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입은 자. 내게서 어떤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의 부르심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다. 선교지에서 20년의 사역을 통해 낮아짐과 무능함을 철저히 경험하며, 다시 부르심의 땅으로 나아가는 선교사 부부. 거짓으로 똘똘 뭉쳐졌던 인생, 야곱이 얍복 강을 건너 형 에서를 만나 ‘모든 것이 은혜’라는 고백이 바로 자신의 고백이라고 말하는 전만규.김미정 선교사의 믿음의 삶을 만났다. <편집자>
– 선교사로서 믿음의 삶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전만규(이하 전) : “선교사로 헌신하기 전, 선교는 저의 관심 밖이었어요. 그러나 군 제대 이후 한 예배모임에서 중국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됐어요. 그 무렵, 한 우크라이나의 선교사님께서 저를 오라고 요청 하셨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제가 비전으로 받은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 교통사고로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그분의 요청이 생각났고 다시 기도하게 됐어요.
결국 주님께서 어디로 보내시든지 가겠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받고, 처음 부르신 그 땅, 우크라이나로 가게 됐어요.”
김미정(이하 김) : “저는 대학생 시절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결단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졸업과 함께 그 마음을 잊어 버리고 직장 생활을 했어요. 그때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되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렇게 살기는 싫었어요. 그 무렵 한 선교사님의 기도편지를 받아보게 되면서 다시 선교사의 꿈을 꾸게 됐어
요. 그 편지의 주인공이 지금의 남편이에요. 우리는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결혼을 하게 됐고 우크라이나로 떠났어요.”
– 그렇게 도착한 선교지에서 삶은 어떠셨나요?
전 : “처음에는 언어를 배우고 찬양사역을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관계의 어려움이 찾아왔고 제가 기대하고 있던 것들이 많이 꺾였어요. 그러한 삶에 한계를 느낄 때 쯤 주님은 교회개척사역으로 인도해주셨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러나 관계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우울 증세까지 보이며 선교사의 삶에 대한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일이 나타나더군요.
–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전 : “참 오래 걸렸어요. 그 당시 어려운 시간을 지나면서, 제가 약속의 말씀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다시 주님께 엎드렸을 때, 주님이 사역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셨어요. 그렇게 6년 동안 열심히 섬겼어요. 하지만 진정한 기쁨은 없었어요.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문제는 제 내면에 열등감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신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자격지심이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제 자신을 점검해보고 싶은 마음에 함께 사역하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어요.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었죠. 저는 그들에게 상처만 주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털썩 주저앉았어요. 그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고 한국으로 도망치듯 나오게 됐어요.”
자신이‘상처주는 사역자’라는 사실에 충격
– 그렇게 어려운 상태에서 귀국하셨군요. 한국에서 어떻게 보내셨 나요?
전 : “그때가 벌써 10여년 전이었어요. 2003년께 패배자처럼 한국에 돌아와서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훈련도 받았어요.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복음의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훈련이었어요. 어떻든 2년 뒤인 2005년에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출국 전날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어요.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제가 ‘아버지를 원망했는데 이제는 용서한다’는 식으로 말씀드렸어요. 사실은 저의 책임인데, 문제의 원인이 아버지께 있었다고 말씀드린거죠. 어처구니없게도 가족과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로 우크라이나로 떠나게 됐어요.”
– 이후 어떤 상황을 맞게 되셨는지 자못 궁금하네요.
전 : “그렇게 맞이한 현장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집시 사역을 하겠다고 뛰어들었는데, 우크라이나 사람들과는 언어, 문화, 가치관이 전혀 다른 집시들에게 이전의 경험으로 사역하려했어요. 그러나 집시사역뿐 아니라 선교는 열정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죠.
집시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 결국 혈기와 폭력적인 모습까지 드러나게 되면서 위기를 느끼게 됐어요. 또다시 안식년이란 핑계로 도망치듯 동생이 있는 말레이시아로 갔어요. 그러나 외면당하고 있다는 마음에 자살까지 생각하게 됐죠. 그제야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과 함께 주님께 대한 갈급한 마음이 생겼어요.
– 그런 목마름이 어떻게 해갈되셨나요?
전 : “지인의 소개로 일주일 동안 성경을 중심으로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훈련과정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 시간을 통해 진리를 믿는 믿음이 제게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됐고 저의 20년 선교사역에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어요. 알고 있는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또 그 훈련과정을 사람들에게 강권하면서 어렵게 하기도 했어요.(웃음)”
김 : “저도 함께 훈련을 받고 무척 은혜를 받았지만, 복음을 듣고 급격하게 변한 남편의 이런 모습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전 : “복음을 만나기는 했지만 말씀이 실제가 안되는 이런 저의 모습이 아니다 싶어, 살려달라는 마음으로 가게 된 곳이 24시간 기도가 이어지는 열방기도센터였어요. 일주일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지식적으로만 알았던 십자가 복음이 실제 되는 시간이 있었어요.
