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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주재권 구원의 바른 이해(5): 오용되는 주재권 구원

▲ 사진: pixabay

주재권 구원(Lordship Salvation)의 골자는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은 결과로서 행함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확증한다(약 2:17). 행함과 믿음을 분리하는 것은 몸에서 영혼을 분리한 것처럼 죽음이라는 것이다(약 2:26). 이렇게 분명한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해 왜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일까? 경계하는 것일까? 주재권 구원이 잘못 사용되기 때문이다. 주재권 구원은 다음과 같이 사용될 때 오류를 낳는다.

1. 주재권을 포함한 복음만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킨다

“복음에 어떤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가?”와 “어떤 복음을 전해야 구원을 얻는가?”는 완전히 다른 질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복음에는 빠져도 되는 내용이 없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 구약의 예언이나 신약의 성취, 칭의, 성화, 영화, 인치심, 죄사함, 양자됨 등 풍성한 복음의 내용 가운데 무엇을 뺄 수 있을까? 성령의 인격과 사역도 복음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 지옥의 무서운 실재를 아는 것 등 모든 것이 중요하다. 십자가 사역만큼 창조와 새창조는 중요하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과 주재권의 균형 잡힌 이해도 필요하다.

그러나 복음을 구성하는 성경의 풍성하고 필수적인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이 모든 것을 들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이는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말을 믿고 주를 따랐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사람마다 각자 거듭나게 된 방법과 모양이 다르다. 물론 전해야 할 복음은 분명해야 하지만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처럼 특정한 복음의 내용대로 해야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주재권 구원이 오용되는 경우가 이와 같다. 주재권을 가르치지 않아서 영혼이 참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주재권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재권을 가르쳐야만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구분을 정확하게 하지 않을 때 주재권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 그 이상의 자기 고집과 오류에 빠지게 된다.

복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는가? 그렇다.

복음을 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주를 따르는 것이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가? 그렇다. 아주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주를 따르라는 말을 해야만 구원을 얻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2. 주재권 구원의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를 살펴보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이 있는데, 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겉으로 확연히 드러날 수도 있지만, 드러나기 전까지 속에서 열심히 자라나는 열매이기도 하다(갈 5:22-23). 주재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는 그 열매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서만 찾으려는 것이다.

교회를 잘 출석하는가? 옷은 단정하게 입는가? 헌금을 잘 하는가? 교회에서 하는 일들에 적극적인가? 봉사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가?

신자의 삶 가운데 과거에 비하여 오래 참는 일이 얼마나 늘었는지, 내면에서 온유함을 품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죄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하나님 앞에 화평을 누리기 위해 내면의 전쟁을 얼마나 많이 치르고 있는지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바리새인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그 영혼의 구원 여부를 판단하기 쉽다.

예수님이 “화 있을진저”라고 강력하게 비난하신 바리새인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었지만 내면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결단코 예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다.

주재권 구원을 말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열매에만 집착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맹인들을 참된 신자로 분별할 수 있다. 금식하고 헌금하고 기도에 힘쓰는 교만한 바리새인을 의인으로, 하나님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자기 죄를 자백하는 세리를 죄인으로 오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주되심을 인정하는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를 맺지만, 그 열매를 맺기 위해 내면에서 작용하는 새 생명의 증거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 내면의 동기와 과정 없이 외부적으로 맺는 열매만 집착하면 또 다른 율법주의, 주재권 구원이 가장 오해받기 싫어하는 행위 구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더 나아가 주재권 구원에 심취된 사람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특정 기준을 주재권 구원을 만족하게 하는 요건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주재권 구원을 얻은 사람은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는다. 주재권 구원을 얻은 사람은 성경을 즐거워하며 읽는다. 주재권 구원을 얻은 사람은 술과 담배를 자동으로 멀리한다. 주재권 구원을 얻은 사람은 교회에 지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경우 이들은 완벽한 순종과 삶이 주재권 구원이 요구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 가운데도 주재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자기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은 주재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들은 삶의 열매를 구원의 결과가 아니라 구원의 조건으로 뒤바꿔 놓았다.

순서가 바로 놓여야 한다.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를 맺으면 주 되심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열심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주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열매를 왜 맺으려고 하는가? 그 동기에 있다.

주를 사랑하는가? 주가 하신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기 원하는가?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요 14:21) 주를 사랑하는 것이 모든 순종의 동기다. 그 동기에 따라 얼만큼 열매를 맺고 있는지는 각각 영혼의 장성한 상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주재권 구원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정해놓은 특정 삶의 형태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만 집착하는 것은 큰 문제다.

3. 주재권 복음도 모르는 바보

어떤 이들은 주재권 구원의 교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주재권이 조금이라도 덜 강조된 복음이나 주재권 복음에 대한 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교회는 주재권 구원도 가르치지 않는다면서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주재권 구원이 무슨 말인지도 몰라요”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은 교리에 대해서 완벽한 무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주재권 구원”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교만이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판단과 정죄는 그들이 신봉하는 “주재권”을 가지신 주님이 미워하는 일이다.

주재권 구원 교리를 정확하게 풀어 설명하지 못해도 대부분의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시며 나의 주인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것을 조직신학에 기술된 것처럼 설명할 수 있어야 주재권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다.

주재권 구원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이 “나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주재권 구원은 반대한다”고 말한다. 이는 주재권 구원을 신봉하는 많은 사람이 “예수를 주로 모신다”라는 표현이 “주재권 구원”이 아닌 것처럼, 혹은 그 표현은 주재권 교리를 충분히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식으로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주재권 구원이 가르치는 칭의와 성화의 연결고리, 은혜 복음에서 간과한 믿음과 행함의 강력한 관계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은 진리와 함께 거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참된 진리는 교만과 함께 거하지 않는다. 주재권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 바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주재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가 제자들에게 진리를 설명하는 과정을 살펴보라. 깨달음이 없고 이해가 둔하고 자주 오해하며 믿음이 부족한 그들에게 주님은 본을 보이며 사랑으로 온유하게 가르치신다. 주재권 구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주님의 본을 닮는다. 주재권 교리를 잘 모르는 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이 가진 복음을 평가절하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주재권 구원의 교리를 잘 모르는 자다.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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