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순서를 맡은 학생들의 위와 밑이 너무 대조적이다. 상의는 정장형 코드이다. 넥타이와 하얀색 와이셔츠이다. 카렌 옷을 그 위에 입으니 맵시가 제법 난다. 반면 하의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맨발이다. 양말을 신지 않은 정장형 복장으로 예배 사회를 보고 예배 순서를 맡고 있다. 2022년 6월 8일 실로암 신학교 아침 8시 예배 때 모습이다.
한국의 신학교에서 이런 복장을 하였다면 당장 문제가 될 것이다. 예의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예배 자세의 기본도 되지 않았다고 지적을 받을 모습이다. 어떻게 예배 인도자가 맨발일 수 있는가?
그런데 이곳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복장에 대하여 준비가 덜 되었다고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사실은 아예 그런 것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도 사실 눈에 띄지는 않는다. 유심히 살펴보고 한국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보니까 대조적으로 보인다. 가만히 보니 예배 참석자들이 대부분 맨발이다. 교직원도 맨발이고 나도 맨발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한 한 지도자의 모습도 비슷하다. 매홍손에서 축하객으로 온 교인은 ‘후웨이까이빠’라는 마을의 이장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의 옷이 눈에 들어온다. 위에는 카렌 옷감으로 만든 양복이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지만 나름 새로운 가정을 위해 신경을 쓴 것이다. 그런데 밑을 보니 맨발이다. 신발은 태국에서 농촌에서 흔한 발가락 슬리퍼이다.
그가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유지이다. 상의에 수트를 입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도 그의 복장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발 쪼리를 신었다고 해서 무례한 것이 아니다. 나름 최선을 다한 제법 격식을 갖춘 복장이다.
선교지를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생각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뭔가 부족하고 뭔가 연약하고 뭔가 배워야 할 존재처럼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일부 방문자는 한국교회와 다른 모습을 찾으면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려는 것 같다. 맨발의 예배 인도자나 발가락슬리퍼와 같은 모습이 대표적일 수 있다.
기준은 필요하다. 정말 중요한 기준이 있다. 교회이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모습들이다. 참된 예배, 간절한 기도, 말씀에 대한 사모,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헌신 그리고 교회의 본질인 선교하는 자세 등일 것이다. 물론 상황과 문화에 따라서 선을 넘어서면 안된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상황속에서 적용할 내용이 아니다.
예배 담당자 중 성경 읽기 순서를 맡은 학생의 신실함을 안다. ‘따불르’라는 학생인데 그의 부모를 닮았다. 그의 아버지는‘호코고’라는 산골 마을의 목회자이다. 육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영적인 풍요를 가진 가족이었다. 약 10년전 신학교 기숙사 건축을 위하여 그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이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진 않는 동네였다. 이른 새벽에 세명의 아이를 깨워서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기억난다.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였다. 산간지방이라 추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예배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당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기숙사 건축을 위하여 헌금하도록 격려하였다. 당시 막내가 2살, 동생이 8살, 이 학생은 10살이었다. 각각 100받을 헌금하였는데, 한달 과자 값이라고 한다. 그의 자세를 보고 큰 도전을 받았다. 그 아들이 이제 커서 아버지처럼 목회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 신실한 부모를 닮은 것이다. 대를 이은 신앙이 귀하다.
문화적 요소는 변한다. 세상의 교회는 늘 일정하지 않다. 지역교회도 흥망성쇠의 역사가 있다. 한국교회가 그것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렇지만 복음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한 교회의 선교적 부르심도 변하지 않는다. 선교지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양말을 신지 않는 교회도 선교적 부르심이 있다. 그 방법과 방향은 다를 수 있다. 그들의 상황속에서 선교사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젊은 카렌들은 그들의 모국어인 카렌어는 물론이고 표준 태국어를 선교사들보다 훨씬 잘한다. 그리고 상당수는 북부 태국어도 구사한다. 이들의 언어적 자원 한가지만으로도 선교적 가능성이 대단하다.
카렌족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생존해 왔고 건강한 토착교회를 세워왔다. 그런 저력을 가진 교회가 그들의 경계를 넘어 선교하는 교회를 소망한다. 타이민족들이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신앙과 헌신을 배운 ‘따불르’를 통한 하나님의 선교를 기대한다. 예배 때 양말을 신지 않은 예배 담당자이지만 그 안에 대단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기도신문]
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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