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넘어지는 일상에서 붙들어주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라는 고민 속에 이런저런 일을 찾아다녔다. 어릴 적 태권도 선수생활을 한 터라 자연스럽게 도장을 찾아가 사범생활을 했다. 하지만 선수시절 운동과 시합에만 전념하던 것과 먹고살아야 하는 직장이 된 도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장이 아니라 학원이 되어버린 태권도는 내게 더 이상 만족과 보람이 될 수 없었다.

보장 없는 미래와 차가운 현실에서…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며 직장을 찾았으나 고졸이라는 학벌과 가난한 출신배경으로 찾아갈 곳은 생산직 공장과 서비스업 외에는 환영하는 곳이 전혀 없었다.

양심의 소리를 누르면서 두 눈 질끈 감고 술집웨이터로 3년만 열심히 하고 자금을 만들어 사업을 하려고 구직신문을 보고 찾아간 술집은 동성애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곳이었다. 험한 말을 하며 붙잡는 손들을 뿌리치며 뛰쳐나와 거리를 배회하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당시 교회에서 청년 회장이었던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절망스러웠다. 부모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에 대한 존재감마저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 10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인생을 완전히 실패한 낙오자로 비참한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 이러한 슬픈 얼굴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교회에 나가 외식과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그때는 정신 위안적 차원이었지만 그나마 소망과 행복을 노래하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

보장이 없는 장래와 차가운 현실, 여기서 밀려오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잊기 위해 그나마 교회봉사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고 여기저기 집회와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세상에서 도망을 가듯 몸부림을 쳤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자의반타의반 도피처로 선택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시작했다. 무지함으로 일평생 슬픔을 가진 채 멸망이 운명이 된 내게 주님이 찾아와 주셨고 그때부터 주의 사랑으로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하셨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출구로 보이는 빛이 서서히 보이고 있었다. 말씀 한 구절과 찬양 한 소절이 전혀 새로운 의미와 감동으로 다가왔고 세상과 인생에 대한 절망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일어날 때 비로소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세워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복음을 제목수준 만큼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헛된 멍텅구리 인생에서 벗어날 길은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7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과 작별하고 화려한 출애굽을 계기로 시작된 선교사의 삶. 이때부터 전혀 예측하지도 추측하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수준의 삶을 허락해주셨다. 많은 믿음의 증인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을 하고 사역을 하면서 계속 복음 앞에 서게 해주셨고 세상의 탈출을 넘어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지옥 같은 자아의 실존에서 기가 막힌 해방을 선언해 주셨다. 이 진리가 믿어지는 순간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적인 은혜로 나의 삶을 바꾸어주신 주님은 십자가 복음으로 나의 존재를 변화시켜주셨다. 할렐루야!

행복한 선교사의 삶
작년 겨울 복음사관학교 아웃리치로 산세가 험하고 어려운 강원도 구석구석을 다닐 때, 지난 여름에는 동부 아프리카에서 10시간이 넘게 현지버스를 타고 고향과 가족을 잃은 난민들을 찾아가고 길이 없는 오지로 풀을 헤치며 마을에 들어갈 때 주님이 이 죄인에게 오시기 위해 얼마나 험한 길을 헤쳐 오셨는지 묵상하게 되었다.

그 존귀하신 분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는 모든 과정이 실상은 얼마나 험한 길이었는가? 하늘의 보배로운 식탁을 누렸던 주님이 여인의 젖을 빨고,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무소부재하신 분이 수십 번 넘어지면서 걸음을 배우셨던 시간들. 한 인생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그분이 가야했던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독한 길이었는지 묵상하며 버스에서 숙소에서 울고 또 울었다.

지난 시간 내게 이런 과정이 있었는가?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중심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는가?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는 창세전 그 결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정인가? 또한 나는 그분에게 지금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 존재였는가?

부끄럽지만 나는 고통을 잘 모르는 불쌍한 선교사다. 그래서 지난 나의 사역과 섬김에는 인내와 견딤, 오래참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런 과정은 내게 큰 고통을 수반하기에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마음에서조차도 거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얼마나 완전하고 아름다운 복음을 창조해 내었는가!

이제야 주님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십자가 복음은 나의 의지와 결단을 넘어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새롭게 하셨다. 이제 눈물을 짜내지 않아도 된다. 결단하려고 살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아멘 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기에 행복한 행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잠 못 이루는 침상에서 10년 후 내 모습을 그리던 그 시간이 다가왔다. 순회선교사로 지낸 10년을 앞에 두고 있다. 정말 감격, 감격이다. 그 동안 넘어지고 자빠지는 일상의 연속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더욱 붙들어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은혜가 더욱 나를 찬송하게 한다. 내 존재와 삶에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혁명이 일어났다. 지금 아프리카는 정치적인 사회구원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구원을 소리치며 손을 흔들지만 그 모습이 지난 나의 모습임을 알기에 내게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십자가 복음뿐이다. 아멘!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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