾는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미용실도 가장 저렴한데 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좋은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렵게 자랐으니까 어릴 때는 메이커 운동화 신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직장을 다니니까 이제 그런 것도 사게 되고, 삶의 기준이 올라가게 됐죠. 생일 때 좋은 식당 가야 되고, 나이가 더 드니까 안정되고 걱정 없는 노후를 생각하는 제가 예수님과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은 천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낮아지셨는데 저는 높아지는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을 본 것이죠. 반성하는 마음으로 ‘낮은 곳으로’ 가사를 쓰게 됐어요.”
– 작곡의 배경을 들으니 너무 재밌네요. 그렇다면 혹시 남다르게 생각하는 곡이 있으신가요?
“알리고 싶은 곡이 있어요. ‘교회’라는 곡이에요. 저는 유평교회에서 대부분 신앙생활을 했어요. 이 곡은 6년 동안 만들었어요. 2008년에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성도들도 많아지고 주님의 열정으로 교회가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을 때 목사님이 교인 수가 많아지는 것보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이 도전이 됐어요. 당시 성도님들에게도 마음을 많이 뜨겁게 했던 말씀이었죠. 이 마음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때 소리엘의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가 나왔어요. 이것보다 좋은 게 안 나올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 그러다 교회 성도들이 늘어나니까 가족 같은 분위기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사람이 넘치기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라는 가사 한 줄을 써놨어요. 또 목사님의 설교 중에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말씀에 감동이 돼서 가사 한 줄을 또 써놨죠. 그러다 한번은 교회들의 안 좋은 뉴스들을 보게 됐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나도 교회인데 정작 나는 얼마나 사랑이 많은가 생각하게 됐어요. 저도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죠. 교회는 주님이 피로 사신 거룩한 교회이고, 아름다운 교회이고, 성도들이 서로 깊이 아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렇게 떠오른 가사들로 곡을 만들고, 미사여구 없이 ‘교회’라는 제목으로 2013년에 곡이 나오게 됐죠. 우리 교회에서 10년 정도 부르고 있는 노래인데, 마지막까지 부르고 싶은 노래에요.”
“주님의 때에 우리를 사용해주실 줄 믿어요”
– 찬양 사역을 꿈꾸는 다음세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저는 예배 반주를 하고 있다가 예배 인도 하던 형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갑자기 예배 인도를 맡게 됐어요. 그런데 예배 인도를 위해 기타 학원을 가게 됐어요. 마침 기타 학원 선생님이 찬양 사역을 하시던 분이었고, 그 분이 제 곡을 다른 분에게 소개시켜줬어요. 그렇게 저의 찬양 사역이 시작됐어요.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해요. 저도 신앙 안에서 음악적으로 좋은 것들이 갖춰졌을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던 것처럼, 무대 밖의 삶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사명들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을 때, 주님의 때에 주님이 우리를 사용해주실 줄 믿어요.”
–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먼저는 우리 자녀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살면 좋겠어요.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야지 나일강이든, 어디든 보낼 수 있을텐데,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섬기고 싶어요. 또한 찬양 사역도 언젠가는 기능을 다하면 다른 역할로 주님을 섬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님이 저를 교회로 부르셨고, 남편과 아버지로 부르셨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로 제게 맡겨주신 사명들에 충성하고 싶어요. 균형 있게 각 영역에서 지혜롭게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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