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령화로 의료수요 폭증…10년 후 입원일 45%·외래진료 13% 증가”
의협 “출생아 감소로 인구당 의사 수 급증…선진국들은 의사 수 확대 신중”
독일·영국 등 주요국, 고령화 대비 큰폭 의대 증원은 ‘사실’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된다는 같은 상황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증원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반대의 진단을 내리고 있다.
정부는 고령화에 의료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것을 큰 폭의 의대 증원에 대한 주요 근거로 삼고 있지만, 의료계는 인구 감소로 인구당 의사수가 급증해 오히려 의사가 남아도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양측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들이 고령화에 대비해 의사 수를 큰 폭으로 늘리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 치료받을 사람 급증하는데 의사 은퇴까지 늘어…“의사 부족, 예정된 미래”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22일 브리핑에서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와 은퇴하는 의사들 때문에 의사들이 부족하다”며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복지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35년 전체 인구의 입원일 총합은 2억50만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전체 인구의 입원일(1억3천800만일)과 비교하면 45.3% 늘어나는 셈이다.
이 기간에 병원 외래 방문일도 9억3천만일에서 10억6천만일로 12.8%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소득이 늘수록 의료 소비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소득 탄력성’이라는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인구 고령화 하나만으로 의료 이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통계청 추계를 보면 2035년 국내 80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2년보다 82.7% 급증할 전망이다.
건강검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는 것도 의료 이용 증가를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검진에 투입되는 재정은 2013년 1조9천286억원에서 2022년 3조8천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박 차관은 이날도 이런 통계를 다시 언급하며 “고령인구의 증가로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예정된 미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변수 외에도 의사의 근로시간 감소나 고령의사의 증가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평균 근무시간 80시간 상한 적용으로 전공의 주당 근로시간은 2016년 92시간에서 2022년 78시간으로 6년 새 14시간 줄었다. 의사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도 2007년 54.5시간에서 2020년 48.1시간으로 6시간가량 줄었다.
70세 이상 의사는 2035년 의사 10명 중 2명꼴로 지금의 3배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박 차관은 “의사단체가 전년 대비 의사 수 증가율을 2.84%(2010∼2020년 평균 증가율)로 잡고 있지만, 의사의 고령화로 은퇴의사 수가 크게 증가하는 최근 경향을 보면 증가율은 1.67%까지 낮아진다”며 “베이비부머 세대 의사와 졸업정원제를 적용받은 의사들이 대거 은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0년대에는 81학번부터 86학번까지 ‘졸업정원제’를 하면서 30%의 학생을 더 선발한 적이 있다. 이들이 대거 은퇴한다는 얘기다.
◇ 의협 “의대정원 그냥둬도 출생수 감소로 1인당 의사수 급증”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급격한 출산율 감소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20일 TV 토론에서 “수험생이 100만명일 때 의대 증원과 25만명일 때의 증원은 다르다”며 “(의대 정원을) 그냥 둬도 출생 수가 감소해서 의사 수 증가 폭이 30∼40%로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우리나라의 15세 미만 인구는 23년간 400만명가량 줄어든 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숫자는 2천900명이 늘어났다”며 “그런데도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필수의료 위기 문제가 의사 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2010∼2020년의 평균 의사 증가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래 인구수를 바탕으로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를 산출해보면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고 현행으로 유지해도 2063년이면 OECD 평균을 앞지르고, 1천명을 증원하면 2055년에 평균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의협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에 대해서도 “의사 수 증가는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OECD 국가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령화를 일찍이 겪은 일본의 사례를 들고 있다.
우 원장은 “일본은 지속적인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2034년께에는 의료비와 돌봄비를 합산한 총 의료·돌봄(의료·개호) 비용이 3천564억달러로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에 더 이상의 의사 수 증원은 필요치 않다고 보고 2022년 이후 의대 정원 축소를 위한 ‘의사 양성 인원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스·독일·영국 등 고령화 대비 의사 늘려…영국, 한국의 5배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가 클지, 저출산으로 인한 의료 수요 감소가 더 클지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같은 저출산·고령화를 겪는 해외 다른 나라들이 의사 수를 늘려 이에 대비하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보다 인구가 다소 많은 독일(8천317만명)의 경우 공립 의과대학의 총정원이 9천명을 넘지만, 이를 1만5천명가량으로 늘리기로 했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6천708만명)은 2020년에 의대 42곳에서 모두 8천639명을 뽑았는데, 이를 2031년까지 1만5천명으로 늘린다.
독일과 영국의 의대 정원이 현재 한국의 의대 정원보다 5배 수준으로 많은 셈이다.
프랑스의 경우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2021년 풀었고, 일본은 지난 10년간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 수를 4만3천명가량 늘렸다.
이렇게 의사 수를 늘리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의대 증원에 반대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사협회는 복지부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할 당시 의사 수 부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협회에서도 반대는 없었으며, 지역 틀로 선발했던 것도 의사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토마스 슈테펜 독일 연방보건부 차관은 지난해 이기일 복지부 차관·한국 기자단과의 면담에서 “독일의 의대 정원 또한 충분치 않아 연내 5천명 이상을 증원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독일에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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