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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언론들이 왜 ‘비친족가구’ 증가에 관심을 갖는가

Photo by Kevin Delvecchio on Unsplash

최근 통계청에서 한국 인구에 관한 통계 현황을 분석, 자료를 배포했다. 언론은 이 자료를 인용, 친족 가족이 아닌 ‘비친족’으로 이뤄진 가구가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친족이 아닌 비친족으로 이뤄진 가족이 100만 명(47만 3000가구)이 넘어 ‘가족의 재탄생’이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통신사의 이 같은 첫 보도 이후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친구와 연인이 산다’ 등의 제목으로 비친족가구로 이뤄진 가구가 크게 늘었다고 대서 특필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조사 보도자료를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봤다. 가족구성원의 비친족가구는 2010년 20만 가구(24만 명. 당시 가구 구성인원은 1.1명)를 기록한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 통계조사에서 그밖에도 주목할만한 내용은 많았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가 처음으로 0.2% 줄어들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또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국내 복지 대책을 비롯 다양한 숙제가 예상된다. 이밖에 국내 거주 외국인 구성비, 지역별 인구증감 등 주목할 요소는 적지 않았다. 문득 질문이 생겼다. 왜 국내 언론들은 그 많은 통계 자료 가운데 전체 인구 가운데 2% 남짓하는 비친족의 가구 구성비에 주목했을까?

이를 최근 국내 언론의 보도 경향과 견주어 짐작해보자. 우리나라 대형 언론이 관심을 갖는 주제 중 하나는 동성애와 동성혼의 대중화다. 각 방송매체는 너도 나도 ‘퀴어’나 ‘나이 어린 부모’ 등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신설을 서두르고, 인쇄매체는 이런 이슈만 등장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동성애와 성전환, 동성혼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온라인매체 역시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론들은 또 성소수자로서 받는 어려움을 들먹이며 이들의 삶을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집중 조명하기도 한다. 이런 언론의 양태를 볼 때, 비친족가구가 늘어났다는 통계조사는 환호할만한 자료가 아닐 수 없을 듯 싶다. 성소수자로 이뤄진 가구 역시 비친족가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전통적으로 5가지 기능, 즉 정보전달, 여론형성, 의제설정, 환경감시, 오락제공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데 인류 사회는 암묵적으로 가져온 대전제가 있다. 적어도 국민, 주권, 영토를 훼손하지 않는 가치관과 윤리도덕으로 그 사회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마다 언론은 그러한 거대담론과는 달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한껏 인간의 욕망을 분출해왔다. 선정성의 상징으로 옐로우 저널리즘이 등장하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권력 또는 금력의 충견(忠犬)을 자처하기도 한다.

더욱이 최근 언론은 이데올로기의 전파자 및 나팔수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듯하다. 이런 언론은 약자, 노동자, 이주민, 그리고 성소수자 등 이른바 ‘마이노리티’에 관한 이슈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반면, 기존 기득권으로 여겨지는 계층과 종교 집단(특히 기독교) 등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을 갖고 보도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서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정한 결과로 지탄을 받는 교회와 기독교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회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계기로 기독교계 전부를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 가운데 상당수는 근대사에서 한때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었다가 이제는 엄연한 기득권층을 이룬 소위 범민주화 세력에 대해서는 애써 비판의 칼날을 자제한다. 기성 언론인 가운데는 한때 그런 민주화 대열에 참여했거나 학습의 결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듯 싶다. 그러나 엄연한 도덕적 해이나 탈법적 행동에 대해서도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면, 비판을 자제한다. 그들의 탈법과 불법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그러니 올바른 객관적 보도와 비평이 나올리 만무하다.

사실 한국의 민주화는 소위 운동권과 함께 묵묵히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흘리며 수고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뤄졌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밤낮을 달려온 아버지와 어머니, 이역만리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수많은 한인 이주 노동자와 가족들 역시 우리 역사의 주역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글깨나 배우고 학문을 익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설득력 있게 쏟아내지만, 그저 가족의 생존을 위해 달려온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언니들은 그런 가족과 이웃을 자랑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을 뿐이다.

더욱이 민주화 운동의 후광을 업고 있는 세력은 이제 어엿한 기득권층을 형성해 철밥통 같은 먹이사슬을 유지 강화하려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적폐로 몰아붙이며 지역 계층 갈등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언론에서 이 같은 사상적 궤적을 가진 언론인은 물론 학자나 지식인들을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국민 다수의 생각을 세뇌시키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그로스클로스 교수는 “좌경화: 어떻게 리버럴 미디어의 편견이 미국인의 마음을 왜곡시켰을까?(Left turn: How Liberal Media Bias Distorts the American Mind)”라는 제목으로 미국 미디어가 보이고 있는 해악을 ‘좌경화’라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좌경화된 미디어다. 이들은 한국 언론이 국제뉴스의 바이블 정도로 여기는 미국 주류 언론이다.

흥미롭게도 오피니언의 접두어 ‘오피엄’은 마약, 아편을 의미한다. 오피니언 리더는 자칫 독 같은 사상을 퍼뜨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단어는 암시하고 있다.

존 밀턴(1608~1674)은 종교개혁이 시작된지 100년 이후, ‘자유 언론’을 부르짖은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존 밀턴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사실 그는 이혼의 자유를 외치고 싶었다. 실제로 자신의 부인과 이혼을 해명한 책자 ‘이혼의 교의와 질서’가 고발을 당하자 그는 이를 항변하기 위해 ‘아레오파지티카’를 집필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연설하던 곳 ‘아레오바고’(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레오파고스로 불림)를 상징하는 제목으로 그는 이혼을 금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는 얼마전 ‘낙태’를 비범죄화했다. 몇십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법제도를 뜯어고친다고 낙태가 살인행위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태아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태아가 가장 안전하게 여겨야할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잔인하게 찢어 죽이는 낙태는 명백한 살인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종기를 떼어내듯 여기는 현실을 반영한 결론이 낙태의 비범죄화다.

어쩌면 낙태의 허용은 ‘이혼의 자유’를 주장한 오피니언 리더의 욕망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도 자본의 축적이 이뤄지며 등장한 부자들에게 젊고 예쁜 부인을 얻기 위해 이혼의 자유를 주장한 오피니언 리더의 주장은 마약처럼 짜릿했을 것이다. 이혼의 자유를 부르짖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금 동성애, 동성혼을 부르짖은 그들과 동일한 선상에 있지는 않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이때 오피니언 리더들이 뿌리는 독을 그대로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이제 우리 사회가 결단해야 할 때가 왔다. 동성애,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서구사회는 그 이후 소아성애, 수간과 같은 말도 안되는 비이성적인 성적 행각이 옳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퀴어행사를 촬영한 사진 가운데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항문섹스는 인권이다. 정말 좋단다’ 동성애가 그저 육신의 정욕을 의미하는 것임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그들의 구호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루는 비친족가구의 증가를 그대로 지켜본다면, 다음세대가 고스란히 뼈아픈 대가를 치르도록 내버려두는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잠언 20:23) [복음기도신문]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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