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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해체’에 끌리는 네 가지 이유

사진: pixabay.com

“ 교회가 주는 상처는 현실이다. 그러나 해체는 잘못된 치료법이다 ”

해체(deconstruction)는 증상이다. 근본 원인이 아니다.

올바른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계속 의학적 비유를 사용하자면, 기저 질환이 무엇이냐에 따라 치료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해체와 무던히 씨름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어 왔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가장 일반적인 근본 원인 네 가지를 확인했다. 각각에 대한 복음의 치료 계획을 살펴보자.

1. 교회에서 받은 상처

해체를 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이용하는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건강하지 못한 교회 문화에 의해 상처를 입은 이들이다. 많은 경우에 상처를 준 관계는 친밀하고 익숙한 관계이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목사, 신뢰하는 멘토인 경우가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만난 적 없는 사람인 경우도 있다. 당신이 래비 재커라이어스(Ravi Zacharias)나 칼 렌츠(Carl Lentz),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 같은 지도자의 강력한 가르침과 카리스마에 영감을 받고 신앙을 형성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커튼이 올라갔고 그들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났다. 배신감은 그동안 믿고 있던 모든 것을 가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고통은 극심한 고통과 혼란을 야기한다.

익사할 것 같을 때 물만 버리는 게 아니라 물속에 있는 아기까지 같이 버리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교회가 주는 상처는 현실이다. 그러나 해체는 잘못된 치료법이다.

복음이 말하는 치료법은 애통이다. 시편은 종종 하나님 백성이 행한 학대에 항의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호소한다. 시편의 대부분을 쓴 다윗은 사울 왕의 가학적 지도력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통과 신음, 눈물로 의로운 재판관을 찾았다.

교회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교회 문제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다윗처럼 담대하게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오고 상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서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면서 교제해야 한다. 그러나 해체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한 치유를 회피하는 길이다. 슬픔을 하나님 앞에 내놓지 않고 자기 안에서 내면화하는 지름길이다.

오늘날 우리는 애통하는 데 서툴다.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은 해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애통하는 것보다 그냥 되는 대로 넘어가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하고 참되며 영원한 방법은 오로지 그리스도뿐이다.

나쁜 공동체에 대한 해결책은 공동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공동체가 해결책이다. 건강한 치료 계획은 결국 좋은 경계들과 좋은 지도자들을 가진 좋은 교회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도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애통할 때, 곧 성도들이 예수를 중심에 둔 건강한 관계를 맺고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때 신뢰는 회복된다.

  • 진단: 교회에서 입은 상처
  • 치료: 애통

2. 잘못된 가르침

창세기 1장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믿음과 과학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지옥에 대한 대중 풍자만화를 보고 하나님을 복수심에 불타는 사디스트라고 믿게 된 그리스도인도 있다. 이처럼 의심스럽거나 조잡한 가르침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포기하는 게 과연 현명한 길일까?

문제가 잘못된 가르침이라면, 해결책은 좋은 가르침이다. 우리 주변에는 (가령 TGC에서 최근에 나온 ‘신앙을 잃기 전에’(Before You Lose Your Faith)나 비디오 시리즈 “기독교에 관한 Z세대의 질문” 같은) 훌륭한 자료가 있고, 지금도 적지 않은 현명한 목회자들이 어려운 질문과 씨름하는 사람들과 함께 참을성 있게 길을 걷고 있다. 좋은 가르침과 좋은 선생이 분명 있다.

나쁜 가르침을 좋은 가르침으로 대체한 최고의 모델은 예수님이다. 나는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예수님 특유의 후렴구를 좋아한다. “너희는 이렇게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은 가르침을 재구성하기 위해 예수님은 먼저 나쁜 가르침을 해체하신다. 해체가 전부 다 나쁜 건 아니다.

