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순종의 삶을 누리는 김효영 권사
시장 골목의 아기자기한 이층 교회에서는 바깥의 소란과 상관없는 고요함 속에 ‘느헤미아 52기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각자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들어서며 나서며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기도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곳, 부천에 위치한 <꿈꾸는교회>에서 느헤미아 지기로 섬기고 있는 김효영 권사를 만나보았다.
– 권사님을 소개받을 때, “자매 갈렙이라고나 할까요!” 이 한 마디였습니다. 어떠신지요?
“갈렙이라뇨! 저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가진 것 없고 배움도 없는, 열등감만 겹겹이 포장된 제가 나이 60에 주님을 만나 “주님 말씀하시면 그저 무식하게 순종하겠습니다” 그 한 가지 기도제목만 가지고 살뿐이지요. 아는 게 없으니 계산도 모르고 그저 순종 밖에는 할 줄 모릅니다. 다른 사람 걸을 때 저는 두 배 세 배 뛰면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나 같은 자를 만나주신 그 주님께 너무 감사해서 그저 ‘아니오’ 소리 없이 달려왔을 뿐입니다.”
–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그 순종의 발걸음은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5년 전, 장애인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아들이 어느 날 제게 묻는 겁니다. “엄마, 정말 온전한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하고서. 그때 저는 대형교회인 Y교회의 개척 멤버로 집도 내놓고 교회에 들어가 40, 50대를 다른 누구보다 맹렬하게 사역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저의 그러한 삶이 하나님께 진정 구원받고 감사해서가 아니라, 그 은혜가 아니라 그저 ‘자기의 열심’ 이요 ‘자기’를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었지요. 아들은 제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자상하고도 세세하게 꾸준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이 되던 그 주간에 저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담고 살아온 그 Y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듯이. 14년 동안 큰 교회와 기도원을 짓는 일에 앞장서고 교회의 크고 작은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빠져나온다는 게 쉽지가 않았지요. 그 후에 꾸준히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 과감한 결단만큼이나 새로운 행보도 주저함이 없으셨던 거군요.
“몸담고 있던 그 교회를 나오자마자 맨 처음 아들이 저를 이끌고 간 곳은 ‘신규24365 모임’ 이었습니다. 그 날 말씀을 듣는데 앞뒤좌우가 선명해지더군요. 한마음교회에서 보았던 율동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후 무작정 매일 하루 한 시간씩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24365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시간에 알람을 받으며 몇 달 동안 기도에 참여하다보니 어느 날 도우미를 하게 되더군요. 도우미라는 것이 제가 기도하는 시간에 새롭게 기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중보하는 것이죠. 제가 섬김을 받았듯이 저도 그렇게 섬기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복음학교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알게 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된 것이지요.
–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언제나 쉼 없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허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게된 것이지요. 40여년의 신앙생활은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된 삶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지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 가정이나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조차도 나의 부끄러운 내면을 감추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에게 뒤쳐지기 싫어서 외모를 치장하고 다녔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외식적인 열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의 옛 사람은 죽고, 이제 예수 생명으로 존재가 바뀌었는데 과거에 연연해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죠. 물론 매순간 믿음이 필요한데, 믿음의 교제와 훈련, 섬김을 통해 더 굳건하게 서는 법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죠. 복음학교를 마치고 8-9회 정도 섬김이로 참여한 것 같아요. 그리고 틈틈이 중보기도학교, 선교관학교, 말씀기도학교에 참여했습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미주복음학교, 사
이판 중보기도학교를 섬기기도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불러주시고 써주시는 것 감사해서 그저 순종할 뿐이지요.”
– 그렇게 주저함 없이 달려오실 수 있으셨다면 물론 가족도 함께였겠지요?
“네. 제가 Y공동체를 박차고 나와서도 남편인 장로님이 함께 하기까지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찬양사역으로 섬기고 있던 딸은 2년을 더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각자 시기는 차이가 났지만 아들에 이어 제가, 그리고 남편과 딸과 사위가 순차적으로 복음학교를 거치고 이제 한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장모인 제 앞에서 땅바닥에 무릎 꿇고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복음’ 을 나누던 사위는 지금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중보기도학교를 하며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더군요.”
– 권사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지금, 행복하시죠!”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맞아요. 정말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항상 공허했습니다. 결론 없는 봉사활동뿐이었습니다. 짐을 청산하여 교회에 들어가 살면서 큰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항상 허전했습니다. 손가락의 모든 뼈마디가 상해 구부러질 만큼 일을 해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자유롭지도 못했지요. 부담과 두려움 속에서 저를 위로하는 한 가지는 다만 ‘이 거대한 공동체의 개척멤버로 안살림을 총괄하고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얄팍한 육적인 만족감으로 내적 공허감을 덮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반대입니다. 육적으로는 부족한 것 투성이이지만 영적으로는 충만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노동뿐이었지만 지금은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결론을 갖고 달려가니 두려움이 없습니다.”
– 신실하신 그 순종의 발걸음이 앞으로도 어떻게 뻗어나갈지 계속적인 그 길이 기대됩니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듯 ‘그저 무지하게 순종하며’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 기도제목입니다. 어떻게 인도하실지 매 순간은 알 수 없지만 부르시는 대로 행할 것입니다. 틈틈이 불러주시는 순회선교단이나 지금 삼년 째 섬기고 있는 <꿈꾸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예순 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불러주신 주님께 무조건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감사밖에는 없습니다. 섬기고 순종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글. 허혜란 편집위원
사진. 김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