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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존경하는 목사님이 추락했을 때

사진: Annie Spratt on Unsplash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매주 강대상에 서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는 차원이 다르다.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했고, 내 결혼식 주례까지 한 존경하는 목사님이 알고 보니 그간 여러 교인을 영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교회 축구팀을 후원하고 종종 같이 공까지 차며 우리를 돌보던 중고등부 목사님이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아내와 가족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목사에 대한 기억이 더럽혀지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그 목사가 그동안 내게 행한 선과 그가 다른 이에게 행한 악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도덕적으로 실패한 목사 또는 교회 지도자를 만날 때 교인은 보통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 먼저 목사의 실패를 아예 부인하거나 변명한다. “그분이 지난 세월 교회에 끼친 은혜가 얼마나 큰데, 그게 사실일 리가 없잖아? 말이 돼?” 아니면, 아예 사역 전부를 불신하는 경우이다. 달리 말해서, 지난 세월 그 목사의 설교 외 삶에서 배운 모든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이런 양극단의 태도를 피하려면 적절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은혜를 끼치는 목사라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그게 사역의 모든 열매를 다 허사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긴장 유지

성경에는 엄청난 실패를 겪었으면서도 선을 향한 하나님의 쓰임에서 제외되지 않은 사람과 지도자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친숙한 사례이다. 

아브라함은 주님을 믿고 고향을 버리고 미지의 땅으로 간 사람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부활의 권능을 온전히 믿으며 아들까지 제물로 드린 믿음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는 두 번이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했으며,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자는 사라의 나쁜 계획에 동조했다(창 12:12-1416:2-420:2).

모세는 또 어떤가?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낸 인물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십계명까지 맡기셨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난 직후에 그는 불신앙으로 물을 내겠다며 반석을 내리쳤다(출 20민 20:10-13).

그 외에도 결함으로 가득한 다른 사람과 함께 이름이 거론된 이 둘에 관해서 히브리서 11장이 칭찬하는 게 무엇인가?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때때로 실패했지만, 그들은 순종함으로 주님께 돌아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이 그들의 실패로 인해서 무력해지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회 지도자가 저지르는 죄가 무죄 판결이라는 프리패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헤어졌고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죄의 결과는 심각하고 고통스럽다. 목사의 경우 진정한 회개와 화해가 이뤄질 때까지, 그리고 교회 권징이 온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아예 목사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더라도, 온전한 사역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또는 사역 복귀라는 시도 자체가 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목사의 추락이라는 충격 속에 남겨진 우리에게 이 모든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때 사랑하고 존경했던 교회 지도자가 더 이상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본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슬픈 현실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다른 교회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그들을 통해서 주신 모든 은혜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깨어진 교회를 놓고 주님께 상처와 실망, 심지어 분노를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통해서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자세가 의미하는 것이다(벧전 5:7). 목사의 추락이 초래한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원망의 쓴 뿌리라는 죄가 나를 파괴하도록 놔둬서도 안 된다. 대신 말씀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 히브리서 12:1-2은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경주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교회 지도자의 죄와 연약함이라는 장애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의 실패를 통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내 속에 깊이 뿌리박은 죄성을 삶에서 떼어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억하자. 

오로지 예수님만이 완벽한 삶을 사셨다. 이 세상에서 만나는 지도자의 실패를 볼 때마다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그분만이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시다. 지도자가 가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다 균형감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붙잡을 가치가 있는 유일한 분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When a Beloved Pastor Falls

한나 디 클린 Hannah De Cleene | 한나 디 클린(MATS Midwestern Seminary)은 작가이며, Saylorville Church에서 상담 사역을 한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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