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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시기(猜忌)와 질투(嫉妬)를 없애는 비결

▲ 가을 풍경 ⓒ 박계환

한자로 시기의 뜻을 풀어보면 시(猜)는 푸름에 짐승 같은 것이 있는 것이고 기(忌)는 마음에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질투(嫉妬)의 질(嫉)은 여자의 마음에 있는 질병 같은 것이고 투(妬)는 여자의 마음에 있는 돌이다. 그러니까 시기와 질투는 주로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영어로는 시기하는 것이 jealous이고 또는 green envy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초록색이 일종의 독의 색깔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사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이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주님을 믿으면 이와 같은 시기와 질투에서 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주님을 믿으면 ‘자아’라는 개인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 라고 하는 존재로 바뀌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달란트 비유’를 깨달아야 한다. 주인이 종들에게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은 세상에서 사람의 능력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점잖게 말하면 ‘능력이 각기 다르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이 말은 사람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능력이 다르면 소유가 달라지고 사회에서의 계층이 달라진다.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자고 하면 공산주의 사회인 것이고 균등하자고 하면 사회주의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다.

1달란트의 가치가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20년 일해서 버는 돈이니까 월 300만 원이라고 한다면 약 7억 원의 가치가 1달란트이다. 그러니까 하인이 1달란트를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인생을 살 때에 경제적으로 살아갈 만한 것은 주님이 다 주신다는 것이다. 재능, 소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더 많은 이익을 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 달란트와 그것을 이용한 이익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완전히 다르다. 먼저 인간은 5달란트를 받은 것과 2달란트, 1달란트를 받은 것을 비교한다. 여기서부터 좋게 말하면 부러움이고 나쁘게 말하면 시기와 질투가 일어난다. 그리고 5달란트로 10달란트가 되게 했다면 그 총액을 보면서 사람들은 역시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 반면에 2달란트, 1달란트를 받은 자를 소홀히 대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심지어는 ‘갑질’까지 한다. 나중에 이익을 낸 것에 대해서도 비교한다. 정작 달란트를 받은 본인들도 상대적 우월감이나 열등의식을 갖는다. 이런 모든 생각과 마음과 의식은 하나님이 없이 자신만의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또 주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하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인간의 인식이나 평가와는 전혀 다르다. 먼저 하나님은 하인들에게 달란트를 차별하여 주셨다. 사람들은 이것을 불평등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평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계획을 따라 하인들을 사용하시는 정도를 다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이렇게 말해도 세상의 눈으로는 ‘불평등’이라고 말하는 그 한마디로 이 상황이 확 인식된다. 그러니까 나도 한마디로 말하겠다. 하나님은 세상을 불평등하게 구성하셨다. 되었는가? 불만이 있는가? 왜 나는 삼성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고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났는가? 하고 부모를 원망 할텐가? 그런 식으로 해 보아야 아무 소용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달란트를 얼마나 활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5달란트로 10달란트를 만든 하인과 2달란트로 4달란트를 만든 하인은 주인에게 똑같은 칭찬을 받았다. 사람은 10과 4라를 숫자를 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인간이 몇 배의 이익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다. 5달란트의 하인과 2달란트의 하인이 모두 2배의 이익을 남기자 주인은 그 둘을 똑같이 칭찬하셨다. 그러므로 1달란트의 하인도 2배의 이익을 남겼다면 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에 시기와 질투에 대한 해답이 있다. 우리는 자꾸 총액만 본다. 주어진 자본금으로 얼마나 어떻게 이익을 남길 것인가? 하는 것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얼마나 갖고 있는가? 하는 것에 눈이 돌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아’가 아니라 ‘하나님-나’의 자아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의 자아가 있는 사람은 세상을 따라 세계관을 형성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관을 구축한다. 이 세계관이 마음에 형성되면 시기와 질투는 사라진다.

중학교 때에 동창 가운데 박시균이란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책을 한 번만 읽으면 그냥 다 외웠다. 그러니까 공부 경쟁이 안 된다. 나는 몇 번을 읽어도 다 못 외웠다. 근본적으로 그 친구는 5달란트고 나는 2 혹은 1달란트이다. 이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으면 인생의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몇 달란트의 존재인지를 파악하고 그 달란트를 활용하여 인생에서 이익을 내면 된다. 그것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인생이다. 박시균이란 친구가 가는 인생의 길은 따로 있고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이 따로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잘 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달란트 비유를 깊이 묵상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달았다. 나는 악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시기와 질투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나의 달란트를 개발하고 활용하여 이익을 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인생에서 해야 할 방향과 방법을 정하고 그 길을 꾸준히 진행시켰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성경말씀을 보고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길이 되었다. 게다가 선교사를 하게 되어 선교를 경험하고 있다. 중국이란 나라의 환경은 비밀스럽게 선교를 해야 했기 때문에 생활 자체가 마치 감옥에서 사는 것 같았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자가 격리’란 말이 유행하는데 나의 선교생활이 마치 자가 격리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은 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그 생활을 감사할 수 있다.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를 보면 부러워하고 존경하지만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는다. 깊은 신앙으로 선교를 하는 선교사를 보면 존경하지 시기와 질투로 그를 대하지 않는다. 깊은 학문의 세계를 이루고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를 보면 존경하고 그의 강의를 듣는 것을 기뻐하지 시기와 질투로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싫어한다. 교회 크게 한다고 권위주의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 선교를 선전으로 이용하여 돈을 많이 거두어들여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교수 가운데 명예와 권위를 추구하고 또한 학문이 깊어져서 우러나오는 겸손의 향기가 없는 사람 등이다. 이런 사람을 대하더라도 순하게 대할 수 있을 정도의 인품이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되고 형식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게 된다.

기독교인 인품의 최고는 ‘겸손’이다. 겸손은 시기와 질투를 버렸을 때에 나오는 인품이다. 시기와 질투가 깨닫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아직도 내면에서 기생충처럼 꿈틀거리고 있는데 겸손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은 겸손을 위장하고 있는 것이지 참된 겸손의 인품을 가진 자가 아니다. 기독교인은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기독교 지도자들의 목회와 선교와 교수가 다 헛수고일 확률이 높다. 사람만 많이 모으고 양만 늘려놓았지 하나님의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헛수고에 인생을 소진하는 경우들이 많다. 많이 불쌍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의 근원이 무엇인지 깊이 돌아보고 깨닫기 바란다. 시기와 질투는 자아를 중심으로 할 때에 나온다. ‘하나님-나’의 자아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따라 거기에 충실하면 시기와 질투할 시간도 없다. 주님과 함께 하는 나의 삶이 즐거운 데 남을 시기하고 질투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하겠다. 내가 얼마의 돈이라도 있으면 그 재산으로 즐겁게 살지 10조원을 갖고 있는 삼성재벌의 회장을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나의 삶을 슬프고 화나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하나님-나’의 자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자아, 이 의식이 없으면 사실 거의 언제나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삶이 될 것이다. 내가 시기와 질투의 관점을 하나의 예로 설명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는 문화의 영역을 깨닫지 못하면 마귀가 만들어놓은 그물과 같은 세상 문화의 영역에 걸려 속 쓰린 삶은 살게 된다. 거기에는 은혜와 평안과 감사가 없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히면 마귀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고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자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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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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