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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처럼 순종의 길을 걷겠습니다”

행복한 선교사의 길을 걷는 노문환 · 장정희 선교사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에게 순종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순종은 결국 우리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장기선교사로 떠날 날을 준비하고 있는 노문환(57) 선교사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도 ‘순종’이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기 전까지 그는 많은 형태의 삶을 살았다. 방앗간 일에서부터 슈퍼마켓 운영, 영업사원으로 뛰어다녀도 보고,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심지어 택시기사까지. 그러나 삶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는 한 기쁨은 누릴 수 없었다. 1년간의 단기선교를 마치고 다시 부르신 곳으로 떠날 노문환·장정희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편집자>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1년간 K국에 단기선교로 다녀온 이후 장기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공동체훈련도 받고 현재 주님이 허락하시는 안식의 시간을 누리고 있어요. 지금은 아들이 담임 전도사로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어요. 함께 놀아주는 것이죠. 어지간히 말을 안 듣는 요즘 아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40여 년간이나 방황하던 저를 떠올리게 돼요. 그리고 저를 만나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어요.”

– 주님의 ‘오래 참음’ 앞에서 이 땅의 어느 누군들 할 말이 있을까요. 주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학창시절에 친구들이랑 노는 재미로 교회에 다녔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군대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사랑하게 됐고, 교회를 멀리했어요. 결혼 후, 아내의 허리가 많이 아파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기적같이 나았어요. 주님의 은혜죠. 그때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됐어요.

그러나 몸은 교회를 나갔지만, 이전에 세상에서 짓던 죄에서 떠나지 못했어요. 성가대 지휘, 주일학교 교사 등 주일에는 거룩한 모습으로 살다가 평일 밤만 되면 옛 습관 그대로 나이트를, 술집을 드나들며 음란한 죄를 일삼았어요. 그 당시에 다니던 교회 2층에서 저희 부부가 함께 어린이집을 운영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교회는 열심히 다녔어요. 그런 칭찬을 들을 때면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이 제가 정말 좋은 성도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은 장모님 때문이었어요.”

–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아내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 불교 집안의 중심에 있는 장모님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부산에 계신 장모님을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어요. 사실 결혼하고 줄곧 장모님을 위해 기도했었구요. 그러다 저희가 부산으로 내려가 홀로 계신 장모님을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쉽지 않았죠. 무엇보다 두려움이 컸어요. 그때까지 누리던 삶의 모든 기반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내려갈 수 있었어요.”

장모님을 전도하기 위해 이사

– 평범한 결정은 아니군요. 전도를 위해 이사를 결정하신 것은 주님이 부어주신 마음이군요.

“2001년에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사실 처가 식구들은 이상하게도 예수를 믿으면 사람들이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내 외에는 누구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어요. 당시 손아래 처남 혼자 장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때문에 저희가 자연스럽게 장모님을 모셔야 했어요. 장모님은 중풍으로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장모님의 건강이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게 됐죠. 그때 장모님은 집안에 있던 온갖 우상들을 다 버리셨어요. 그 후, 가족들에게 전도를 하며 복된 삶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어요.

하지만 처가 식구들 가운데 복음을 완강히 거부하던 분들도 있었어요. 나중에는 그 중 두 사람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어요. 또 두렵기도 했어요. 부산에서 머무는 3년여의 시간동안 장모님의 영접과 소천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경험하고 저희 부부는 본격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 믿음으로 내디딘 발걸음으로 큰 은혜를 경험하셨군요.

“저희 부부는 다시 청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또 한 번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게 됐어요. 저와 큰 아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셔서 아들은 감리교단에서, 저는 순복음교단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무렵 아내가 저희 부자의 신학공부 뒷바라지하느라 수고 많았죠. 그리고 저는 한 교회의 부교역자로 섬기며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며, 열성적으로 산기도, 집회, 세미나를 다녔어요.”

– 그렇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역자의 길로 접어드셨군요.

“부교역자로 2년 정도 섬기다 교회개척에 대한 비전을 받고, 순종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구하던 중 겉은 멀쩡한데 너무 지저분한 귀신 영화 세트장 같은 공간을 보게 됐어요. 상가 안에 있던 곳인데, 뜻밖에도 교회간판이 걸려있었어요. 보는 순간 ‘이 교회는 망했다.’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 제 영혼이 ‘아니, 교회가 망할 수 없지!’라며 대꾸했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상가 대표격으로 보이는 세탁소 주인이 돈을 조금 주시면서 건물을 보수하는데 쓰라고 하실 정도로 상황은 암담했어요.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2007년 5월에 첫 예배를 드렸어요.

‘교회는 망할 수 없다’ 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교회 개척

– 그렇게 개척된 교회를 섬기면서 주님이 많은 은혜를 주셨을 것 같아요.

