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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통신] 순교하기까지 섬김의 역사를 배우다

▲ 런던 서더커 지역. 사진: 민경수 제공

필자가 25년을 살아온 서더크(Southwark)주는 1086년 둠스 데이 책에 스드웨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위치에 알맞게 런던 구도시의 테임즈 강남에 위치해서인지 이름의 의미는 “남쪽의 방어 작업(work)”을 의미하며, 고대 영어로는 강변 남쪽에서 워크(weorc, 작업)의 유래가 되었으며 오랜 전통의 런던 브릿지의 남쪽 끝에서 부터 위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5세기부터에 서더크(Southwark)는 여관가로, 극장들로, 스파라 표현되는 공중 목욕탕, 시골풍 놀만한 곳, 그리고 다른 오락으로는 곰싸움 시키기 및 더 남쪽으로 내려 가면 닭 싸움 시키기 종류의 돈따먹기식 놀이 장소로 알려졌다. 따라서 빈부의 격차도 아주 심했으며,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지역이 과연 런던의 원초적인 죄의 소굴인양 다양한 모습의 생활살 놀이터들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당시는 골든 스테이트 청교도 도성으로 표현되어진 구 런던시보다는 더 가난하고 황폐한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지난 100여년 또 50여년 전까지만해도 대부분의 집권당인 보수당은 이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며 야당인 노동당, 자유 민주당이 이 지역을 지금까지도 독차지하는 풍조였다.

허나 시대의 발전과 함께 지리적 위치로 런던 도심 중에서도 중앙에 접근하기에 쉬운 지역이기에 약 25여년 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금은 가까운 거리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 샤아드 타워가 우뚝 서 있는 런던 브릿지 가까이로부터 또한 본인이 오래토록 살고있는 이곳 그레이트 써폭스 거리의 한 모퉁이에는 왕가의 써폭스 궁전도 예전에 위치해 있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돌팔매 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는 돌 하나를 집어서 남쪽으로 던지면 맞게 될 만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옛 설교자의 황태자라고 부르던 스펄전 목사님이 사역하던 메탭(Met-Tab) 즉,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 교회가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이 ‘엘리펀트 앤 캐슬’로 불렸다. 이곳은 영국 런던의 교통망에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남 런던 곧 한국식의 표현인 강남의 “피카딜리 서커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물론 이곳의 역사는 유명한 사람들이 여럿이 있다. 물리학자 마이클 페러데이는 1791년도에 뉴잉턴이란 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탁월하게도 근본주의적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어려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지만 실용주의자라 칭함을 받은 그는 영국의 전자기학과 전기화학 분야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전기자기의 빛을 발견한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 그의 인생 여정은 살펴볼만한 분이다.

필자는 이곳 런던 브릿지 바로 옆에 위치한 서더크 성당(큰 교회/ 교구의 마더 교회로 통칭함)에서 주간 체플린 사역을 한지가 올해로 12년의 해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그곳의 성공회 대교회의 사역에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지금은 오직 주의 은혜중에 넉끈히 주의 성역에 동참을 할수가 있어서 감사를 드린다. 이 잉글랜드 교회는 한국적 표현으로는 성공회 교회이다. 이곳 교단에는 국가의 정치에도 참여하며 상대하는 주교들이 있어서 저들은 국회 의사당의 멤버로 영향력울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교단적으로는 역사속으로 파뭍힌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저들의 중심 사역의 신학적 교리는 분명히 개혁교회로의 성향에서 출발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를 토대로 한 그 유산으로 옥스 브릿지 대학에 명명되는 틴데일, 니콜라스 위들리, 라티메어, 크렌머 및 존 위클리프의 대학들이 아직도 교단의 신학교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곳으로 부름받은 신학도들의 선지동산으로 역할을 꾸준히 잘하고 있어, 영국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 또한 이곳의 복음주의 개혁교회들의 사역자들이 함께하는 모임인 트루스 미니스트리 컨퍼런스(The Banner of Truth Ministers’ Conference)는 초교파적인 모임으로 아직도 수명의 성공회 목회자들도 함께 참석하며, 복음에 동역하는 자들에게 ‘함께 섬긴다’는 그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개혁의 삶이 깃든 교회가 필요하다. 1547년 젊은 에드워드는 어린 나이 7살때에 왕좌에 오르면서 당시에 가장 저명한 주교인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는 영국 국교를 확실히 개신교 교회로 변모시키기 시작했다. 1547년, 크랜머는 그의 “가정집” 출판을 통해 성직자들이 개혁 교리를 강조하는 설교를 하도록 요구했다. 그 이후 2년을 지키어 보던 크란머는 성도들의 필요성울 느끼며 보다 효과적인 예배를 위하여 1549년도 최초의 “일반 기도서”를 출판했다. 1552년 제2판으로 개정된 이 책은 더 명확하게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적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진리의 말씀을 사모한 크란머는 이듬해인 1553년도 잉글랜드/영국 교회를 개혁적이고 칼뱅주의적인 방향으로 더 확고히 많이 움직인 교리적인 진술로 말씀 중심의 42조를 제작했다. 이렇게 성직자들 및 성도들에게 큰 유익을 제공할 수 있음을 깨달은 만큼 크랜머는 성경 학습을 위해 교과서적인 말씀들을 정리했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39조로 개정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는 전 세계 영국 교회의 공식 창립 성명이 되기도 했다. 대 주교 토마스 크랜머는 엄청난 학식, 특히 교회의 권위와 노력으로 영국사에 나타난 종교 혁명을 지배했다. 그는 영국을 개혁된 신앙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 대 주교들의 역할은 각 지역에 위치한 그 수많은 교회당들과 관계되는 건물들의 바른 보존 보호 등에 머물고 있다. 성직자들이 목회를 위해 바른 성경신학, 컨페셔널한 교회 사역 및 개혁 신학적 으뜸을 중시하며 사역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필자에게도 지난 12년 동안의 사역에서 중요한 경험들이 있지만 여기에 한 가지만 기록해본다. 몇년 전 한 성직자가 은퇴하면서 내게 정직하게 나눈 고백이다.

“나는 교회 재산 관리 등 관리적인 사역을 중시하면서 지역 교우들에게도 목회적 돌봄보다는 계급과 계층별로 교우들을 관리하는 스타일로 목회를 하고, 나아가서는 정치적 성향을 갖고 나눈 입술의 표현과 삶은 분명코 성경적 연합으로의 섬김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성도들의 헌신된 기도들과, 때로는 옛 순교자적 바른 자세로의 ‘말씀 지킴이’의 모습이 필요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의 부름은 크랜머, 위들리, 라티메어 및 위클리프 같은 개혁주의 사역자를 찾고 있다. 샬롬!  [복음기도신문]

민경수 | 목사.선교사(본지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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