내 친구 세스 트라우트(Seth Troutt)가 지적한 것처럼, 해체의 나쁜 형태는 에덴동산에서 뱀이 던진 질문으로 요약된다.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창세기 3장). 원수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신뢰를 깨고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한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해체 방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을 보여주신다. 뱀의 질문과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너희는 이렇게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뱀의 목표는 신뢰를 깨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표는 신뢰를 세우는 것이다. 뱀의 목표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목표는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너희는 이렇게 들었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는 구약을 비판하는 말씀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히브리 성경을 사랑하신다. 그는 “기록되어 있다” “읽지 못했는가?” 같은 말씀을 끊임없이 반복하시면서, “나는 성경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구약에 대해 높은 견해를 갖고 계신다.

예수님이 비판하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잘못된 전통과 불충분한 해석이다. 예수님 시대와 비교할 때 지금도 바뀐 건 별로 없다. 오늘날에도 도처에 부정확한 풍자만화와 성경에 대한 오독이 있으며, 심지어 그중 일부는 교회 안에서조차 조장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후렴은, “당신은 이렇게 들었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미 지옥, 심판, 성전, 희생, 진노, 속죄에 관한 책을 썼고, 지금은 성과 젠더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나는 종종 기독교 신앙의 대중적인 풍자만화를 마주하는데, 최대한 그것을 건강하고 성경적이며 역사적 이해로 대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것은 TGC의 한 가지 목표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해체는 나쁜 가르침이 결론을 맺도록 한다. 존재하는 유일한 실재인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놓치게 만든다. 그러한 “치료법”은 치료하고자 하는 환자를 죽이고, 그들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는 순수한 약,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와 반대로, 복음의 치료 계획은 단순히 나쁜 가르침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좋은 가르침으로 대체한다.

  • 진단: 나쁜 가르침
  • 치료: 좋은 가르침

3. 죄를 지으려는 욕망

죄를 정당화하려는 욕망이 해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역에 종사하는 많은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더니, 급격한 해체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많은 경우에 해체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불륜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곤 한다.

나는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와 섹스를 시작하는 동시에 해체 과정에 들어가는 학생들로 넘치는 대학 도시에서 사역한다. 이런 경우 해체는 아주 편리한 타이밍에 맞춰 일어난다. 또는 사람에 따라서 (마약, 알코올, 포르노) 중독이 주는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해체하기도 한다.

흔히 해체가 정직하게 씨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제시된다. (“왜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고 응답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체하는 사람을 종종 신뢰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있거나 또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신과 진지하게 씨름하는 영웅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가면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을 가린다. “마음이 원하는 것은 생각이 정당화한다”는 옛말이 맞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그분을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허락하셨다. 사실 하나님을 심판한다고 생각할 때, 정작 심판을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인데 말이다. 이런 사실은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부패한 마음이 갈망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가, 그 마음을 합리화하는 타락한 생각에 빠지도록 그냥 놔두시기도 한다.

문제의 원인이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해결책은 고백과 회개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신다(행 26:18).

해체는 약이 아니라 독이다. 그것은 당신을 죽이는 죄에서 구원하지 않기는커녕, 죄를 더 짓도록 부추긴다. 해체는 진정한 동기를 정면으로 직면하지 않도록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체면을 유지시켜주고, 하나님을 떠나는 당신에게 뭔가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양 보이도록 한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야.”

해체는 불장난이다. 그러나 은혜는 실재이며 치유를 약속한다. 야고보 사도의 조언을 들어보자.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는 또한 해체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에 찬 약속을 준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물리치십시오. 그리하면 악마는 달아날 것입니다”(약 4:7-8).

  • 진단: 죄를 지으려는 욕망
  • 치료: 고백과 회개

4. 길거리 신뢰

의심은 유행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우리 시대를 휩쓰는 문화적 기풍에 어울리고자 하는 열망은 강하다. 그렇기에 탈회심(deconversion) 이야기가 넘치고 넘치지만 다 뻔하고 진부한 대본 읽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낡아빠진 상투어로 점철된 탈회심 이야기는 현대 사회 규범에 대한 순응을 드러낼 뿐이다.

