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 인터뷰]
서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참 달려야 보이는 헤브론선교대학. 그 안에 있는 복음기도신학연구소 사무실은 폐교 건물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삐거덕거리는 복도를 통해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성렬 선교사가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햇살을 머금은 조용한 사무실에는 몇 개의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수많은 책들, 낡은 컴퓨터와 자그만한 티 테이블 정도가 눈에 띌 정도로 사무실은 소박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깊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 복음기도신학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현재는 헤브론선교대학교의 신학대학을 운영하는 동시에 성경언어에 대한 다양한 세미나, 성지연수 등 성경언어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가르치고 전하는 사역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 성경언어라면 어떤 언어죠?
“성경은 본래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되어 있어요. 그것들을 각 나라의 언어에 맞게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죠. 그렇다보니 성경 원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번역되거나 그 의미가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더 정확한 의미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전하고 있는 것이죠.”
– 그렇군요. 성경언어가 어렵진 않나요? 공부를 많이 하셨을 것 같네요.
“아니에요. 저도 계속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사실 저도 처음엔 성경언어에 대해 대학에서 계절학기 수업 정도만 듣고 책에 먼지만 쌓아놓던 수준이었어요. 제가 복음을 만난 뒤 주님께 제 인생을 드리고 처음 순종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어요. 처음 올 당시에는 1년 정도 아무거나 섬기자는 생각으로 왔어요. 그런데 연구소 소장이신 김명호 교수님이 섬김이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성경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하루는 시편 23편 말씀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개역개정에는 ‘내게’로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에는 ‘내가’라고 되어 있어요. 소유와는 상관없이 존재 자체가 부족함이 없는 존재라는 고백이었어요. 이 강의를 듣고 그날 창세기를 묵상하며 야곱이 요셉의 손자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어요. 야곱은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해요. 원문을 찾아보니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죽음을 앞둔 이 순간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의 ‘기르신’이라는 단어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의 ‘목자’와 어원이 같았어요. 주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내 인생을 붙드신 주님을 만나다
–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네, 그날 또 이사야 66장 2절도 함께 생각이 났어요.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돌본다는 말씀도 인생 통째로 돌보신다는 말씀이거든요. 사실 성경의 원문을 공부하고 섬기는 일도 한 해 두 해 할 일이 아니었어요. 평생 붙들어야 할 말씀이고요. 나를 평생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이 나를 가장 복된 자리로 불러주셨구나 깨닫게 되면서 복음기도신학연구소에 헌신하기로 결정했어요.”
– 말씀이 선교사님을 부르셨군요?
“그렇죠. 헌신을 결정할 무렵 우리 집에 많았던 선산을 아버지가 묘 하나로 다 정리하셨어요. 그리고 비석 전면에 시편 23편을 써놓으셨죠. 뒷면에는 ‘앞으로 우리의 모든 후손이 이 말씀 아래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쓰셨어요.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후손들도 이 고백 안에 살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헌신을 확증하게 됐어요.”
“말씀 아래 묻히기를 원하노라”
– 아버님도 말씀을 따라가시는 것을 보니 선교사님 가정도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신 모양이군요?
“네, 지금은 그렇지만 원래는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할머니는 아버지와 형과 제 이름을 절에 올리셨습니다. 보살들도 저희 집에서 자주 머물 만큼 아주 독실하셨죠.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안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서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어요. 알고 보니 어머니는 모태신앙이셨어요.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어릴 적 돌짐을 지어가며 교회도 지으신 분이셨죠. 그러나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회복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찬양을 부르시던 할아버지 등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있던 터에 어려운 일이 생기자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이죠. 어머니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모든 가족들이 교회에 나가게 됐어요. 2년 안에 모든 가족들이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1년 12달 제사가 있던 집에서 제사도 끊겼어요. 교회 나가면서 보니까 우리 집 주위에 모든 집이 믿는 분들이었더군요. 주변에서 다른 집은 다 되도 저 집만은 안 된다던 집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이죠.”
– 하나님의 은혜네요. 그렇게 예수를 믿고 나서 신학교에 들어가신 건가요?
