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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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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계 1:7bc)

요한계시록 1장 7bc절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일부 학자는 이를 불신자들(①, ②)로, 일부는 신자들(②, ③, ④, ⑤)로, 일부는 불신자 유대인들(⑥)로 해석한다. 불신자들의 애통 시점은 예수님의 재림 때(①), 또는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때(⑥)로 본다. 반면, 신자들의 애통 시점은 예수님의 재림 때(②, ③), 또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④, ⑤)로 해석한다. 특히 ④와 ⑤는 애통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 공동체에 속한 신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 1:7b).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계 1:7c)

그리고 모든 눈 곧 그를 찌른 모든 자들이 그를 볼 것이다(계 1:7b, 이필찬 사역).

땅의 모든 나라들이 그를 인하여 애통하다”(계 1:7c, 이필찬 사역).

이 구절의 구약 배경 본문들은 스가랴 12:10과 창세기 12:3c등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땅의 모든 족속이 너(훗날 아브라함이 된 아브람)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창 12:3c).

본 장에서는 ④와 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먼저 계시록 1장 7절의 세 개의 동사(“찌르다”, “보다”, “애통하다”)를 중심으로 위 구절들을 연구하고자 한다. 이어서 우리는 계시록 1장 7절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7장 13-14절과 스가랴 12장 10절을 결합한 형태로 인용한 마태복음 24장 30절과 이 구절과 평행 관계인 마태복음 26장 24절에 대한 각각의 연구를 통하여 계시록 1장 7bc절의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세워진 그의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1. ‘찌르다’의 대상과 주체

스가랴서에서 ‘찌르다’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대상이 예수님으로 치환된다(계 1:7). 이 변화는 신약 성경의 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 군인의 행동과 연관된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요한은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것과 그 결과를 이렇게 소개한 후에 구약 배경 본문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또 다른 성경(슥 12;10)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2:37).

이는 곧 요한이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사건을 스가랴 12장 10절을 배경으로 재해석하였다는 뜻이다. 스가랴 12장 10절에서는 하나님을 찔렀던 주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인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이방인 로마 군인들이 찌른 자들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이필찬은 이렇게 주장한다.

여기에서 찌른 주체가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치환되는 것 자체가 우주적 의미를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도 ”그를 찌른 모든 자들“이라고 하여 이러한 우주적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1]

이는 곧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서너 명의 로마 군인이 그를 대적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는 뜻이다.

2. ‘보다’와 ‘애통하다’의 시제

요한계시록 1장 7b절의 ‘볼 것이다’와 7c절의 ‘애통할 것이다’는 미래 시제이다. 한편, 7a절의 ‘오다’는 역사적 현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필찬은 이렇게 답한다.

계시록 4장 9절의 “드리다”(돌리다)가 이와 유사한 경우이다. 이 동사는 미래 시제이지만 실제로는 현재적 정황을 묘사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는 미래 시제 동사 중에 히브리어로부터 구문적 영향을 받아서 히브리어의 “미완료 시제”에 해당하는 의미를 헬라어의 미래 시제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것을 요한계시록 본문에 적용하면 “보는 행위”와 “애통하는 행위”는 어느 시점에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은총과 간구의 영을 주실 때마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2]

앞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를 <① 재림 예수님과 애통하는 불신자들>로 해석하는 여러 주장을 살펴보았다. 그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특이한 주장도 있었다.

그분은 땅에 있는 모든 불신자에게 보이실 것이다(마 24:30-31; 계 1:1). 그분의 왕권이 선포되고 주장될 때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각 나라마다(마 24:30; 계 1:7). 모든 사람은 그분을 충분히 그리고 분명하게 볼 것이다…. 즉, 예수님은 지구에 충분히 가까워지고 천천히 지구 표면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그분을 분명히 볼 수 있을 만큼 땅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은 것을 슬퍼하고 있다.[3]

이는 국제 기도의 집(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 마이클 비클(Mike Bickle)의 주장이다. 비클은 이스라엘 회복 운동을 이끌며 이 시대의 고레스라 자칭하고 있다.[4] 그는 미국의 45대 대통령 트럼프가 나타나자 그를 정치적인 고레스라고 하고, 자신을 영적인 고레스라 한다. 비클이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계 1:7)와 관련해서 제기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지구는 둥글고 지역마다 시간이 다른데 어떻게 재림 예수님을 전 지구촌의 모든 불신자가 그들의 자연적인 눈으로 보고 절망하여 애통할 수가 있겠는가?” 비클은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재림 예수님께서 30일 동안에 걸쳐 전 지구촌을 구름을 타고서 행렬하시며 이 행렬에는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이 각각 부활하여 천사들과 더불어 동행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30일이라는 기간은 그가 다니엘 7장 25절과 12장 7절의 “한 때 두 때 반 때”와 계시록 11장 3절의 “1,260일”, 그리고 다니엘 12장 11절의 “1,290일” 등에 기초하여 산출한 결과이다.[5] 비클에 따르면, ‘보다’와 ‘애통하다’의 시제는 예수님의 재림 직후의 30일 동안 계속되는 현재적 상황이다. 비클은 역사적 전천년론자로서 요한계시록을 최대한 문자적으로 해석하려고 고집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를 찌른 모든 자들이 본다”라는 것은 문자적 의미라기보다는 은유적 의미로서 “각 사람의 눈”(모든 눈)과 동일시가 된다는 사실이 밝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필찬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승천 순간에 혹은 그 이후에라도 승귀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6]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를 찌른 모든 자들”은 “모든 눈”의 설명적 동격으로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로서 하나님을 찌른 자들이다. 이 모든 인간을 대표적으로 특징짓는 것이 요한복음 19장 37절에서 예수님의 옆구리를 직접 창으로 찌른 로마 병사들의 행위이고, 따라서 요한은 결국 모든 인간을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자들로 특징짓는 것이다. 특별히 “눈”이 사용된 것은 “보다”라는 동사와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누가 보는가? 모든 눈 곧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모든 자이다.[7]

