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을 기다린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이제 17일이 된 딸을 보면 지금도 출산의 감동이 밀려온다. 예정일보다 4일 이른 아침 8시 47분에 아이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간호사를 통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은 아이의 항문이 두 개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정말 다급해지는 순간이 오니 주님만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면서 한참을 기도하던 중, 마치 습관과도 같이 ‘열방과 민족’ 을 향한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 제 아이 기도를 먼저 좀 하고 열방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욱 열방을 품게 하셨다. 문득 기도실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봤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때에야, 이 말씀이 마음으로 받아졌다.
‘아니…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셨길래 독생자를 그 고통 가운데 내어 주시고, 나의 이름표를 독생자 예수님께 달아놓으셨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아빠가 된지 10분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 아이가 건강할 수 있다면 내가 대신 기형이 되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만큼 자녀를 향한 사랑, 아버지의 사랑이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런데 도대체 태초부터 함께 거하셨던 독생자를 인류 가장 큰 고통이라는 십자가의 고통으로 어떻게 넘기실 수 있다는 말인가?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 독생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켜보실 수밖에 없는 그 고통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을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성경을 폈다(성령님께서 주신 지혜라 믿는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말씀을 보는 순간 가슴이 불처럼 타오르는 감동이 임하면서 ‘예인’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자 ‘예비할 예(豫), 도장 인(印)’ 자가 명확하게 마음에 떠올랐다.
예비할 예자는 이사야 40장 3절에서, 도장 인자는 요한계시록 7장 3절의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하나님이 인치셨다는 말씀에서 얻었다. 병원 기도실에서 아이의 이름과 한자를 감동으로 받았다.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 주님의 평강이 밀려왔다. 인생의 주제가 결정나는 기도였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 되어라.”
드라마 같은 일이 또 펼쳐졌다. 기도실을 나가자마자, 병원의 검사결과가 나왔다. 척추 끝에 옴팍하게 들어간 자국인데 거기에 신경이 두개가 나와서 연결되면 문제가 되는데 예인이는 괜찮다고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이 언제나 막연한 말씀인 듯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 마태복음 6장 33절은 최고의 선물이다. 왜냐면 우리의 보증,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된 바, 우리 인생에 주시는 모든 주제는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로 사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셨다. 아이의 출산.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신부로 서는 이 거룩한 일에 대하여 시작과 끝을 이루신 우리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GNPNEWS]
김정우 전도사(충신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