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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통신] 정처없이 서유럽으로 가는 난민들

▲ 국경은 전쟁을 피해 넘어오는 난민들로 붐볐다. 사진: 김태한 선교사 제공

우크라이나 리포트 (5)

루마니아 국경. 추운 날씨에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걸어온다. 어린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가방을 끄는 엄마들, 거동이 힘든 노인,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 한결 같이 지친 모습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첫 마디 동일하다.

“따뜻한 차(음식)를 마시고 싶어요.”

루마니아 교회들, 적십자, 구호단체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따끈한 차와 음식을 준비하여 난민들의 차가운 몸을 녹여준다. 꼭 필요한 또 한 가지는 휴대전화에 넣는 심카드이다. 국경을 넘었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하던 전화카드를 바꿔야 한다. 이것도 봉사자들이 무료로 나눠준다. 루마니아 형제, 자매들이 참 따뜻하고 친절하다. 텐트를 들여다보니 가족 단위로 앉아 있다. 급히 국경을 넘었지만 이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그들의 얼굴은 황망하기만 하다.

이들 사이에서 서성이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두터운 옷에 머리와 목을 감싸고 얼굴만 조금 보이는 자매가 말을 건넨다.

“목사님, 저 기억하시나요? 제냐에요.”
오래 전, 신학교 재정을 담당하던 회계사 자매다. 반가웠다.
“제냐~ 그럼요. 기억하지요. 반가워요. 여기서 만나다니, 혼자 왔어요?”
“아니요. 남동생과 조카가 있어요 . . . “

독일로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차편 상황을 알아보니, 한 시간 후에 독일로 가는 버스가 있다. 그러나 출발을 만류했다. 이렇게 지친 몸으로 독일행 버스에 오르는 건 무리다. 버스는 매일 있으니 조금 쉬어 가라고 권면했다. 그렇게 그들을 차에 태워 난민센터로 향했다. 방을 정해주고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함께 먹었다. 몸을 녹이고 나니 긴장이 조금 풀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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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은 전쟁을 피해 넘어오는 난민들로 붐볐다. 사진: 김태한 선교사 제공

“국경까지 오느라 힘들었지요?”

제냐가 쉬지 않고 대답한다. 남동생과 그의 딸은 북쪽 벨라루스 국경에서 가까운 고스토멜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시작되어 근처에 포격이 있었고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다가 버틸 수 없어 집을 떠났다. 키이우 서쪽 근교 보야르카를 거쳐 트리에쉬나(키이우 서북지역), 빌라 체르크바(키이우 남쪽 100km 도시)에서 누이 제냐와 합류했고 그곳에서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포격이 계속되어 떠났고 차를 타고 남서부 루마니아로 향했다. 평상시면 한나절 걸리는 거리를 러시아군을 피해 돌고 돌아 5일 만에 국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떠나는 마을마다 포격이 있었고 간신히 피해 다녔다고 한다.

탑승했던 차량이 주유소마다 자동차가 줄지어 기다리는 데 다행히 대기 차량이 많지 않은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채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여러 개의 검문소를 거치며 입국 수속을 도와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오는데 8시간을 기다려 도보로 넘어온 것이다. 남동생 로냐는 누이와 만나기 전, 지하실에서 생활하며 불안에 떨었던 날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밤에 잠을 자며 식은 땀을 계속 흘린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아내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로냐와 다샤 부녀가 일주일 간 피난을 오며 옷과 양말, 속옷을 갈아입지 못해 불편하다고 했다.

센터에 온 사람들이 필요가 있지만 숙식을 제공하고 친절히 대해 주기에 부탁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작은 짐만 챙겨 난민들과 지내다 보니 소소하게 필요한 것들이 있다. 의견을 모아보니 난민들에게 필요한 목록이 만들어진다. 양말, 손톱깎이, 손세정제, 립밤, 물휴지, 일회용밴드, 그리고 갈아입을 속옷과 간편한 T셔츠 등이다. 다른 것들(치약, 칫솔, 슬리퍼 등)은 센터에 비치되어 있다. 근처의 유통센터로 가서 물품을 구입하고 샘플 패키지를 만들었다. 기도해주시는 분들께 후원을 요청했다.

제냐는 회계사로 일도 잘했던 자매이다. 다음 날 오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 앉아 그동안 채 나누지 못한 개인사를 들었다. 어릴 때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영접했던 일,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던 일들, 딸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한인교회를 돕고 선교사역을 했던 일.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을 영적인 상황에서 바라보고 앞으로 하실 일을 기대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매를 통해 난민의 여정을 좀 더 세밀히 바라보고, 현재의 필요, 그들의 감정, 향후 여정에 대한 불안함과 작은 기대 그리고 믿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전날, 저녁에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했는데 이번에 머물렀던 사람들과는 좀 더 정이 들었다. 제냐의 조카 다샤가 말한다. “앞으로 두 가지 중 하나가 일어날 건데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아니면 러시아가 전쟁에서 지는 것이에요.” 11살 소녀의 농담이 보통이 아니다. 함께 웃었다. 그렇다. 둘 중 하나는 꼭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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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냐와 난민들. 그들은 대형버스로 2~3일간을 달려 서유럽 국가로 향한다. 사진: 김태한 선교사 제공

오후에 버스가 떠난다. 추운 날씨에 눈까지 내린다. 모두 잠시 풀어 두었던 짐을 끌고 나온다. 한 엄마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버스로 걸어간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독일로 간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어요.”

가슴이 꽉 막힌다. 모자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이들의 발걸음을 주님이 인도해 주시길 기도했다. 제냐, 로냐, 다샤도 떠난다. 사람들이 떠나며 우리의 손을 잡는다. 일부는 안아주며 고맙다고, 다시 만나자고 한다. 웃으며 보내야 하는데 자꾸 그들의 얼굴이 흐려진다.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눈을 헤치고 버스가 떠난다. 주님, 이들의 여정에 함께 하소서! [복음기도신문]

김태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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