로마서 말씀기도를 통해 죄 된 저의 실체, 지옥 뚜껑 위에서 주님을 위한답시고 방방 뛰었던 저의 모습을 직면하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내리게 됐어요. 그 순간 십자가에서 내가 되어 죽으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2000년 전에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 실제 되었어요. 그때 주님이 다시 저를 우크라이나로 보내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묻지는 않았죠.”
– 주님이 그 다음에 어떤 과정으로 인도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전 : “그 무렵 지인으로부터 복음사관학교(GNA)라는 훈련과정을 마치고 가면 어떻겠냐는 추천을 받았어요. 6개월 동안 공동체 생활을 통해 지식적으로 동의하는 복음과 기도의 삶을 실제 경험해보는 훈련과정이라고 들었어요. 왠지 가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은 있었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 권고를 외면한 채 우크라이나로 갔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또 다시 무참히 부서지고 깨지는 시간을 겪었어요.”
김 : “그때 저는 복음이 나에게 실제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복음 전하는 것이 기쁘지 않고 부담스러워하는 저의 모습을 통해, 아직까지도 내 안에 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깨어지지 못한 단단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전 : “다시 도착한 우크라이나에서 오직 말씀과 기도에 목숨을 걸었어요. 그리고 저희와 함께 오랫동안 교제했던 현지인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런데 함께 기도를 하면서 그분들과 갈등이 생겼어요.”
복음을 깨닫고 도전했지만…
– 어떤 어려움이었나요?
전 : “제 자신도 복음이 삶 가운데실제 되지 않은 상태로, 무조건 주려고만 하는 저의 최선의 결과는 결국 그 사람에게 발길질 당하는 비참함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불어 진행하던 토목공사에 제동이 걸리고, 한국에서 아버지가 폐암이 걸리셨다는 소식까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상황 속에서 주님이 시편 37편 말씀을 통해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 저희 아이들이 한국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에 가게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성경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 학교에 관한 자료와 영상을 보면서 마음의 소원을 갖게 됐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만 의지하고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 그렇게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셨군요. 그 이후 주님이 어떻게 가정을 이끌어가셨나요?
전 : “아이들과 투병 중인 아버지 때문에 돌아 왔지만, 주님이 한국으로 오게 하신 이유가 따로 있더군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지 못했던 6개월간의 GNA 훈련과정을 다시 기억나게 하셨어요. 이 훈련을 결정하게 된 것은 누구의 권유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말씀으로 부르셨다는 사실 때문이었어요.”
김 : “저는 결혼 후에는 남편이 이끄는 대로만 순종하는 자였어요. 그런데 이번 GNA 과정만큼은 그럴 수 없더군요. 훈련 자체가 부담도 됐지만, 십자가 복음의 영화로움을 경험하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때 시편 23편으로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처음 그 말씀을 받고서는 단순히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받고 훈련을 결정하게 됐어요.”
– 훈련 기간 동안 주님이 어떤 은혜를 주셨나요?
전 : “몇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어요. 저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께로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훈련기간 내내 제 자신만 주목했다는 것과, 저의 지나온 삶 전체가 주님을 주목하지 못했던 삶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아웃리치는 용광로를 지나가는 듯한 시간이었어요. 선교사라는 경험과 내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로 권위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나에 대해 보게 됐어요.
그러나 그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을 통해 주님은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어요. 이사야 41장 14~15절이었는데, 그동안 내안의 산이었던 20년이라는 선교사의 삶을 다 부숴 날려버리시고 오직 주님만 남게 하신 거죠.”
–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전 : “전 정말 자격이 없는 자예요. 쓰레기보다도 못한 존재를 하나님이 다시 불러주셨어요. 정말 은혜죠. 나에게 있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했을 때는 다 죄 뿐이었는데, 그 모든 것을 십자가로 도말하여 주시고 이제는 예수 생명으로 온전히 이끌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으로 바꿔주셨어요
“얼마 전에 창세기를 묵상하는데, 야곱이 얍복 강을 건너 형을 만나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마치 저의 삶이 거짓으로 똘똘 뭉쳐 죄의 운명이 된 야곱과 같더군요. 그러나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 이제는 주의 은혜로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으로 바꿔주셨어요.
그 은혜면 충분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20년의 삶은 야곱에게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하던 벧엘과 같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자리에요. 그러나 이제 예수 생명으로 바꾸셔서 다시 우크라이나로 불러주셨어요. 오직 십자가의 공로와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아멘 하여 나갈 수밖에 없어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 나눠주세요.
전 :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어서 난민들이 서쪽으로 이동 중이에요. 선교사들이 잠자리만 제공하면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이에요. 무엇보다 이들을 섬기는 분들이 사역이 아닌 복음에 사로잡힐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또한 우크라이나에 있는 교회들이 기도의 집으로 거듭나고, 복음의 본질을 경험할 뿐 아니라 실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 앞에 온전히 서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김 : “이번에는 주님이 허락하셔서 저희 외에 또 한 가정이 한 팀으로 가게 됩니다. 가서 공동체를 이루게 되겠죠. 각자가 복음과 기도로 결론을 낼 때 불가능한 저희를 주님과 연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치열한 전쟁을 끝낸 십자가의 자리에서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며 진리 앞에 매순간 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