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아카데미 작품상 및 11개 부문 수상, 당시로는 파격적인 액수인 당시 1,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초호화 스펙터클 대작.
그 때까지 세워진 거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운,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은 명화. 이것이 영화 벤허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부제가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 라는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예수님의 대사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등장은 하지만 얼굴도 아닌 뒷모습만 나온다. 표면적인 내용은 로마를 배경으로 유대인을 대표하는 귀족 벤허가 겪는 시대적 고난과 절망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박진감 넘치는 마차경기 장면이 3시간 내내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예수님은 중간에 아주 잠시 등장하실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 벤허의 주제는 증오, 분노, 복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 사랑, 화해로 바뀌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로마라는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 민족마저 팔아먹은 호민관 멧살라. 그리고 유대 민족을 배반하지 못해 결국 누명을 쓰고, 군선의 노를 젓는 노예로 전락하는 벤허. 이 둘의 갈등관계가 큰 축을 이루며 영화를 이끌어 간다.
원수 멧살라에게 복수할 생각만으로 비참한 시간을 이겨내는 벤허, 그러나 나중에 그가 고백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위기의 순간마다 도우심을 얻으며 가장 소망 없던 노예에서 최상위 지위로 오르는 기적을 경험한다.
꿈꿀 수도 없던 모든 것을 얻은 그였지만 감옥에 갖혀 있을 가족생각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미 가족들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는다.
복수를 해도 상황은 변할 것이 없지만 멧살라를 복수하기 위해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마차경기에서 그에게 복수하게 된다.
결국 멧살라를 무릎 꿇게 한 벤허는 사고를 당해 죽게된 멧살라를 통해 그의 가족들이 아직 살아 있으며 현재 문둥이촌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노예의 때보다 더 깊은 목마름을 경험하는 벤허. 분노라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어 결국 멧살라에게 복수하지만, 진짜 그를 얽매게 한 것은 눈에 보이는 원수나, 로마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도저히 벗어날 수 운명의 무게 앞에 절망한다.
드디어 노모와 여동생을 만났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 노예로 끌려가다가 목 말라 죽을 뻔 했던 그 기억을 되새기며 그 순간, 그에게 찾아와 물을 주셨던 분을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도 완고히 찾기를 거부하다가 결국 가족을 구할 유일한 길이 예수님임을 깨닫고 찾아 나선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때 십자가에서 처형받기 위해 골고다에 오르고 있으셨고 결국 골고다에서 만난 예수님을 보며 그가 바로 목말라 죽을 수밖 없던 자신에게 물을 주셨던 그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그의 가족들이 치유함을 얻고, 그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벤허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보이지 않으나 그를 이끌고 가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벤허는 주님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고 계신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이제야 깨닫는다. 어느 누가 뽑은 명대사처럼 “누군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그의 삶을 예수님이 자신께로 이끄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그럼 나의 삶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주인은 누구이신가? 예수님이시다.
2012년이 시작됐다. 나의 삶의 이야기가 아닌 예수님이 주인 된 삶을 오늘도 살게 하실 것을 믿는다.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어떤 상황이든지 주님 없이는 설명할 수 있는 한 순간도 내게 없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에게 찾아와 주인이 되어주신 그분의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해 오늘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