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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한 이후 계속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채널 TIMES NOW 캡처

데니슨포럼은 팟케스트를 통해 “이스라엘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비판 이론을 근거로 설명했다. 이에 대한 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비판 이론이 중동의 분쟁과 충돌할 때

이스라엘-가자 지구 국경에서 벌어지는 참혹하고 비극적인 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많은 친(親)팔레스타인 단체들은 하마스가 억압적인 이스라엘 정권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역사는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간의 역학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 이론의 관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이 사실일까? “압제자” 이스라엘이 전쟁 발발에 대한 책임이 있을까?

투쟁에 대한 권리

비판 이론은 모든 것을 사회학, 즉 사회와 경제에 기반을 둔다고 믿었던 칼 마르크스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경제학적 맥락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만약 당신이 다수에 속한다면, 당신은 소수를 억압함으로써 다수에 도달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아직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당신보다 앞서 가던 압제자들이 당신의 현재를 위한 길을 열어준 셈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속담에 나오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른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넘어섰다는 뜻이고, 만약 당신이 이미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랐다면, 당신 이전에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갔다는 뜻이다.

따라서 억압받는 사람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억압하는 사람에 대해 투쟁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탈식민화에 대한 요구

이러한 움직임은 탈식민화라는 점점 더 대중적인 요구로 이어진다.

친(親)팔레스타인 단체들은 이 지역이 과거 팔레스타인과 아랍인의 소유였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탈식민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탈식민화는 하마스의 목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탈식민화를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역사의 어느 시점을 첫 번째 식민지로 정의할 것인가? 여호수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탈식민화를 해야 할까?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여호수아 시대 이전의 가나안 사람들로 탈식민화할까? 어느 시점에서 탈식민지화를 중단해야 할까? 그리고 그 결정은 누가 내릴까?

이것이 바로 탈식민화 접근법의 비논리이다.

믿어서는 안 되는 진실

이러한 사고는 “내 진리 외에는 진실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현대 문화에 널리 퍼져 있기에 놀랍지 않다. 세상은 종종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점점 더 많이) “당신은 당신의 신념에 대한 권리가 없지만, 나는 당신에게 내 신념을 강요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반(反)유대주의의 바탕이 되어 왔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포기는 대학 캠퍼스와 일부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 활동의 배후에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견주어 하마스가 잘못이 없다고 믿도록 너무 많은 사람을 속여 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이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 완전한 악 그 자체”이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차이점

이스라엘의 전쟁은 도덕적으로 동등한 전쟁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일부 사람들은 “하마스가 오늘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가 올 것이고, 우리가 오늘 무기를 내려놓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전쟁 당사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서 전혀 잘못이 없지도, 완벽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정계의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경력과 지위를 높이거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적개심을 이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압제자이고 팔레스타인은 압제를 받는 자라는 식의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억지스러우며 비논리적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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