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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사도 베드로(1): 이름의 의미

▲ 기독교 교회의 창립자이자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인 사도 베드로. 사진: 유튜브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 - National Geographic Korea 캡처

성화의 과정은 결코 평행선을 그리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길로 항상 물결치듯이 움직인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더욱 많이 맺겠지만, 우리들의 지난 삶의 죄악은 때때로 추악한 머리를 가끔 들이댄다. 그리고 그 성경은 사도 베드로의 삶의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더욱더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신약 성경은 열두 사도의 명단이 네 번 등장한다. 마태복음 10:2-4, 마가복음 3:16-19, 누가복음 6:13-16 그리고 사도행전 1:13이다. 네 곳에 등장하는 열 두 명의 이름의 순서는 눈에 띄게 비슷하다. 네 곳의 명단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름은 대변인이며 전반적으로 그룹의 리더였던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눅 6:14)이었다.

주님이 그에게 다른 이름을 주신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그의 옛 이름을 고치어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니다. 그는 “또한” 그를 베드로라 불렀다. 이 제자는 때로는 시몬이라고 불리었고, 때로는 베드로라 불리었고, 또 때로는 시몬 베드로라 불리었다. 

 “베드로”는 일종의 별명이었다. 그 의미는 “반석”(petro 는 “반석 돌, 돌”이라는 헬라 단어이다.)이다. 별명은 특별한 것이었고 주님이 그것을 택하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시몬의 성격은 성급하고,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었고,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입을 여는 버릇을 가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흔히 그를 발 모양을 한 입을 가진 사도라고 말해 왔다. 그는 그가 지킬 수 없는 중요한 약속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전심으로 무언가에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는 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대체로 처음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었지만, 거의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그를 만났을 때, 베드로는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었고,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었다(약 1:8). 예수님은 시몬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 별명으로 자신이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계속해서 되돌아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각부터 예수님이 그를 어떻게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에게 은연중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시몬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베드로가 자신의 옛날 모습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그를 베드로(반석)라 부른다면, 그것은 그가 마땅히 행할 길 대로 행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주님께서는 두 가지 이름을 사용하시어서 그를 부드럽게 꾸짖거나 칭찬하실 수 있으셨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시몬 베드로를 만나신 이후로, 시몬이라는 이름이 정기적으로 그에게 붙여진 두 개의 다른 상황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세속적이 상황이다. 

예를 들어 성경이 그의 집에 대해서 말할 때 대개 “시몬의 집”(막 1:29; 눅 4:38; 행 10:17)이라고 말한다. 그의 장모에 대해서 말할 때, 비슷하게 “시몬의 장모”(막 1:30; 눅 4:38)라 말한다. 누가복음 5장은 고기를 잡는 일에 대해,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눅5:3)고 언급한다. 그리고 누가는 야고보와 요한이 “시몬의 동업자”(눅5:10)였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모든 표현은 세속적인 상황에서 시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가 시몬이라고 그의 옛 이름으로 불렸을 때는 그의 영성이나 성품과 관계없이 그의 일, 그의 집, 혹은 그의 가정생활 등의 경우에서였다. 이러한 것들은 “시몬의 것”들이라 불렸던 것이다.

그가 시몬으로 불린 두 번째는 그가 회개하지 아니한 자로서의 특징을 나타낼 때마다 즉 말이나 태도 또는 행동으로 죄를 지었을 때였다. 그가 자기 자신의 예전의 모습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마다 예수와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의 옛 이름인 시몬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5장 5절에서 누가는 시몬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말한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러한 태도를 가졌던 젊은 어부 시몬이었다. 그는 회의적이고 마지못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순종하고 그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기 시작하자 누가는 그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8절은 이렇게 말한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그의 삶 속에서 중요한 실패를 했을 때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배신 할 것을 예언하시면서 누가복음 22장 31절에서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겟세마네에서 깨어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지켜 보고 있어야 할 시간에 그는 잠이 들었다. 마가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막 14:37~38)

