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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칼럼] 성경은 없었지만 예수를 소유했던 베뢰아 사람

▲ 사진: pexels.com 캡처

“ 초기 교회에서 나타난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는 개인의 논리에 근거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

보수적인 침례교회에서 성장한 나는 성경 지식만큼 가치 있는 기독교인의 특징은 없다고 믿었다. 주일성경학교에서 성경 암송을 하면 상을 주었고 주일 설교는 늘 성경 말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열심히 성경 이야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런 환경 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치 베뢰아 사람과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

사도행전 17장 10절부터 12절까지는 베뢰아 사람을 “이것이 (바울과 실라가 설교한 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베뢰아 사람과 같다고 확신하는 것은 내게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최근까지도 베뢰아 사람과 같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나의 이해에는 오류가 있거나 부족함이 있었다. 내가 상상하는 베뢰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성경을 찾아보는 모습이라서 말씀 중 근거가 되는 구절을 찾을 수 없으면 그들은 사도들이 가르친 것을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상상한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초대 교회의 일반 성도들이 성경의 사본을 갖는 일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실제로 종교개혁 시대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대량 보급이 가능해졌다. 대신 그들이 공동체(이 경우 회당)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구약 성경이라고 이해하는 기록을 소장하고 있었다.

세 가지 기본 사실

우리에게 ‘베뢰아 사람 같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롭게 평가하는 일은 유익을 줄 것이다. 다음 세 가지 기본적인 사실은 더욱 정확한 개념을 갖는 데 도움을 준다.

1. 베뢰아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인다

그들이 추구하는 순서를 주목해 보라: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성경을 상고하였고, 마침내 진리을 믿었다(행 17:11-12). 사실 이 구절은 성경만을 유일한 규범으로 여기고자 하였던 종교개혁 원리를 잘 묘사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양한 규범이 있겠지만 성경만이 우리의 규범을 규정하는 궁극적인 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베뢰아 사람들이 받은 것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말씀에 의한 증거 때문이었다. 해석에 따른 결론에 의해 그들은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을 통해 이 진리를 확인하였다(이는 회당에 구약 성경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믿었다. 여기에 중요한 적용이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신학을 대할 때 무에서 시작하거나(ex-nihilo), 관찰되고 추론된 이성에 의한 해석(ex-ratio)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초대 교회에 나타난 신앙의 기본 진리는 개인의 논리에 근거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 가르침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증거가 되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하였다. 우리가 세상에서 처음 성경책을 대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지만, 성경을 사도신경과 같이 외적인 진리를 교리로 삼아 옆에 놓아두고 있기만 해서도 안 된다. 말씀의 권위에 의해 우리에게로 전해진 진리를 수용하여 그것을 확인하고 보존하여야 한다(딤후 1:14).

2. 베뢰아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배운다

우리가 놀랄 일도 아니지만, 혹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 시대에는 신학에 대한 개념이 팟캐스트나 개인의 헌신, 독서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연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베뢰아 사람의 방식이 아니다.

본문은 그들이 매일 말씀을 찾아보기 위해 회당에 모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을 함께 읽고, 랍비들과의 토론과 논쟁, 가르침과 해석, 그리고 모든 관련된 대화를 포함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방식은, 세부적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공동체적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방식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의 목적을 위한 근본적인 것이었다.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자인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Franciscus Junius)의 도움을 받자면, 그는 성경의 주된 목적과 그 도구로서의 목적을 구별하여 설명했다. 그것의 근본적 목적은 성부, 성자와 성령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그것의 도구적 목적은 진정한 정의의 지혜, 즉 우리의 죄성을 떨쳐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렇게 형성된다.

이것은 성경 해석의 기초가 되는 것인데, 성경의 목표가 하나님의 계시이고 그의 영광을 교회 안에 드러내는 것이라면 성경은 교회의 공동체, 지혜, 사명감에서 나오는 추상적인 설명으로는 제대로 해석될 수 없다. 우리가 베뢰아 사람처럼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에서 신학을 따로 떼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가르침을 분별하기 위해 서로가 필요하다. 신학은 교회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베뢰아 사람은 구약성경의 기독교 신앙을 믿는다

초대 교회(베뢰아 사람들을 포함하여)가 완성된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로마서 8장이나 에베소서 2장 또는 요한복음 없이 교회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동시에, 이러한 불편함은 구약성경이 신약성서와 다소 구체적으로 다르다는 잠재된 오해를 필자나 독자들이 가질 수 있다.

구약성경이 삼위일체에 관해 가르치고 있는가? 메시아에 관해서는? 로마서 10장 9절 없이 예수님이 주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현실은 이렇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복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암시하는 것들을 가장 자주 보여준다.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약성경을 빛이 많이 들지 않지만, 가구로 풍성하게 장식된 방에 비유할 수 있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처음부터 그곳에 없던 물건들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겠지만 원래부터 그 방에 있었던 이전에 인식되지 못하였거나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던 가구들은 더 명확히 보이게 된다.

또 로버트 스미스 주니어(Robert Smith Jr.)가 종종 말하였듯 모든 신약의 교리에는 구약성경이 보여주는 그림이 존재한다.

베뢰아 사람과 같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완성된 성경을 전부 찾아보라는 것이 아니라 특히 구약성경의 말씀을 찾아보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하는 것이다. 워필드의 말을 빌리자면, 베뢰아 사람이 되는 것은 불을 밝히고 성경을 읽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대할 때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찾은 구원의 계획이 신약성경을 통해 계시가 된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

진정한 베뢰아 사람이 되려면

이 모든 것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토론에서 이기기 위함이나 지식 그 자체를 위해 우리의 머리를 지식으로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증거한다(행 17:12).

베뢰아 사람들을 본받고자 하는 목적은 믿음을 끌어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말씀을 통해 설교하신 그의 사역의 결과이다. 베뢰아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예수가 있었다. 우리에겐 성경이 있다. 우리 모두 함께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찾고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해가야 한다(고후 3:17-18). [복음기도신문]

“ 베뢰아인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예수가 있었다 ”

그리핀 굴리지 Griffin Gulledge | 미국 조지아에 위치한 Madison Baptist Church 목사.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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