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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러시아를 뛰어넘으려는 우크라이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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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의 현황과 원인

지금 열방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에서 이슬람국가(IS)라는 그룹이 전쟁을 벌이고 있고 보코하람과 싸우는 나이지리아 정부. 그리고 잠잠해지지 않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디에서도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영화 속 아니라 길거리에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노보러시아(New Russia)라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테러리스트들과 이 나라 동부지역에서 극렬한 전투 계속 되고 있다. 노보러시아가 뭘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는 호칭을 받으면서도 자기 삶을 희생하고 있는지. 이 갈등 안에서 러시아가 어떤 자세를 잡고 우크라이나도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조금도 깊이 살펴보자 한다.

우크라이나가 싸우고 있는 노보러시아의 정체는?

오랫동안 짓밟힘을 당해온 우크라이나는 1991년 7월 24일 독립하며, 자유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조금 마련하는듯 했다. 그러나 수백년동안 거대한 제국들에게 소속되어 우크라이나 자치국으로 지내본 적 있으나 주로 우크라이나 주(州), 우크라이나 민족 사는 영토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성과 문화와 자기 나라를 꿈 꾸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너무 강했다. 잠시 잠깐 독립을 얻어봤지만 항상 곧 바로 침략을 당했다. 그렇게 비웃음의 대상인 우크라이나가 소련 시절 스탈린 때 많이 어려움을 당했지만 나머지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와 같이 브레즈네프 대통령이 스탈린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표현으로 그때 우크라이나 공화국이었던 이 나라에 크림반도 전체를 기부했다. 후루시초프 대통령 시절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에 우크라이나어를 모국어 수업도 허락이 되었고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한 교과서도 나왔다.

그렇게 특별한 대우를 한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지정학적인 이유뿐 아니라 자원이 풍부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흑해와 아조프해에 있는 자연가스, 지금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동부에 있는 석당,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에 풍요로운 농사물 등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소련이 생기기 전에 우크라이나 동쪽 전체가 러시아 제국의 소유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또 터키 제국이나 유럽에서 오는 침략자들에게서 러시아 영토를 군사적으로 막아주는 군인들의 나라이었다. 우크라이나 서쪽은 폴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한때 제국이었던 나라의 소유였다.

소련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한때 왕정 체제의 러시아에 속했던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또 폴란드의 영향력도 약화하면서 소련의 우산 아래서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는 아니지만, 서쪽과 동쪽이 나뉘지 않은채 공화국 체제 아래에서 단일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지금의 우크라니아가 되는 과정에서 소련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91년 소련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우크라이나 독립

역사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리며 변화했다. 1991년도에 소련이 무너졌다. 우크라이나공화국은 구소련 영향력 아래에 있던 다른 15개 공화국과 함께 독립을 선포했다. 그 중에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가 독립국가로 변신한 것에 그치지 않고, EU 회원원이 되면서 소련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났다. 한때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국가들의 연합체였던 독립국가연합(CIS)의 동맹관계까지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때 나머지 11개 나라들과 같이 완전한 독립국가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러시아에 많이 의존했고 또 실제로 많은 도움도 받았다.

하지만 2000년 47세의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에 오르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점차 강화되기 시작했다. 젊은 러시아를 주창하던 푸틴 대통령으로 대표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우크라이나의 법조계, 국방, 정치, 미디어 등 각종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04년도 빅토르 유센코 지지자들에 의해 시도적 정치적 시민저항 오렌지혁명도 잠깐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소망을 던져줬을 뿐이다. 당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푸틴의 영향력 앞에서 무기력했다. 그리고 모든 미디어에서 ‘푸틴만이 우크라이나의 소망’이라는 논조가 대세를 이뤘다.

썩어가는 유럽의 가치관들, 이주민 정책의 실패, 경제위기에 직면하는 유럽을 모델로 삼기는 쉽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러시아밖에 없다는 말이 대중에게 회자됐다. 그리고 5년 전인 2010년 푸틴의 의해서 친러 대통령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우크라이나의 지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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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 대통령, 우크라이나 군대 폐지

그가 대통령이 되자 곧바로 시작된 일들은 이와 같았다. “우리 나라에 군대가 필요없다. 큰 형인 러시아가 있으니 우리가 군대에 돈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하면서 우크라이나 군대의 70% 축소했다. 그리고 “우리 큰 형인 러시아와 사업을 해야 유익이 훨신도 많다”면서 유럽에서나 미국에서 온 큰 회사와 계약들을 취소하기 시작했고 대신에 러시아 대형 회사들이 들어오기 시작되었다.

항상 미디어로부터 친 러시아 소식을 들은 우크라이나 백성들은 이같은 주장의 허점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2 유럽 축구 대회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면서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를 보는 관점을 듣게 됐다. EU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는 EU동맹이 될 참재력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주장을 듣게 됐다. 이같은 소식을 들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꿈이 생겼다.

