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안토니오 치세리의 <Ecce Homo>
안토니오 치세리는 스위스 출신 이탈리아 화가로 인상주의가 유행하던 19세기 말에도 성화를 그렸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성화의 관습에서 벗어나,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Ecce Homo>는 ‘이 사람을 보라!’라는 빌라도의 연설을 주제로 한 것이다.
작품에서 빌라도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팔을 벌려 예수님을 가리키는 그의 제스처에서, 그리고 군중을 향해 뛰어 내릴 듯 구부린 뒷모습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 몰려온 군중을 향한 빌라도의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라 불렸던 유대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 게다가 아내의 흉몽을 기억하며, 예수를 놓아 주고자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여, 하나님뿐 아니라, 시저도 욕되게 하고 있음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빌라도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더 이상 설득할 명분을 잃게 된 빌라도는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 했고, 성난 군중들이 ‘유대의 왕’이라 쓰여진 명패에 ‘자칭’이란 단어를 넣으라고 할 때도 끝까지 그 뜻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며 십자가의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치세리가 생생하게 그려낸 이 갈등의 장면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재생된다. 우리는 때때로 빌라도처럼 우리 힘으로 감당 못할 외압에 못 이겨, 소중한 신앙의 원칙들을 저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손을 씻음으로 책임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빌라도의 삶을 통해 깨닫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리이며, 때문에 반드시 자리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왜 나를 ‘여기에’ 세우셨는지를 알게 된다면, 세상과 신앙의 갈림길에 섰을 때도 반드시 주님께서 그 해결책을 보여주신다.
(안토니오 치세리, <Ecce Homo>, 1891, oil on canvas)
글. 이상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