예수님을 찌르는 자들이 보는 것은 “그”이다. “그”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분(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스가랴 12장 10절을 성취의 관점에서 기독론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그들은 예수님을 창으로 찔렀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늘로 높이셨다.[8]

3. ‘애통하다’의 주체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죄인들이다. 그들은 어느 시대에나 우주의 통치자로 즉위하신 예수님을 보고 애통하게 된다. 우리의 이 해석이 가능한 것은 요한계시록 1장 7c절의 “땅의 모든 나라들”이 7b절의 “모든 눈” 곧 “찌른 모든 자들”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땅의 모든 나라들”(땅의 모든 족속)이라는 문구는 창세기의 아브라함 언약과 관련된 다음 구절들을 배경으로 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훗날 아브라함이 된 아브람)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창 12:3c)

네(아브라함)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직역: 땅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니(창 22:18).

네(아브라함) 자손(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직역: 땅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이와 같은 아브라함 언약과 관련된 창세기 본문들(12:3c; 22:18; 26:4)이 다음과 같은 시편 구절에서 메시아적 관점으로 재해석된다.[9]

땅의 모든 나라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70인역 시편 71:17b=마소라 본문 72:17b, 이필찬 역).

이 시편 본문은 왕의 아들을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간주하고 약속된 아브라함의 씨와 동일시하면서 메시아적으로 해석한다. 이필찬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이러한 구약 본문들을 구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서 땅의 모든 나라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새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취하심으로써 자신을 통해 땅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는 아브라함의 씨로서의 역할을 완전하게 시연해 보이신다. 그리스도의 승귀는 메시아로서 아브라함의 약속 성취를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계시록 1장 7절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는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다. 이필찬은 이렇게 주장한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땅의 모든 나라들”이란 문구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다윗의 아들을 통해 성취될 것이라는 종말적 전망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이 애통은 심판으로 인한 애통이 아니라 회개로 인한 거룩한 슬픔이며, 이런 회개로 말미암아 열방이 새 이스라엘로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상속받게 되는 종말적 성취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계시록 1장 7절의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가 불신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아주 많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근거가 다음 구절의 ‘울다’(애통하다)이다.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애통하고) 가슴을 치며(계 18:9).

이 구절의 상황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발생하는 최종 심판이다. 그러나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다른 문맥에서는 다른 뜻으로 활용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계시록 1장 7절의 문맥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그의 초림 때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 승천, 그의 즉위, 성령을 보내심으로 교회를 세우심, 그리고 그의 교회를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심에 관한 말씀임을 확인하였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7절에는 언급되지 않고 이 구절의 구약 배경 본문인 스가랴 12장 10절에서만 언급되는 문구에 집중하여 보자. 그것은 바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이 구절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망하면서 하나님을 찌른 이스라엘 백성이 은총과 간구의 영을 받고 회개의 애통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이 구절을 활용한 목적이 무엇인가? 계시록 1장 7절에서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를 재림 예수님과 애통하는 불신자들이라는 해석(①)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불신자들을 심판하심으로 그들이 절망하여 애통하게 될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④와 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슥 12:10)의 약속을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었음을 가운데서 성취하심으로 그들이 구원받아 감격함으로 애통하게 될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오순절에 오신 은총과 간구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서 자신들이 찌른 예수님을 보게 될 뿐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들의 주체가 이스라엘에서 땅의 모든 나라들과 같은 우주적 대상으로 발전하고, 찔린 대상도 하나님에서 예수님으로 변환된다. 유대교에 따르면, 아직도 메시아는 오지 않았지만, 기독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내신 메시아이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성취신학이고 확장신학이다. [복음기도신문]


[1] 앞의 책, 101.

[2] 앞의 책, 101–102.

[3] Mike Bickle, The Book of Revelation Study Guide, (Kansas City: Forerunner Publishing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2010), 115.

[4] https://bradtv.net/archives/2574.

[5] Mike Bickle, 117.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정형남의 “예수님의 재림 지점이 요르단의 남부 지역이라는 주장과 그에 대한 응답”을 보라: 『ACTS 중동연구』 제2권(2017), 201-258.

[6] 이필찬, 『요한계시록: 1–11장』, 101-102.

[7] 이필찬, 『요한계시록: 1–11장』, 103.

[8] 앞의 책, 103.

[9] 앞의 책,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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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전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관련기사]

대체신학 이슈와 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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