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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믿음의 돌파를 시도하며…”

공장에서 은혜를 누리는 서영걸 형제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비교당하지 않으며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신의 가야 할 길을 가는 삶. 참으로 복된 삶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된 삶은 십자가복음 안에서만 가능하다. 오랫동안 사람을 두려워하던 삶을 살아가다 십자가복음을 체험하면서 주님이 부르신 노동의 현장에서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믿음의 발걸음을 힘차게 걷고 있는 서영걸 형제를 만났다.

– 복음 이전의 삶에 대해 간단히 나눠주신다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어요. 엄격한 아버지가 무서워 늘 긴장했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벌을 서는 도중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그 얘기를 선생님께 차마 하지 못했어요. 결국 바지를 버렸죠. 또 초등학교 5학년 때 왕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런 사건을 통해 제가 사람을 매우 두려워하는 존재로 자라났던 것 같아요.”

– 대인관계를 폭넓게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군요.

“학창시절에 제 곁에 친구 한 두 명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과 속에 있는 얘기들을 나눠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의미있는 교제를 못했던 거죠.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친하게 지냈던 한 사람이 군대를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없으니까 학교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아지더군요. 처음에 한 며칠 안가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한 학기를 안 갔어요.”

– 한 학기 전체를 가지 않았다는 건가요?

“학교를 등록만 하고 출석을 하지 않은 거죠. 문제는 그 다음 학기까지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컴퓨터에 빠져, 게임과 음란물 중독으로 탕진하고 완전히 삶이 피폐해졌죠.”

대인관계를 못하고 컴퓨터 중독에 빠져

–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제 상황에 대해 부모님께 말도 꺼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상황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군대에 빨리 가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군 생활이 시작됐어요. 군 생활도 정말 쉽지 않았어요. 사람을 두려워하는 제가 군 생활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거죠.

늘 경직되어 있고, 관등성명부터 군 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도 전혀 못했죠. ‘이상한 놈 왔다’고 소문이 났어요. 고문관이 된 거죠. 그러다보니 자존감이 완전히 밑바닥을 쳤죠.”

– 전역 후에 사회생활 적응에는 어려움이 없으셨나요?

“전역 후에는 우연히 알게 된 보육원 한 곳을 다니면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어요. 아이들과 함께 예배도 드리며, 한 5년 정도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때 제가 반을 맡았던 한 아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일을 접한 제 마음이 별 요동이 없는 거예요. 이상했어요.

저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아이들조차 사랑할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충격이었죠.”

– 내면으로 더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셨겠군요.

“이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점점 더 아무것도 못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성장했어요. 교회가 유일하게 제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죠. 그래서 저는 복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목사나 선교사의 꿈을 품고 있기도 했죠. 그런데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제가 복음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 바로 그 절망의 순간이 은혜 받기 좋은 때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맞아요. 마침 한 전도사님을 통해 복음학교라는 곳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십자가복음을 깊이 있게 깨닫게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죠. 그때 한 가지 큰 결단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또래 남자 친구 두 명과 성적인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회개하고 그 친구들에게 사과를 하기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했어요.”

– 그 결정대로 하셨나요?
“사람을 두려워하는 존재인 저의 능력으로는 정말 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저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주소를 찾고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한 친구에게 그 일에 대해 잘못을 비는 사과를 했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에 기쁨이 생기더군요.

이 일을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 사람을 두려워하던 옛 사람에게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기 위한 조치였군요.

“네. 그렇지만 주님은 저의 옛 사람의 실체를 더욱 깊이 직면하게 하는 은혜를 주셨어요. 십자가복음을 만난 이후에 복음을 더욱 깊이 누리기 위해 6개월간 복음사관학교라는 공동체훈련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제 두려움의 실체가 드러났죠.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의 문제였어요.”

십자가 복음앞에 서다

– 두려움과 능력이 어떤 관계가 있나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제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은 신앙뿐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신앙의 영역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공동체로 훈련을 받는 6개월 동안, 그 능력이 제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무척이나 어려워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제가 그렇게 ‘능력’에 연연하는지 저도 몰랐어요. 나중에는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지 분별할 수도 없었어요. 심지어 하나님도 저를 사랑하시는 지도 헷갈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죠. 더욱 깊은 절망이었어요.”

