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텔레그램으로 가난한 젊은층 유혹…간첩행위에 이용
우크라이나 출신 막심 레하(23)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5개월 전인 2021년 말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들어갔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는 슈퍼마켓 계산원으로도 일했지만, 좀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난해 초 텔레그램 광고를 통해 찾은 새로운 일은 처음에는 고속도로 지하도 등에 그라피티를 그리고 개당 7달러씩을 받는 일이었다.
안제이라는 사람과 소통하며 일을 시작한 레하는 곧 서방이 지원한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운반하는 철도를 따라 카메라를 설치하는 작업도 맡았다.
그러다 몇주 뒤 다른 15명과 함께 폴란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스파이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됐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레하의 사례처럼 러시아가 동유럽의 가난한 젊은이들 틈을 파고들어 스파이 행위에 이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과 오랜 기간 대립해온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첩보 역량을 높이기 위해 이제는 텔레그램과 같은 채팅 플랫폼으로 가난한 동유럽 젊은이들과 이민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안제이는 2022년부터 레하와 같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 간첩 행위를 하도록 사주해왔다.
이들이 제공한 정보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에 타격을 줬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서방 당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비밀창고로 향하는 무기와 탄약을 추적해내 드론과 유도미사일로 이를 타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이런 저비용, 저위험 접근법은 반서방 정서를 부추기고 잠재적으로 중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간첩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영국 경찰은 지난달 우크라이나와 관련 있는 창고를 불태우고 러시아가 사보타주(파괴 공작) 목표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로 5명을 체포했다.
영국 경찰은 지난해에는 군사시설을 감시한 혐의를 받은 불가리아 스파이도 체포한 바 있다.
몇주 전에는 독일 당국이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과 영상을 넘긴 혐의로 독일계 러시아인 두 명을 붙잡기도 했다.
안제이가 간첩행위를 하도록 포섭했던 젊은이 중에는 하키 선수 출신 20대와 벨라루스 유학생, 우크라이나에서 온 10대도 있었다.
WSJ는 안제이는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며, 그가 한 명인지 러시아 정보 당국의 여러 명이 안제이로 활동한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말 간첩 혐의로 체포돼 6년 형을 선고받은 레하는 안제이와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로 대화했었지만, 말투로 볼 때 우크라이나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레하는 WSJ에 자신이 하는 일이 러시아 정보당국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기는 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전과도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조국을 배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양심의 가책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음 주 항소심 첫 번째 심리를 앞둔 그는 “내가 한 일을 매우 후회한다”면서도 “나는 주동자가 아니며, 그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위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