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 (3)
인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자비의 대명사가 바로 마더 테레사 수녀다. 테레사 수녀는 1950년 인도 캘커타에서 사랑의선교회를 1950년 설립한 후 45년간 빈민, 병자,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였고, 197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테레사 수녀에게 인간은 모두 동등하고 소중한 대상이었다.
UN(국제연합)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을 때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피부색도, 아무 종교도, 아무 국적도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다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모든 인류를 아무 차별 없이 진심으로 대했다는 점에서 테레사 수녀는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귀한 선행을 하면서 예수를 얼마나 드러냈을까?
테레사 수녀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며 죽어가는 병자들을 임종 순간까지 보살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죽어가는 자들에게 말할 필요를 인정하지 않았다. 테레사 수녀는 대부분 힌두 신(神)을 믿는 그들이 병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다른 종교인 기독교의 신에 대해 들어야 하는 부담을 갖지 않도록 그들을 배려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죽어갈 때에는 그들이 붙잡는 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임종을 지켜주었다.
마더 테레사는 항상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종교의 전례에 따라 평화롭고 아름답게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에게는 갠지스 강의 물로 입술올 축여주었고, 회교도들(무슬림들)에게는 코란을 읽어주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병자성사를 해주었다.
물론 개종을 전제로 구제와 봉사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기독교적인 정신도 아니다. 그러나 평생 예수를 믿올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그들에게 병 치료받는 기간 동안 예수를 전하는 것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었올까? 테레사 수녀의 이러한 모습은 결국 그녀의 사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평소에 더 나은 힌두, 더 나은 무슬림, 더 나은 가톨릭,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그 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선교회를 처음 시작한 곳은 인도 캘커타에서 가장 중요한 힌두교 성지인 칼리 사원 경내의 허름한 방이었다. 그녀는 우상을 섬기는 그곳이 죽어가는 자들에게 적합한 장소라고 여겼는데, 그 이유는 대다수가 힌두교도인 그 사람들이 마지막 임종 순간에 칼리 여신의 품 안에 안겨 죽기를 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종교를 사랑하며, 만물이 곧 하나님이며,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신은 결국 동일한 신이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마더 테레사에게 있어 개종(改宗)이란 이방 신을 버리고 참 신이신 하나님올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개종은 자기 신을 더 열심히 믿어 더 신실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 종교이건 어느 신이건 상관없이 자기 신을 잘 믿어 개선(改善)되고 개량(改良)되는 것이 테레사 수녀가 생각하는 개종이었다.
나는 우리와 함께 있다가 죽은 사람들은 모두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진정한 성인들이다. 그들은 이미 모두 하느님 앞에 있올 것이다.[1]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선교회에서 죽음올 맞이한 모든 사람들이 천국행 입장권을 갖고 세상을 떠났다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말한다. 그들의 모든 죄가 이미 용서됐기 때문이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이 이방 신을 믿다가 죽은 자들에게도 적용된다고 그녀는 믿었다.
힌두교인이 80퍼센트가 넘는 인도 땅에서 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명백히 범신론(汎神論)이며[2]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다.[3] 다른 종교도 결국 기독교의 신과 같은 신에게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테레사 수녀는 말하고 있다. 물론 그녀의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마하트마 간디 역시 그런 생각음 가지고 있었다. 간디의 말을 살펴보자.
만약 우리가 힌두라면 기독교인이 힌두교로 개종하기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슬림이라면 힌두나 기독교인이 무슬림으로 개종하기를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개종해야 한다고 남몰래 기도해서도 안됩니다. 오로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힌두는 더 나은 힌두가 되고, 무슬림은 더 나은 무슬림이 되고,기독교인은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야 말로 연대감의 가장 근본이 되는 진리입니다.[4]
간디의 말은 테레사 수녀의 말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가장 존경받는 박애주의자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동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기독교의 정수(精髓)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의 구원자 되심을 전하지는 않지만 대신 예수의 사랑을 전하였으므로 테레사의 행적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으로써 생명이신 예수를 증거 하라고 교회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사랑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예수가 목적이어야 한다. 예수를 전하기 위해 기독교인은 목숨까지도 던지는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런데 테레사는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말로써 증거 하기를 거부했으니 이는 틀림없이 아쉬움을 넘어 문제가 있는 태도다. 무조건적인 선행을 향한 테레사 수녀의 태도는 존귀한 것이지만 이러한 선의지(善意志)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장차 있을 죽음올 위해 미리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작성한 다음의 글을 보면, 법정 스님 역시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혼히 누구읍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歸依)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으니까. (중략)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음 빌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올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없을 것 같다.[5]
결국 이것이다. 법정 스님, 마하트마 간디, 마더 테레사 그리고 슈바이처는 모두 박애주의자였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선행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다. 세상 종교가 추구하는 바가 같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와 상관이 없었다.<계속>
[1] 호세 루이스 곤살레스 바랄도, <마더 테레사 자서전>, 민음인, 168쪽
[2] pantheism, 우주普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것을 신으로 보는 교리. 즉 신이란 없고 그 대신 현존하는 우주 안에 나타나 있는 실재•힘•이법(理녀)등의 총합이 있옵 뿐이라는 교리다. 만유내재신론(神論內在神論 pancmhcism)과 비숫하다.
[3] religious pluralism, 절대 진리를 가진 종교는 없다는 상대주의 적 종교관이다. 모든 종교가 결국 통한다는 사상으로 일종의 종교혼합주의다.
[4] 비네이 랄, <힌두교>, 김영사, 129쪽
[5] 법정, <무소유>, 범우사, 81-82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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