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것은 사역하는 것보다 더 깊은 영적 생활을 요한다. 육체는 하나님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외견상 큰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도의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인간적 수단을 찾게 된다. ‘오로지 기도만 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이는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세상을 움직이시는 손을 움직인다”는 사실이 우리를 통해 입증될 때 기도한다는 것은 지극히
큰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기도가 그 손을 움직일 수 없다면 우리가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든지…구하는 것을…주시리라…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16:23-24).
지금까지 학자들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이 두 구절에서 첫 번째의 ‘구하라’는 헬라어에서 부정 과거형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관련해 단 한 번 구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의 ‘구하라’는 계속성을 띤 현재 시제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계속적으로 구하고 받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기도는 단순히 구하는 선에서 그치는 기도가 아니라 받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기도, 계속적으로 구하고 받는 기도이다.
– 능력있는 기도(2009)
제씨 펜 루이스, 두란노 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