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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아픔 간직한, 신사적인 사람들의 도시 뵈레아(Bεροια)

김수길 제공

그리스 이야기 (11)

테살로니키에서 새롭게 만든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를 타고 69킬로미터를 달리면 올림퍼스 산으로 이어지는 페르미온 산맥에 위치한 뵈레아에 도착할 수 있다. 봄에 사역으로 올 때마다, 이 길은 내게 행복을 선사했다. 산 중턱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뵈레아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벌판은 복숭아, 자두, 사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차로 두 시간 이상 달려도 계속 이어지는 꽃의 향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처럼 내 기억 속의 뵈레아는 봄의 복사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도시로 남아 있다.

오늘날 뵈레아로 가는 길은 이렇게 낭만적이지만, 과거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야밤에 도망가야 했던 당시의 길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행 17:5)

바울과 실라는 테살로니키에서 짧은 시간 동안 전도하며 유대인 뿐 아니라 그리스의 귀부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은 시장의 폭력배들을 동원해 소요사태를 만들었다. 당시 데살로니카는 로마인들의 도시가 아니었기에 , 총독(αντιβασιλέας)이나 총독보(κυβερνήτης)의 군대가 충분히 배치되지 않았다. 때문에 로마의 군대가 충분히 배치되지 않아 바울은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다.

Greece 5 Paul
김수길 제공

끝없는 이민족의 침략을 견디어 온 도시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베뢰아라는 이름은 마케도니아의 장군 페로나(Περόνα)의 이름을 이어받은 그의 딸 베리타(Verita) 여왕이 도시를 건설하며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 도시는 기원전 9세기 경 쓰라끼(θρακι)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으며, 기원전 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가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 대신 베르기나에 관심을 가지면서 뵈레아는 번영의 시기를 맞았다. 이후 안티고니스 왕조 시절에도 도시의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기원전 168년 로마와의 피드나 전투 이후 로마에 항복한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빌립 2세 당시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Πέλλα)가 아닌 이 지역 베르기나(Vεργίνα)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히 가까운 뵈레아는 부흥의 시기를 맞는다.

알렉산더家를 대신하여 마케도니아 왕조를 이은 안티고니스(Αντιγόνης) 시대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 이후 기원전 168년, 전쟁사에 유명한 로마와 마케도니아 왕조의 피드나 전투(μάχη pidna) 이후 로마에 항복한 최초의 도시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한동안 부흥하던 이 도시는 슬라브족의 계속된 침입과 904년 동로마 제국과 대립관계에 있던 제 불가리아 1제국의 시메온 1세(Συμεών Ι)에게 한동안 점령되기도 했다. 그러다 1454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보다 빠른 1434년에 이 도시는 오스만 터키 제국에 완전히 점령당해 1912년 해방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외세에 시달려왔다.

미소를 잃지 않은 신사적인 사람들

뵈레아의 에그나티아 도로 끝나는 지점 조금 높은 곳에 바울의 설교 강단(Bήma)이 있다. 이곳은 순례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바로 옆에 작은 초등학교와 나란히 있는 이슬람 사원은 때로 혼란을 준다. 원래 이 마드라사(madrassah) 모스크는 교회였으나 15세기 터키 점령 이후 이슬람의 시설로 사용됐다.

이곳은 19세기 중반 다시 리모델링한 오늘 몇 되지 않는 이슬람 사원으로, 바울 성지 옆에서 여전히 이슬람식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의 마드라사 모스크가 보여주는 상징성은 이 도시가 예로부터 이방인들의 많은 침략의 잔재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성경 속의 ‘뵈레아 사람들은 신사적이라는’ 이 말을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신사적인 모습’은 이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사적인 사람들은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부에서 관광객들이 용무가 급해서 아무 가게에 들어가 화장실을 사용하려 하면 대부분 허락하고 작은 미소로 답해준다.

뵈레아는 현재 거주하던 사람들이 떠난 유대인 거주 지역(γκέττο)과 그리고 이슬람에게 혹독하게 핍박을 받았던 기독교인 지역 그리고 번화가 중심도로를 건너 거주했던 터키인들의 지역으로 나눠졌다. 이제는 허물어져가던 건물들을 구입하여 보수해서 사용하기에 거주민의 구분은 없어졌다.

사도 바울과 관련된 유대인 거주 지역에는 기원전 50년경에 세웠다는 유대인 회당(συναγωγή)이 있다. 이 회당은 오스만 왕조의 마지막 술탄이었던 메흐메드 6세(Mehmed VI)가 많은 돈을 헌금하여 리모델링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Greece 2 hall2
김수길 제공

이곳에는 바울 시대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베리아반도에서 1492년 나스르 왕조를 멸망시키며 영토 회복(Reconquista)을 이룬 이사벨 여왕은 회교도 뿐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을 이곳에서 추방시켰다. 이때 추방된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테살로니키와 이곳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는 이곳에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폴란드 수용소로 보내 살해했다.

지역 주민에 따르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로 영구 귀국했으며 이곳에는 이제 두 가정만 남아 있다고 했다. 미혼인 코엔 양은 부모님이 이스라엘로 귀국한 이후에도 혼자 남아, 이곳 유대인 회당의 전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곳은 가장 오래된 회당인 관계로 이스라엘에서도 순례를 온다고 했다. 이 업무를 코엔 양이 맡고 있다. 유대인이 아닌 한국인이 순례를 하려면 이 분과 연결 돼야 한다. 회당 안에는 별다른 장식도 가구도 없다. 예루살렘을 향한 강단이 있고 사방 벽에는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성구들이 붙어져 있다. 특별하게도 남자와 여자의 모임 장소와 통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이처럼 베레아는 외세의 침략과 종교적 박해, 전쟁의 아픔으로 점철된 애잔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엮어낸 잔인한 인간들을 떠올리며 가슴 한켠이 아려오기도 한다. 사람을 외모와 그들의 편협한 생각으로 대하지 않고 먼저 진위를 생각했던 신사적인 뵈레아의 사람들. 이 정신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주민들의 이러한 의식이 살아있는한, 이 도시는 계속 신사적인 사람들의 도시가 될 듯 싶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복음기도신문]

kimsookil

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관련기사]
[김수길 칼럼] 바울이 겨울을 보내기를 원했던 니꼬볼리(악티움, 프레베자)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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