– 신앙이라는 영역 안에 감추어진 옛 사람의 흔적을 주님이 드러내셨군요.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절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신앙만큼은’이라며 몸부림 치고 있던 옛사람이 십자가에 처리된 것이죠. 그리고 나는 능력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께는 능력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가 제 마음 속으로 다가오는 은혜가 있었어요.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있으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이런 찬양이 있잖아요? 그 당시 출석하던 시골교회에서 배운 찬양이었는데 그 가사의 고백이 실제가 되었죠.”

– 지금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죠.

“십자가복음 이후에 여러 과정을 통해서 주님은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어요. 최근 창세기 12장 1-2절 말씀이 계속 생각났어요. 한 번도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서 믿음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제가 이 말씀에 순종해서 단순하게 순종의 삶을 살기로 결정을 한 거죠.”

–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공장생활을 할 계획은 없었어요. 사실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섬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안학교 면접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통해 믿음의 돌파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죠.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는데,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었어요. 그리고 연결된 곳이 여기 가죽공장이에요.”

‘능력’없는 나를 인정하다

– 공장에서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궁금해요.

“일단 염색된 가죽 원재료를 부드럽게 하고, 무늬를 찍고, 칠을 하거나 코팅을 입히는 등의 작업을 해서 주문 업체로 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에요.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서 8시 반에 일을 시작해요. 점심시간, 저녁시간 빼고 계속 일을 해요. 퇴근시간은 밤 12시가 넘어요.”

– 일하는 양이 매우 많은 것 같아요.

“하루에 한 15시간 일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매일 아침 묵상과 예배는 빠지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경건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원리에 대해서 깨닫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아직 공장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단순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예배하고, 허락해주시는 대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사실 제가 ‘평생 설거지만 해도 주님이면 만족하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을 못했거든요. 제가 설거지를 안 좋아해서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확실한 답을 경험하고 있어요. 주님이면 충분해요.”

–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요.

“공장에는 네팔인 노동자 10명이 있어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지만 실제적으로 언어 소통이 안되어 그들에게 할 수 것도 없어요. 지금 저는 고작 네팔어 몇 단어를 배웠을 뿐이에요. 그것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가 없어요(웃음). 시간도 워낙 빡빡하고요.

그런데 밤 12시부터 1시까지가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제 24ㆍ365 기도시간이거든요. 12시 넘어서 일이 끝나면 피곤한 마음에 ‘이렇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데 좀 자도 되지 않을까?’이런 타협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때 주님이 ‘너 도대체 여기 뭐 하러 왔니?’라고 도전하셨어요. 제가 여기에 돈 벌러 온 게 아니잖아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왔는데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들을 옆에 두고 기도를 등한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기도하면 주님이 일하시잖아요. 기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공장에서 시작된 믿음의 삶

–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느낀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정말 은혜에요. 이 공장에서 시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한국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한국 사람은 대부분 관리자에요. 그리고 저는 공장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일도 익숙하지 않죠. 그래서 제가 오히려 네팔 친구들에게 일을 배워요.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요. 제가 그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죠. 그리고 그들도 저를 같은 동료로, 동류로 대해줘요. 그래서 이 자리가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귀한 자리라는 것을 느껴요.

최근에는 네팔 친구 중 한 명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었어요. 당시 그 친구는 몸이 아픈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저에게 ‘형님, 형님’하면서 친절하게 끓여줬죠. 그 일 이후 저도 그 친구처럼 몸이 아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들과 더 같은 마음을 품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러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는지가 묵상이 저절로 되면서 큰 은혜를 누렸어요. 순종의 현장에서 예기치 않은 기쁨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해요.”

그를 만난 곳은 주말 늦은 밤 공장 인근 카페였다.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살다시피하는 그를 만날 시간이 그때밖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위해 공장 기숙사를 방문했다. 네팔 친구들이 기꺼이 사진 촬영에 동참해주었다. 그 중 한 친구는 친절하게 어두컴컴한 공장 정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를 통해 복음의 생명이 이들에게 흘러가게 하실 주님을 기대한다.

[GNPNEWS]

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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