“맞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러시아가 아니라 EU로 들어가자’는 운동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친 유럽 정치인들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EU와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한다는 등의 국민들의 시위가 2013년 들어 엄청나게 커져갔다.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재임시간은 이제 끝을 향해 갔다. 다음 대통령선거 결과는 분명히 친 유럽 대통령을 뽑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이렇게 탈(脫) 러시아하는 우크라이나의 정치 상황을 러시아로 이끌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EU와 협력협정 체결을 연기시키는 대신 친 러시아 국가로 남게하는 법안을 내세우는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지난해 11월 28일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서 수십만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친러시아 정책에 반대하는 모였다. 이 나라를 우크라이나인들의 나라가 되고 민족이 선택하는 길로 이 나라가 가게 하자고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집결한 것이다. 국민들은 막대기와 종이로 만든 방패로 무장하여 국회 건물과 대통령 행정 건물 등 여러 건물로 나아가며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정부군의 총알에 비무장 상태의 국민들 100여명이 무참하게 쓰러져갔다.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 100여명의 죽음

이들의 죽음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의 죽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야누코비치는 야반도주하디시피 대통령궁을 떠났다. 국민들이 되찾은 나라의 실상은 끔찍했다. 경찰과 법원과 군대 그리고 시 의회원들 대부분 여전히 푸틴의 명령을 따랐고, 새롭게 구성된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친러시아 세력은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에 사는 것 보다 아예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1917년까지는 한 100년간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던 노보러시아(New Russia)를 꺼집어냈다.

“우리가 EU 안 간다. 우리가 러시아 편 든 새 나라를 원한다. 그 나라의 이름은 노보러시아다.” 크림반도에 있는 국회의원들은 러시아 소속이 되겠다는 문서에 100% 가담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친 러시아 정치인들 때문이었다. 자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이러한 러시아 군대를 막을 군인이 우크라이나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푸틴이 단 몇 일만에 크림반도를 침략하고 빼앗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크림반도에 사는 주민들의 국적을 강제적으로 바꿔주었다. 크림반도 때문에 시끄러운 그때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무기 든 그룹들, 러시아에서 넘어온 군인들, 북 카프카스에서 넘어온 군인들이 시청, 대학교, 학교, 공장들 장악했다. 이들은 반군 무리들은 이 영토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몇 주만에 크림반도 물론이거니와 러시아 국경에 붙어있는 동부 지역 도네츠크 주(州)와 루간스크州 등이 친러시아 반군세력에 침략됐다.

그 무렵 러시아 미디어는 이런 논리의 주장을 늘어놨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파시스트 정부이다. 우리 군인들이 거기서 파시스트로부터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서 실패자인 우크라이나 아니라 새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없었던 나라이지만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새나라는 원래부터 있었던 나라이다.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는 미국과 NATO와 손 잡은 배신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고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우크라이나 경제 개발에 참여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EU에 편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U국가들은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동성애 때문에 가정이 다 깨지고, 경제는 위기 상황으로 실업률이 최고조의 상태이다. 이주민 정책과 난민과 무슬림들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역사적으로 우리 형제인 우크라이나 백성들을 우리가 EU로 보낼 수 없다. 싸워서라도 노보러시아에 자유를 누리게해야 한다.” 정보 전쟁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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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땅은 우리 땅”

푸틴 대통령은 이것 보다 더 충격적인 선포를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포럼회장에서 밝혔다. “우리는 유럽과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여러분들이 동성애를 선택하고 도덕적으로 무너진대로 무너졌다. 21 세기의 가장 큰 비극은 소련의 분열에서 비롯됐다. 나는 소련 같은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게 나의 꿈이다” 푸틴의 야욕은 온 유럽을 두렵게 했다. 러시아 이전의 소련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야망은 지금 우크라이나를 멍들게 하고 있다. 그러한 허황된 꿈을 꾸는 푸틴의 야욕으로 우크라이나는 지난 15년 동안 쇠약해졌으며, 유럽이 아니라 러시아를 노래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를 손쉽게 여겼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깨어 있는 우크라인들의 저항으로 그의 꿈은 거대한 장벽을 만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로 서기 위해 군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등 수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까지 여러 나라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는 동부에 들어가 있는 체첸 군인들, 북 카프카스와 러시아 군인들과 극열하게 싸우는 중이다. 6-7개월 동안 우크라이나 군인 1000여명, 민간인은 3000여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또 러시아군인들도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다.

우크라이나는 평화의 길로 혹은 대화로 해결해보기도 하고 있다. 서방 세계는 EU와 미국이 만들어내는 경제적인 압박으로 갈등을 해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노보러시아로 만들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싸워서라도 전쟁을 해서라도 원래 자기 땅을 되찾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 제국을 회복하고 소련과 같은 아름다운 나라를 다시 만들려고 러시아 애국가도 몇 년전에 소련의 애국가로 바꿨다. “소련에 영광(Glory to USSR)“이라는 슬로건을 미디어를 통해 퍼뜨리고 국민들에게 NATO와 미국에 대한 적대심을 심어주고 있다.

러시아, 소련 시절 애국가로 변경 등 ‘제국의 꿈’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를 잃어버리면 엄청난 기회를 놓치게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EU 회원국이 되고 NATO와 협약을 하게 될 것이란 시각이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 방패였던 우크라이나를 잃게 되고 다른 동유럽 국가들을 거머쥐기 어려워지게 된다. 러시아 제국의 회복을 꿈 꾸는 이들에게 노보러시아는 최우선의 목적지이다.

CIS 국가에서 그루지아와 몰도바는 이미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이때 우크라이나를 잃게 되는 것은 꿈을 포기하는 것으로 푸틴 대통령은 여기고 있는 듯 하다. 벌써 신화와 같은 인물이 된 푸틴 대통령의 이런 꿈이 이 지역의 갈등을 잠잠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크고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진다.

안드레이(본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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