“주님을 향한 열정은 뜨거웠어요. 그런데 저의 힘으로 죄가 끊어지는 게 아니더군요. 예전처럼 드러내놓고 죄를 짓진 않지만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여전히 실족하는 저를 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어요. 진리에 대한 목마름은 날로 더했어요. 그때 아들이 한 선교단체의 훈련을 받으면서 십자가 복음을 만나며 변화를 경험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마지막으로 제가 그 십자가 앞에 서게 됐어요. 그때 직면하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내가 존재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이었어요. 먼저 아내에게 위선적이고 거짓된 나의 옛 생명이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았다는 사실을 고백했어요.

그러나 이혼의 위기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왜냐하면 제가 어떤 죄인이었는지 밝혀야했기 때문이었어요. 두려웠지만 주님이 도우시리라는 믿음을 주셨어요. 그렇게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은혜로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승리했어요!

– 그런 믿음의 행보가 어떻게 현장 선교사의 삶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네요.

“복음을 누리는 삶에 대한 갈망으로 선교단체의 선교훈련과 기도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달아갔어요. 복음의 진리를 알아가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선교헌신은 당연한 결론이라는 사실이 믿어졌어요. 불러 주신 주님을 위해 모든 시간을 섬기겠다고 굳게 맹세했어요.

그런데, 선교사로서 내 삶을 드린다는 결단은 할 수 없었어요. 나같이 악독하고 더러운 사람이 선교사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마침내 순종하기로 결단했어요. 그렇게 순종하기로 했더니, 그전부터 교제하던 선교사 파송단체인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K국에 가게 됐어요.

– 선교지로 떠나기까지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순종하면 주님이 길을 여시더군요. 사실 제가 사역을 하는 동안 아내는 어린이 교육사업을 계속 해왔어요. 그러던 어느 시점부터 그동안 별로 어려움을 몰랐던 사업이 주춤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갑자기 부채가 늘어나면서 어려워졌어요. 선교사로 삶을 드릴 것에 대한 기도를 하던 중 이 같은 상황을 맞게 됐어요.

더 이상 미련도 없이 헌신하라는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아내가 30년간 운영해왔던 사업을 청산하고 나니 현장에 나갈 항공비 등 최소한의 경비만 딱 남더군요. 그리고 2012년 11월 드디어 열방으로 나아가게 됐어요.”

– 감격적인 순간이네요. 선교지에서 어떤 영역을 섬기셨나요?

“처음에 저희와 협력하기로 한 선교사님은 단순히 유치원을 도와줄 사람을 요청했었나봐요. 저희가 현장에 도착한 이후 기도하면서 유치원을 살펴봤어요.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유치원을 잘 섬길 수 있을까. 그러다가 먼저 유치원 교사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복음을 전했죠.

결국, 복음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면 주님 주신 사랑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게 되니까 당연히 잘 되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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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선교지 K국 유치원에서 학부모 참관 야외수업 활동 모습

– 현장 선교사님들과는 어떻게 협력하셨나요?
“주님이 만나게 하신 분들과 교제하면서 주로 기도했어요. 성경을 읽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며 기도하는 말씀기도 시간을 가졌죠. 또 한국에서 오는 아웃리치팀과 함께하는 느헤미야52기도를 통해 은혜를 누렸어요. 그때마다 주님이 많은 은혜를 허락하셨어요.

그리고 저희가 알고 있는 기도24·365나 느헤미야52기도를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며 함께 은혜를 나눴는데, 지금은 현장 선교사님들 수십 명이 참여하여 연합기도 모임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해요.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기도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경험한 시간이었어요.”

연합, 기도의 자리에서 가능한 하나님의 은혜

– 단기선교를 통해 주님이 주신 은혜와 깨달음을 정리해주신다면요?

“선교지에서 매번 진리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어요. 때로는 쌓였던 분노와 미움이 마구 터져 나오는데, 그런 제 모습에 참 어처구니 없었어요. 그래서 귀국 이후 공동체훈련을 받고 다시 선교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희 네 식구가 오직 주님께만 구해서 허락받는 믿음재정으로 살고 있는데, 제 계산으로는 훈련받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더라구요. 고민이 됐죠. 그런데 주님이 계속 말씀하셨어요. 마지막 새끼 두 마리들을 두고 본성을 거슬러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처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길을 따라가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순종하게 하셨어요. 실제로 작년 상반기에 저희 부부가 함께 6개월간의 공동체 훈련을 주님 은혜로 받았어요.”

– 순종의 길을 걷는 두 분을 위한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저희는 다시 선교지로 가기에 앞서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몇 분들과 함께 열방연합기도팀이란 이름으로 주님 안에서 교제하고 기도하고 있어요. 또 함께 장기 선교를 떠날 한 목사님 가정과 함께 준비모임을 가질 계획이에요. 앞으로 저희를 통해 복음의 생명이 흘러넘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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