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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이 땅에서 잘되고자 하는 마음이 음란하고 악한 것

ⓒ unsplash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태복음 16:1~12)

가르침이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가르침 받는 내용을 반듯하게 분별하는 안목이 열려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반듯하게 배운다는 말씀의 뜻을 살펴볼 것입니다.

저를 보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를 보면 힘들다고 합니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 목사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설교하면 좋아해? 갈등은 없어?” “목사님, 너무 비현실적인데요, 어떻게 그렇게 목회를 할 수 있어요?”

현실은 실제된 것이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저에게 지금 실제된 것은 세상의 가치가 아니고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닙니다. 믿음이 세상의 가치와 어긋난다면 성경이 저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다른 분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한 것이 저에게는 지극히 실제된 현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표적 보이기를 거절하십니다. 그들은 저녁에 하늘이 붉은 것과 아침에 붉은 것을 구별하여 날씨를 분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누구로부터 비롯된 누룩인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룩은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고 유익한 것입니다. 누룩은 교훈이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가르침을 주의해야 하는가! 누구로부터 배워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수많은 표적을 보았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주류세력이고 기득권 세력입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식민지인데도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과 결탁하지 않으면 기득권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결탁이 아니라 지극히 현세적인 결탁을 로마제국과 맺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로는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은 믿음에 대한 열심을 갖고 있습니다. 율법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의 현실을 공고하게 하고 현세적인 일들을 도모합니다. 우리도 바리새인과 똑같습니다. 주님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분의 권능을 구하며 찬양하지만, 그분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공고하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았는데도 종교인이었습니다. 제사장 그룹이었던 이들은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주로 대제사장을 맡았습니다. 율법을 믿지만 내세는 믿지 않기에 로마와 결탁하기가 쉽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를 독점하고 장악했습니다.

이들이 예수께 와서 시험하는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은 말 그대로 ‘겉으로 위치가 드러난 것’입니다. 감춰진 위치가 드러난 것이 표적입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표적이 드러나면 반드시 하늘을 보게 됩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궁금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로부터 표적이 임하면 그 주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들은 주님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표적과 능력을 갖고 이 땅에서 잘 살고 싶어합니다. 믿음을 이야기하고 하늘의 영광을 이야기하며 주님께 탄원하지만, 구하는 내용은 모두 이 땅의 어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날씨는 분별하면서 왜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데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고기의 배 속에 사흘 동안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전에도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늘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복음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거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훈련받고 교육 받아야 합니다. 누구로부터 받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당시 영향력이 있는 주류세력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사회의 주류세력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주류세력을 닮아가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과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 너무 비현실적이야!” 이렇게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고민이 되십니까?

주님은 ‘삼가’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잘 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란하고 악한 행위를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는, 이 땅에서 잘 되고자 하는 그것이 음란하고 악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우리를 어디로 가게 하는지 봐야 합니다. 우리가 땅을 지향하게 하는지, 하늘을 지향하게 하는지 봐야 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주류세력이냐 아니냐의 차원도 아닙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고 남은 떡 광주리가 몇 개였는지 벌써 잊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임한 표적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하늘을 봅니다. 그러나 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땅을 봅니다. 하늘의 표지판인 표적을 보고 하늘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땅에서 더 공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치유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 치유 기도 받으려고 뒤에서 앞으로 다이빙도 합니다. 사업이 번창할 것이라는 예언 사역도 있었습니다. 기도 받으신 분들의 믿음이 번쩍번쩍 좋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분들이 하늘을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표적과 능력이 드러나는 이유는 천국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보여주기 위한 그 표적과 능력을 우리는 땅에서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많은 사역자를 봤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물 안 스쿨’(미취학아동과 초등학생이 다니는 교회학교) 아이들이 주일 예배에서 말씀을 암송했더니 보통 부모들이 많이 부러워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라가는 것 같으니까 부러워합니다. 한편으로는 또 걱정합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험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입니다.

아이들을 향한 우리의 기대치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네트워크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충분한 자원과 정보로 잘 양육하면 사회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투입합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선하고 사람 자체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잘 양육하고 교육하고 훈련시키면 사회에 이바지하는 좋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요 희망이 없는 존재입니다. 모든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투입하면 인간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단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이 깨달아지지 않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현실 인식 또한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교육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존재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미 결론을 맺고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을 때 복이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 원형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만 회복됩니다. 그래서 존재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찾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연합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결론이 날 때 존재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에너지가 공급됩니다. 주님의 말씀과 뜻과 지혜가 우리를 통해 흘러가고 이루어지는 믿음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존재의 기쁨이 있는 사람만 과정의 기쁨도 누립니다. 존재의 기쁨이 있지만 세상 살면서 아플 수 있고 곤고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낙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존재의 기쁨을 가진 사람이기에 단순하게 믿음으로 삽니다. 힘든 과정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핍이 채워지는 것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과정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완성의 복도 누립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통찰을 이 땅에서 사용하려는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설교자가 여러 말씀을 선포해도 메시지가 어디를 지향하게 하고, 무엇을 자극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듣기에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디에 주목하게 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토브원형학교 학생의 시입니다.

차이

내가 주님을 기뻐하면 주님은 기뻐하시고 내가 주님을 기뻐하지 않으면 주님은 슬퍼하시고 내가 주님으로 살아가면 주님은 기뻐하시고 내가 주님으로 살지 않으면 주님은 슬퍼하시고 그 차이는 마음 한 장 차이다.

마음은 한 장뿐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중요합니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늘로부터 온 표적이 있다면 마음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오병이어 표적을 보고 땅에 마음을 쓴다면 예수님은 떠나가십니다. 이 땅에서 왕 되어달라고 예수님을 붙든다면, 음란하고 악한 세대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뿌리치고 가십니다. 마음 한 장 차이입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께 가 있기를 원합니다.

에필로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은 1차적으로 어디를 지향하게 하는 들음이고 교육이고 메시지인지를 보라는 뜻입니다. 서점에 있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땅을 지향하게 만듭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가능성을 개발해 함께 잘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분별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땅에 대한 갈망 때문에 하나님을 불렀기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부르심을 확인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있든 부르심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르심을 받고 간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내가 속해 있는 회사는 악이 있는 곳이다! 주님의 뜻이 흐를 수 없는 소돔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둘 것이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부르심을 받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부르셨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지금 있는 그곳에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중요한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곳으로 주님께서 부르셨는가! 그것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부르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 주님께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르심이 말씀과 환경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부르심 때문에 좋은 직장을 내려놓고 험난한 곳으로 갈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또 험난한 곳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도 있습니다. 이미 결론을 맺고 사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지만, 과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경계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이야기해도 결국 뿌리가 보이게 됩니다. 땅으로부터 온 것인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보입니다. 속일 수 없는 양심을 주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한 걸음 내딛으며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반듯하게 배우고, 배움을 사모하고, 주님으로 분별하는 은혜로 사는 거룩한 백성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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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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