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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도와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신앙을 해체하고 있어요

▲ 사진 : Dmytro-glazunov on Unsplash

“우리 딸이 믿음을 버리고 있어요. 우리와도 더 이상 말을 안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해를 끼치는 신학을 가지고 있어서 안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편지까지 썼어요. 부모로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프게도 이건 해체와 관련해서 듣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기독교 신앙의 해체와 관련해서 우리는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목회자들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그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어떻게든 그들과 다시 소통하고 연결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해체 이해하기

오늘날 문화에서 ‘해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해체하는 사람이 없으면 해체도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 해체는 하나같이 다 독특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 해체라는 단어가 없지만, 성경은 신앙 해체에 대해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성경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한다. 따라서 지금 해체 과정을 겪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맺고 싶다면, 성경이 그들을 묘사하는 다섯 가지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 하나님 형상의 소유자로서 해체자

믿음을 해체한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왜냐하면 그건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기 때문이다. 나이, 인종, 성별, 성적 매력, 사회 지위와 관계없이 해체자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창 1:27).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고 사랑, 존엄,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

2. 죄인으로서의 해체자

죄는 인간의 관계, 욕망, 감정, 심지어 믿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죄성이란 게 우리가 죄를 짓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냥 선반에 앉아서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지 않다. 죄성은 우리 곁을 떠나는 법이 없다. 따라서 해체는 결코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과정이 아니다. 좋든 싫든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의 행실을 죽이라”(롬 8:13)고 상기시킨다.

3. 구도자로서의 해체자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롬 2:6-8)

바울이 사람들을 자기 추구자와 진리 추구자의 두 그룹으로 분류한 것에 주목하라.

대제사장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하라”고 말했다(막 15:32). 그건 증거를 볼 수만 있다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을 보증할 만한 많은 증거를 이미 제시하셨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데에 있지 않았다. 그 모든 증거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4. 포로로서의 해체자

성경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의 뜻을 행하게”(딤후 2:26)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사탄이 사용하는 올무 중 하나가 속임수이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했다.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골 2:8)

안타깝게도 해체주의 온라인 공간에는 잘못된 생각이 많이 전파되고 있다. #deconstruction 및 #exvangelical 태그가 붙은 수십만 개의 게시물을 스크롤해 보라.

예를 들어, 한 해체론자는 “#EvangelicalismIsUnreformable, 이걸 어떤 식으로 파악하든지 어린이 희생이 세상을 구했다는 게 주된 믿음이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것은 기독교에 관한 완전한 오해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진리로 반응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의 허리띠”로 시작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엡 6:11, 14).

5. 반역자로서의 해체자

해체자 대다수가 거짓 사상의 포로인 반면에 일부는 단순히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롬 1:18)을 묘사한다. 이 사람들은 진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억압한다. 같은 편지 뒷부분에서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함이니라”(롬 8:7)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체는 자기 통치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주권자이신 주님께 무릎 꿇기를 거부한다. 하나님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들에게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느 한 솔직한 인스타그램 게시글은 해체를 이렇게 요약한다.

내가 해체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기대가 내 자존감, 내 선택 또는 내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정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지 않는다. 내게는 하나님도 사람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그냥 나만 있으면 된다.

해체자를 사랑하자

사랑하는 사람 중에 지금 해체의 과정을 겪는 이가 있다면, 일단 분류부터 해야 한다. 그게 바로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응급실에 몰려들 때 병원에서 하는 일이다. 의사는 각 부상을 평가하고 긴급한 순서대로 치료한다. 천공된 폐는 부러진 손목보다 더 먼저 치료를 받는다.

증거만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면, 그들이 마음을 바꿀 거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해체자들에게는 증거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다.

따라서 해체의 과정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긴급한 상황부터 먼저 대응해야 한다. 해체주의 공간에서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원죄, 형벌적 속죄, 지옥 교리 등)가 유해 것으로 치부된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안전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건 당신이 해체자의 삶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매우 짧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가장 긴급한 필요는 관계의 유지일 수도 있다.

일단 소통의 문이 열려 있다면 해체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해체자를 묘사하는 다양한 방식, 즉 형상 소유자, 죄인, 구도자, 포로, 반역자를 기억하라. 이 중에서 어떤 측면이 그로 하여금 해체를 주도하도록 하는지 분별하라. 해체자의 관점을 이해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결코 기도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 어떤 굳은 마음도 열어주실 수 있다. 기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관계를 추구하고, 복음의 아름다움을 실천하며, 기도에 시간을 쏟는 것이야말로 해체자를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소망을 가지라! 사도행전 16:14은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듣게 하셨다고 말한다. 루디아의 마음을 여신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똑같이 하실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Help! My Loved One Is Deconstructing

알리사 차일더스·팀 바넷 Alisa Childers·Tim Barnet | 알리사 차일더스는 싱어송라이터 가수이다. 동시에 변증가로 활약하며 alisachilders.com에 글을 쓰고 있다. 팀 바넷은 강사이자 Stand to Reason(STR) 강사이자 변증가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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