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다시복음앞에] 임현수 목사,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은 복음”

▲ 임현수 목사. ⓒ 복음기도신문

나라와 민족의 회복(창 45:1~11) | 메시지 요약
임현수 목사(토론토 큰빛교회 원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능력과 사랑, 그리고 근신하는 마음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을 대적하는 능력, 사랑으로 충만,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근신(절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딤후 1:7)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포비아에 빠져있다. 매스컴이 주는 영향 속에서 코로나로 인한 두려움에 과하게 붙들려 있어서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잊고 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일들의 30%는 과거에 지나간 것이고, 30%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며 대부분은 그리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님에도 속임에 놓여 두려움에 묶여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말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가 두려움에 빠질 이유가 아닌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형통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렘 29:11)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쁨이야말로 경건한 자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정말 경건한 사람은 그 안에 기쁨이 있어 그의 삶이 악에 빠지지 않지만 불경건한 자는 불의가 그 안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은 경건이어야 하고 기쁨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순간의 선택이 하나님과 형통하여 기쁨에 거하도록 할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으로 마귀와 같이 악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기쁨이 있어야 할 이유는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과 누릴 수 있는 기쁨과 교통을 죽음으로 바꾸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기쁨을 두셨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기쁨과 행복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행복이 순간적인 해프닝이라면 기쁨은 항상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기도의 목적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도를 기복신앙으로 내몰아서도 안되며 염려를 기도로 올려드리는 것을 주저해서도 안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주는 기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이 있고, 우리는 주님께 받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기쁨을 가진 나라에 살고 있다. 과거 200여개 밖에 되지 않던 교회가 이제 6만여 교회로 성장하였고 구석구석 교회가 없는 곳이 없다. 반대로 북한은 그 많던 교회가 사라지고 메마른 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분단의 문제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말해, 군사분계선은 영의 분계선인 것이다. 이 땅에 있는 기쁨이 북한은 없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 민족이 사는 길도 복음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나라와 민족의 해답은 무엇인가?

창세기 45장 1~11절은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버림받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삼으셔서 애굽과 야곱가족들의 생존을 책임지셨다. 그리고 요셉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형들과 다른 의식과 안목과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이 가진 마음을 통해 나라와 민족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 의식의 변화

형들과 요셉은 그 의식에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셉은 그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인정하는 자로서 자신의 골육을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북한을 바라볼 때 세상과 다른 의식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이념과 사상으로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정로를 따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자들이다. 그러므로 북한을 증오하는 것,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형제들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다’ 아브라함이 롯을 바라보며 ‘너와 나는 골육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던 것처럼 우리는 북한이 우리의 골육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2. 안목의 변화

요셉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자였다. 그래서 요셉을 보면 근심하는 일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 오기를 부리는 일이 없이 언제나 하나님의 시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70년의 분단의 기간이 어떻게 보이는가?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절대로 우연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과 같은 마음으로 이 현실을 볼 때 우리에게는 근심이 아닌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 에벤에셀의 하나님, 현재의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자들임을 기억하고 요셉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안목으로 북한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3. 태도의 변화

요셉과 형들 중 누가 강자인가? 과거에는 형들이 강자였지만 이제 요셉이 강자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은 강자로서 군림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자로서 섬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우리의 태도의 변화여야 한다. 한국은 누가 보더라도 북한보다 강자다. 그리고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약한 자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신 것처럼 낮아진 자세로 섬겨야 하는 것이 우리가 북한을 향해 해야 할 일이다. 강자의 강함은 약자의 약함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강함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요셉과 같은 마음으로 북한의 약함을 품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말이 통하고 문화가 통하는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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