이처럼 예수님은 보통 베드로에게 책망이나 훈계가 필요했을 때 시몬이라고 불렀다. 주님께서 “시몬”이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베드로는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제발 ‘반석(베드로)’이라고 불러주세요!”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네가 반석(베드로)처럼 행동할 때 나는 반석(베드로)이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대답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복음서를 통해서 보면 사도 요한이 베드로를 매우 잘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평생 친구였고, 직장 동료 및 이웃이었다. 흥미롭게도,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친구를 15번이나 “시몬 베드로”라고 불렀다. 요한은 베드로의 양면을 끊임없이 보았기 때문에 어떤 이름을 사용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두 이름을 같이 불렀다. 

실제로, “시몬 베드로”는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에서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벧후 1 : 1). 사실상, 그는 예수님께서 불러 준 별명을 자신의 성으로 삼았다(참조, 행 10:32).

부활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돌아오라고 지시하셨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시려고 계획하셨다(마28:7). 참을성이 없는 시몬은 분명히 기다리는 데 지쳐서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요 21:3). 평소와 같이 다른 제자들도 충실하게 그들의 리더를 따랐다. 그들은 배에 올라서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음 날 아침 해안가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다. 아침 식사 모임의 주된 목적은 베드로의 회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물론, 베드로가 주님께서 고난 겪으시던 날 밤에 저주의 말로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심하게 죄를 지었던 일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그를 시몬이라고 부르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17) 

베드로는 자신의 사랑을 세 번 확인했다. 그것이 예수께서 그를 마지막으로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이었다. 몇 주일 후에 오순절에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했다. 그날 일어나서 전파 한 사람은 반석,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육신과 영적 면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과 똑같았다. 그는 때때로 육의 습관에 굴복했다. 그는 다른 때에 성령 충만했다. 그는 때때로 죄를 지었지만, 또 다른 때는 의로운 사람이 행동해야 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이 우유부단한 사람 — 때로는 시몬, 때로는 베드로-가 이 열두 사람의 지도자였다.

우리는 시몬 베드로가 사도들의 지도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그의 이름이 열두 명의 모든 목록의 앞에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마태복음 10:2에 대한 다음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본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 구절에서 “첫 번째(영어 성경은 first라고 번역됨)”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 용어이다. 그 단어는 목록에서 첫 번째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지도자, 최고라는 의미이다. 

베드로의 지도력은 그가 전체 그룹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항상 맨 앞에 서 있었고 그룹을 리드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지배적인 성품을 가진 것처럼 보였으며, 주님은 그것을 열두 명의 사람들 가운데서 잘 활용하셨다.

결국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것은 주님이었다. 베드로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주권적 설계로 만들어져서 갖추어졌다. 더욱이, 그리스도 자신도 베드로가 지도자가 되도록 깎고 훈련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를 볼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도자를 세우시는지 알게 된다.

베드로의 이름은 예수를 제외한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복음에 많이 언급된다. 아무도 베드로만큼 자주 말하지 않으며, 아무도 베드로 만큼 주님과 자주 말한 사람이 없다. 아무도 베드로만큼 주님의 책망을 들은 사람이 없다. 그리고 베드로 외에 어떤 제자도 주님을 책망한 제자는 없다(마 16:22). 누구도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고백하거나 주님의 주권을 아주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또 한편, 누구도 베드로처럼 강력하고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입으로 부인한 적이 없다. 아무도 베드로처럼 그리스도의 찬양과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사탄이라고 부른 유일한 사람이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보다 더 가혹한 말을 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그리스도께서 원했던 지도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나님께서는 불안정하고, 우유부단하고, 충동적이고, 순종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를 반석과 같은 지도자로 삼으셨다. 그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고, 모든 면에서 교회가 탄생했던 사도행전의 첫  열 두 장의 지배적인 인물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셨다. 

우리는 베드로의 삶에서 참된 지도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세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 첫 번째로 ‘올바른 원자재’에 대해서 다음번에 살펴볼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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