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등포 목요사역 중 감사하고 기쁜 만남이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영등포 광장에서의 기도 사역이 거의 끝났을 때 한 어머님이 저희 비어진 간식 상자를 자꾸 쳐다보셨다.
“어머님, 너무 늦게 오셔서 도시락이 다 떨어졌네요”
말씀을 드리며 조금 떨어진 곳을 보니 어머니의 폐지 쌓은 수레가 보였다. 어머님는 제가 처음 뵙는 분이었고 어머님도 저희 사역을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저희가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 목요일 기도도 해드리고 도시락을 드리니 다음 주에는 꼭 오셔서 간식도 받고 기도도 받으세요.”
어머니는 몰랐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새 내가 이 일을 하느라 기도도 못하고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고 있어요. 말씀도 못 읽고 해서 내가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이 일을 그만두기도 그렇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갈급한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만나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감동이 되어 송시아 사모님, 무명 집사님 그리고 내가 뜨거운 기도를 올려드렸다.
두 번째 이야기.
지난 화요일에 간식과 함께 운동화를 신청한 분을 못 만나서 그분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며 영등포역 뒷길 주차장 쪽으로 갔다. 그곳에서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이*섭 님을 만났다.
지난 주 만났을 때 운동화와 함께 지낼 방을 하나 구하고 싶다고 해서 동역자 집사님과 방을 하나 알아놓은 것이 있었는데 이*섭 님은 그동안 남대문 주변에 방을 구했다고 해서 운동화만 전달해 드리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린 후 일어나 뒤돌아 가려는데 뒤에서 어떤 분이 자기도 기도를 받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 자신은 어릴 때 염전 노예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며 노예처럼 살았고 그래서 장애도 입었다며 자신의 지난 삶을 짧게 말씀해주셨다. 동역자 집사님과 나는 형제님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형제님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짠했다.
“언제 여기 오셨나요? 또 어디에 사세요?” 물으니, 어제 영등포에 왔고 아산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동역자 집사님과 나는 이*섭 형제님을 위해 얻어 놓은 방으로 함께 갔다. 방은 제법 크고 비교적 깨끗한 곳이었다. 주인이 술 먹는 사람은 방을 주지 않는다는 곳이어서 더욱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형 형제님은 10대 때 어떤 사람에게 속아서 봉고차에 억지로 태워져서 목포 인근 섬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염전지대인 그곳에서 모진 학대를 받으며 살았다고 했다. 그때는 섬이어서 배를 탈 수 없어 도망을 칠 수가 없었다. 다리가 놓여진 후 어떤 분의 도움으로 도망을 칠 수 있었다고 했다. 도망 나온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산에서 2-3년 지내가다 영등포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몇 년 전 TV에서 염전노예 사건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났다. 이런 피해자들이 또 이렇게 아무런 보호조치도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 같다.
어째든 저는 송*형 형제님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영등포에 올라와서 오늘 이렇게 우리를 만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은혜라고 믿는다. 이제는 하나님 품 안에서 그 깊은 상처를 치유받고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바라본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이미영>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손은식 목사와 프레이포유 사역을 섬기는 사역자들의 사역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손은식 목사 | 2013년 말부터 서울 시내의 노숙자와 홀로 사는 어르신을 돕고 기도하는 프레이포유 사역으로 이 땅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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