“아니요. 처음엔 안경광학을 전공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내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죠. 제대 후 안경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9시에 출근해서 밤 9~10시 무렵 퇴근해 동료들과 술 한 잔을 했어요. 늘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은 죄의 정욕에 사로잡힌 삶이었어요. 허망하고 추악한 삶인 것을 알아도 벗어날 수 없었어요. 이런 갈등은 어려서도 있었어요. 6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만난 기쁨도 있고, 교회에서는 모태신앙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면서도 학교에서는 싸움도 하고, 죄도 지었습니다. 제 자신도 이상했어요. 교회에서는 칭찬은 받는데 실상 제 삶은 죄였으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중3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기도원에 가셨어요. 제 어려움을 아셨던 것이죠. 조용히 가서 기도했어요. 나 자신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죠. ‘술, 담배를 끊게 해주시면 주의 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셨나요?
“네. 고등학교 올라갈 무렵, 그런 것이 너무 쉽게 정리됐어요.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어요. 고1때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났어요. 3일 동안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났어요. 퇴원 후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니면서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살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길을 걸어 다니며 내 목숨을 살려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다녔어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런 시간을 보냈지만 대학시절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다시 죄에 빠져들어 갔어요. 중학교 때 과정을 겪었지만 또 곤고해졌어요. 아무리 친구들과 어울리고 죄를 지어도 순간에 없어지고 또다시 곤고해졌죠. 그때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해주셨어요. 예배도 회복되고요. 얼마 후 안경점을 차리려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암에 걸린 큰누나를 잠시 돌보게 되었어요. 큰누나와 함께 병원도 가고 기도원에도 다녔어요. 그때 직장 없는 청년들은 다른 것 말고 성전에서 말씀을 읽으라는 설교를 듣게 됐어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성경을 통독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마음을 많이 주셨어요. 그렇게 교회에서 말씀만 보고 있는 저를 보시고 목사님과 성도들이 재정을 모아서 안경원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 놀라운 일이네요. 주님이 성도님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나 보네요.
“안경원을 시작할 때, 직장 생활은 부업이고 전도가 본업이란 말씀을 들었죠. 안경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의 은혜였잖아요. 그래서 안경원 하면서 전도를 많이 했어요. 안경 씌워줄 때 손님이 내 앞에 있어야 하니까 그 기회에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안경 케이스 안에 전도지를 넣어주기도 했어요. 안경사는 안 보이는 것을 보게 해주는 사람이잖아요. 육신의 눈만 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눈도 뜨게 하면 좋겠다고 기도했어요. 우리 안경원에선 늘 찬양이나 설교말씀이 흘러나왔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안경 수리하러는 많이 오는데 구매하러는 오지 않았어요. 점점 재정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하루의 첫 소득을 구별해서 헌금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순수한 목적이 아니었어요. 헌금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했어요. 잘되면 선교를 위해 사용한다고 고백은 했지만 나 잘되자고 하나님을 이용한 것이죠. 결국 안경원은 빚을 지고 문을 닫게 됐어요.”
– 안타깝네요.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바람이 깨져버렸네요.
“이후 여기저기 일을 하고 있을 때, 큰누나가 소천하셨어요. 큰누나의 죽음을 보면서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에 주님께 서원했던 것이 생각났죠. 주의 일을 하겠다던…. 설교 메시지를 들으면서 나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 생활은 이런 게 아니구나. 만사 형통하고 부유해지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더군요. 그러면서 신학교에 가기로 했죠.”
<이상 204호에 게재>
누나의 죽음과 믿음의 결단
– 그렇게 신학을 하게 되셨군요.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집 근처로 한 신학교가 이전을 해왔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고 당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라 낮에는 학교에서 책을 보면서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매일 학교에만 계속 있으니까 학교 운영하시는 분들이 학교 청소라도 하라면서 일자리를 주셨어요. 나중에는 학교 직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관리에서부터 많은 일을 맡게 됐어요. 일이 많아지고 학교에서 인정도해주니 슬슬 다른 것들을 찾게 됐어요. 또 죄를 지었죠.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신학교 내에서 죄를 짓고 절망했어요. 그때 스스로도 많이 자책했어요. 하나님이 꿈꾸는 진짜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들어왔는데 내 죄 하나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절망하고 있을 때 지금 연구소 소장이신 김명호 교수님을 만났어요. 당시 학장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우리 학교에 오시게 됐어요.”