연예인들이 이런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영향력도 가져야 하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며, 게다가 돈도 벌어야 한다. 이런 경향은 롭 벨(Rob Bell[만인구원론을 주창한다]) 목사로 하여금 오프라 쇼에 나가게 하고, 글렌 도일(Glennon Doyle[동성애 컴잉아웃을 했다])의 책이 더 팔리게 만들며, 코미디 듀오 리트앤링크(Rhett & Link)로 하여금 나초앤리브레(Nacho Libre)와 해리 포터를 그들의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 호스팅 하게 한다.

#exvangelical(탈복음주의) 해쉬태그를 붙이는 팟캐스터와 틱톡 스타의 물결이 뒤따르고 있으며, 적지 않은 관련 비즈니스가 그런 그들을 환영하고 응원한다. 섹스와 젠더에 대한 “오래된” 견해, 말하는 뱀과 식용 금지된 조개류 이야기가 든 “불분명한” 성경,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 같은 “공격적인” 교리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영향력을 가지는 데에 더 유리하다.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길거리 신뢰 이외의 다른 동기도 얼마든지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나는 강력한 당근의 역할을 하는 사회적 압력이 단지 유명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화적 적대감은 현실이다. (내 고향 포틀랜드 같은) 진보적인 도시 중심에서든, 지금 내가 사는 대학 도시에서든, 그리스도인은 확실히 멋진 친구가 아니다.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밥 먹는 어색함을 이겨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압력을 느끼고 있으며, 압력 분출의 방법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다.

여기서 “치료”는 당신이 갈망하는 이미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복음은 영향력과 명성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요 12:43)보다 “사람에게서 오는 영광”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신다. 사랑과 인정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보다 변덕스러운 친구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요한 사도는 경고한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요일 2:15).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발생한, 그러나 사회에서는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죄의 패턴을 말한다. 이러한 패턴의 중심에 오늘날 해체가 옹호하는 바로 그 열망, 곧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해체는 허영심을 부추길 수 있다. 세상의 뜨거운 공기로 당신을 부풀리게 함으로써 당신 속에서 불안함과 더불어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을 키운다. 이와 대조적으로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벧전 5:6).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당신을 하나님과 함께 높이기 위해 세상의 기준에서 당신을 낮추신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경험하기 위해 길거리 신뢰에 대한 열망을 억제하라.

  • 진단: 길거리 신뢰
  • 치료: 갈망하는 이미지를 십자가에 못 박기

진단과 치료

목사로서 나는 지금까지 소개한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해체라는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적절한 진단은 올바른 치료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회로부터 상처받아 고통하고 있는 사람에게 기독교 변증 서적을 선물한다면, 그건 진짜 큰 사고를 치는 일이다. 표면 아래에서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것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면, 그런 책은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게 있다. 사람들의 실제 동기는 종종 겉으로 말하는 동기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종종 “하나님에 대한 큰 질문을 가지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 가진 진짜 원인이 학교에서 느끼는 사회적 압박 또는 사무실에서 피우고 있는 바람 때문인 경우도 많다.

또한 동시에 여러 동기가 복합적일 때도 있다. 몇 가지 오래 지속되어 온 신학적 질문, 나쁜 교회로부터 겪은 경험, 길거리 신뢰에 대한 열망은 모두의 마음 속 가마솥에서 동시에 끓어 넘칠 수도 있다. 좋은 목사, 멘토 또는 친구가 되려면 일반화 시키는 대신 각 상황이 가진 고유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도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해체 시대의 사역은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성령에 민감하며, 그리고 내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결국에는 떨어져나갈 수도 있다는, 투자의 위험까지 각오하는 것이다. 좋은 의사는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 복음의 사역자로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지혜가 때로는 뚜렷한 치료 계획을 처방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치유의 궁극적인 한 가지 원천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게만 찾을 수 있는 바로 그 치료법이다.

“ 사랑과 인정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보다 변덕스러운 친구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조슈아 라이언 버틀러(Joshua Ryan Butler) | 조슈아 라이언 버틀러는 아리조나 주 템플에 있는 Redemption Church의 목사로 ‘The Skeletons in God’s Closet’와 ‘The Pursuing God’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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