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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형제들이여, 우리는 인기스타가 아닙니다

사진: Jon Tyson on Unsplash

리더십 (2)

모든 사람들은 유명인사를 원합니다. 출판사도, 컨퍼런스 주최자도, 그들을 따르는 팬들도 유명인사를 원합니다. 어떤 진영에는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는 유명인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립니다. 저는 할리우드나 네시빌 혹은 워싱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 지구에서가장 행복한 곳인 복음주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좀 더 본론으로 들어가 말씀드리자면, 저는 “기복주의(Prosperity gosepl)”를 전하는 이단이나 사기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존경할만한 크리스천 리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존 파이퍼, R.C. 스프로울, 존 맥아더 목사님 같은 분들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2년 있었던 T4G (Together for the Gospel) 컨퍼런스에서 “유명한 목사”를 주제로 목사님들이 나눈 대화에큰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곳에서 탁월한 재능을 받았고 넓은 영향력을 지닌 분들이 자신을 유명인사로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유명인사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유명한 사역을 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목회자가 유명인사의 지위를 오히려 비난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기념할만한 일입니다.

T4G 컨퍼런스에 스피커로 앉아있던 분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현대의 유명인사를 추앙하는 문화에서의 기독교 목회의 어려움을 인정하였습니다. 오늘날 미디어는 주로 영화배우, 운동선수, 정치가, 가수, 디바(유명 여가수) 들의 의미 없는 기사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로부터 지속해서 이러한 정신적인 불량식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눈과 귀에 침투하고, 우리의 생각을 차지합니다.

그럼, 크리스천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크리스천은 목사님들을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우상들에 열광하듯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은 육신적이며, 세속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크리스천을 분리하면 했지 하나가 되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그리스도만 받으셔야 하는 영광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훈계하였습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 3:5). 만약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죽지 않았다면 (고전 1:13) 도대체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죽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즉, 교회의 리더들은 성도들에게 주인의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하고; 심지어 매주 음식을 바닥에흘리지 아니하고 신실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공경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리더들은 어떤 형태로든 흠모와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높은 찬사는 오직 삼위 하나님 한 분에게만 올려져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이런 훈계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고는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권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들을 그리스도보다 더 높이는 죄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동시에 크리스천 사역자들 또한 잘못이 있습니다. 목자는 양 떼들을 돌보고 초장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들을 발견하고 피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할 책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에서 따져보자면, 목자는 성도들이 그릇이 아닌 그릇에 담긴 보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선을 바로잡아주어야 합니다 (고후 4:7).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세상의 문화와 반대되게 사역을 하는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1,3,4)

사도 바울 시대의 인기스타는 말주변이 뛰어난 궤변가 혹은 소피스트라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사학과 토론의 전문가로서 엄청난 웅변술을 구사하였습니다. 그들은 위트가 넘쳤고, 매력적이었으며, 관객들을 쉽게 휘어잡았습니다. 소피스트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관중을 끌어모았고 유창한 언변을 사용하여 주제와 관계없이 대중들을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별것 아닌 주제로도 말이지요.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미디어가 없던 그 시절에는 소피스트 그 자체가 미디어였습니다.

그 당시 상식에 맞지 않게, 사도 바울은 이런 소피스트들과 최대한 다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바울은 많은 관중을 끌어모으고 싶지 않았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군중처럼 몰려서 그리스도에게로 오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바울이 자신의 사역 결과에 무관심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사실, 그는 결과를 극도로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화의 기대를 거스르기로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실한 복음 선포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증거”를 선포하였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 2).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신을 최대한 배제하고 복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선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고전 2:4, 5).

도대체 왜 바울은 이런 방법을 취했을까요? 사람의 지혜는 사람을 저주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힘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도 의도적으로 유명한 목사를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실한 목사는 성도들이 자신을경배하길 원치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누구라도 자신을 그토록 높인다고 생각한다면 매우 힘들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어느 문화든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린도에서도, 미국에서도, 1세기에도 21세기에도, 모든 문화는 유명인을 추앙하고 그래서 쉽게 유명한 사람을 경배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때를 기다리는 우상숭배의위험입니다. 심지어 나이가 든 사도 요한도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높이고자 하는 연약함을 보여주었습니다.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경배하라 하더라”(계 22:8-9)

미디어를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현대의 문화 속에서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인지한 크리스천은, 목사와 성도 모두, 천사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라” (계 22:9). 그리고 그분만을 경배할지어다. [복음기도신문]

트레비스 알렌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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