– 그렇게 처음 만나셨군요.
“교수님은 아침에 예배를 시작할 때 복음으로 도전하셨는데 그 말씀이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복음에 대한 갈망이 생기면서 지인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복음학교에 참여하게 됐죠.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신학 지식이 아니라 생명으로 알게 됐어요. 강의 중에 존재적 죄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미 공부했던 것이지만 나에게 대입해보지 못했죠. 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구나. 그래서 십자가가 내게 필요했구나. 그때서야 알게 됐습니다. 어쩌면 주님을 그때 만나게 됐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나니 다시 그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졸업장 따고 목회를 했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될 뻔했다는 사실이 아찔했어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학교를 그만두고 선교적 존재로 살기로 했습니다.”
– 선교적 존재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이죠?
“민들레 씨가 자기가 원하는데 떨어지지 않고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다니다 떨어진 그곳에서 똑같은 생명을 피워내는걸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주님이 원하는 곳에서 또 다른 생명을 낳아야 하는구나. 내가 꿈꾸고 디자인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순종해야할지 모르다가 복음을 만나면서 선교적 존재로 사는 것이 이런 삶이란 것을 깨닫게 됐어요. 이후 여러 선교훈련들을 받고 선교사를 훈련하고 파송하는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에 저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전적으로 의탁했어요. 그렇게 해서 순종하게 된 곳이 복음기도신학연구소였어요.”
– 신학연구소에서의 선교적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
“허드슨 테일러나 리즈 하월즈도 원문 성경을 가지고 사역했어요. 실상 미전도 종족에게 간다 해도 번역 성경으로는 한계들이 있죠. 번역을 하다보면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원문 안에 있는 마음까지 표현하기는 쉽지 않죠. 성경을 번역한다고 했을 때 번역본에서 또 번역을 해야 할 경우 오역이 생길 가능성도 많죠. 선교사로 가시는 분들이나 목회현장에 있는 분들이 원문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왜냐면 원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 사역들을 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요.”
– 원문에서 발견하게 된 하나님의 마음을 한 가지만 나눠주시겠어요?
“출애굽기 14장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의 군대를 둔 상황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에요. 원문에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에 ‘주님이 친히 싸우신다’는 말이 강조가 되어있어요. 이 싸움이 너희에게 속한 게 아니라 내게 속하였으므로 친히 싸우겠다고 강조하시는 것이죠.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귀머거리가 되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처음 부름 받을 때 모세가 자기는 입이 둔하다고 하죠. 그때 하나님이 ‘입을 만드신 이가 누구냐’고 하시면서 귀머거리, 벙어리를 말씀하시거든요. 그때 ‘못 듣는 자’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출애굽기 14장에도 동일한 단어가 쓰였어요. ‘애굽으로 돌아가자’라는 등의 수많은 내부의 소리로부터 귀머거리가 되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것이었어요. 귀머거리가 되라는 말씀도 이렇게 받아졌어요. 내가 귀를 틀어막는다고 해서 안 들리는 게 아닌데, 살아있는 채 귀머거리가 된다는 것은 육체의 소리에 대해 죽으라는 것이구나. 십자가의 자리로 나가 육체의 소리에 대해 죽고, 귀머거리가 되어 하나님께만 반응하고, 주님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 내용을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지네요.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지금은 헤브론선교대학과 헤브론원형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는데 문법을 가르치는 것을 떠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에요. 제 자신 먼저 더 주님의 마음 알고 순종하는 자로 서고, 그들에게도 지식 쌓아가고, 히브리어 안다는 수준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님께 헌신된 자들로 키워내는데 제 인생이 사용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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