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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카타리나 폰 보라: 진정한 자유를 누린 여인

▲ 카타리나 폰 보라의 초상화(1526년). wikipedia.org

1500년대에 독일에서 여자의 인생은 말 그대로 보호자가 결정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도 그들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리는 법적 보호자가 필요했다. 아버지나 형제, 남편이 없을 경우, 지방 자치 단체에서 오늘날 정부가 고아에게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보호자를 임명했다. 여자는 보호자 허락 없이는 결혼하거나, 직장을 갖거나, 재산을 소유하거나, 심지어 자녀에 대한 법적 권리도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이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 삶의 배경이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자기 소유의 재산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도 구혼자를 거부한 그녀의 결정이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이다. 그녀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신실함이 결혼이냐 독신이냐에 달린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와 자유를 얼마나 굳게 붙잡는가에 달렸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수녀원 생활

카타리나 “케이티” 폰 보라는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다섯 살 때 수녀원 학교로 보내졌다. 그곳은 살기에 나쁘지 않았고,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하지만 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망했고 그녀는 수녀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녀원은 가족에게 지참금을 요구했다. 수녀원에서 평생 먹여 살리는 데 대한 일종의 “기부금”이었다. 그러나 무일푼의 아버지는 돈이 없었고, 결국 카타리나는 지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자선 수녀원에 들어갔다.

열여섯 살, 카타리나도 서약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결혼도 할 수 없었고,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망해버린 아버지로 인해서 이미 결정된 게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녀에게 다른 합법적인 선택지는 없었다. 게다가,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수녀원에서 도망치는 수녀는 사형에 처해졌다.

수녀원은 조용했다. 대화와 우정은 아예 금지되었다. 외부 세계, 심지어 가족과의 접촉도 금지되었다. 목소리는 오로지 기도나 예배에만 사용해야 했다.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영적 능력으로 인정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수녀원 여성들은 하루에 고작해야 1,000칼로리로 연명했고, 가끔씩 먹는 생선 외에 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자는 게 허용되었다. 말 그대로 생각지도 못한 학대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진짜 자유를 위한 탈출

1520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모두의 주인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았지만 가장 충실한 모두의 종이다”라고 썼다. 이 역설은 그리스도인 자유에 대한 루터 비전의 핵심이었다. 당신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로지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당신은 모든 이웃에게 의무를 다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1521년 루터는 그리스도인 자유 교리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자유롭게 받아들여진다면, 누군가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조종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논문 “수도사 서약에 관하여”에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서약을 강요받은 수도원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수도원을 떠날 자유가 있다고 선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도원을 떠나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일자리를 구하거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수도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녀는 상황이 달랐다. 수도사와 똑같은 모험을 하는 데에 최소한 몇 년이 걸렸다. 설혹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믿는 지역으로 탈출해서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해도, 여자들은 여전히 ​​보호자가 필요했다.

케이티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녀는 루터의 집 앞에 빈털터리로, 보호자 없이, 그리고 몸에 온 하나만 걸친 채 나타난 열두 명의 탈출 수녀 중 한 명이었다. 루터는 그 수녀들의 가족에게 다 편지를 썼지만, 아무도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루터는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 거북한 상황을 맞은 이 대학교수는 은혜의 옹호자답게 중매 사업을 시작했다.

큰 기대와 함께 혼자 남은 수녀

루터는 케이티를 제롬 바움가트너라는 남자와 선을 보게 했다. 그들은 금세 사랑에 빠져 결혼 계획에 돌입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바움가트너가 일 년 남짓한 기간 내내 케이티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루터는 케이티를 대신하여 여러 번 편지를 썼고, 결국 바움가트너의 부모가 아들을 유력한 가문의 부유한 열네 살 소녀와 결혼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케이티를 “노처녀”라고 불렀고, 무엇보다 빈털터리 스물네 살의 도망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탈출한 다른 수녀들은 모두 다 좋은 남편감을 찾아서 결혼에 성공했다. 남은 건 약혼이 무산된 케이티 한 명이었다. 루터는 이 “남은 수녀”에게 어울리는 다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케이티는 루터조차도 쉽게 다룰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강한 의견 표명과 굳건한 의지로 유명했다. 수녀원을 떠나서 마침내 자유롭게 말을 하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녀가 머물렀던 집은 부유한 크라나흐 가문이었고, 그들은 그녀를 딸처럼 대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고 스웨덴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과 같은 손님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크리스티안은 비텐베르크에서 종교개혁 교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케이티에게 구애가 가능하다고 루터가 찾아낸 유일한 사람이 카스파 글라츠 목사였다. 그는 돈과 칭찬에 인색한 심술궂은 사람이었다. 케이티는 단박에 그 남자의 정체를 알아채고 거부했다. 루터의 친구이자 동료인 니콜라우스 폰 암스도르프는 케이티에게 거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며 설득하려고 했지만, 케이티는 독신으로 사는 데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수녀원이라는 감옥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였던 만큼 존경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함으로 또 다른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어떤 남자가 당신의 기대 수준을 부응할 수 있겠냐는 암스도르프의 질문에 케이티는 그와 루터 둘 중 한 사람이면 결혼하겠다고 대답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악마를 멸시하라

케이티는 기독교적 자유의 핵심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유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건 사람이 두려워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케이티는 바로 그 역설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

암스도르프는 편리하게도 자기 이름을 쏙 빼고 루터에게 케이티가 루터하고만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루터는 암스도르프의 제안을 고려했다. 그리고는 만약에 자신이 결혼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가 이미 결혼시킨 다른 수녀 중 한 명인 에바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예쁘고 상냥한 여자였다. “하지만 케이티라니, 글쎄요….” 케이티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케이티는 루터가 원한 첫 번째 선택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시집 못 가서 남겨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루터는 기도했고, 케이티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결혼은 루터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품고 있던 원한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정치적, 신학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즉, 수도사와 수녀가 얼마든지 결혼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루터가 결혼은 모든 기독교적 자유에 반대하는 “악마를 멸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루터와 케이티,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다. 신성로마제국에서도 소문난 고집 센 두 사람은 서로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완고함은 같은 방향을 향했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보내는 루터의 편지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고백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케이티가 루터의 사역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했던 친구들의 걱정과는 달리, 루터는 케이티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짐을 덜어주었다. 그들의 결혼은 서로를 포함한 이웃을 섬기는 존중과 자유에 기반을 두었다.

말씀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우리는 케이티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녀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자신에게도 적용된다고 확실하게 믿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녀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모든 이의 주인”이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누구와 결혼하라고 명령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결혼이 의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서 유명인 루터의 아내가 된 그녀는 교회의 생존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었는지 사람들이 반복해서 남편에게 묻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면 루터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모든 것을 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함께 붙잡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만 제대로 알면, 우리는 영적으로 뭔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두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루터와 결혼함으로써 케이티는 흑사병 기간 동안 집을 병원으로 사용했고, 고아를 받아들였으며, 전 세계의 고위 인사와 학자들을 접대하는 한편, 남편에게 가장 큰 격려자가 되는 위치를 선택했다. 그녀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 안에서 헌신하는 삶이었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Katharina von Bora: A Perfectly Free Christian Single

그레첸 론네빅 (Gretchen Ronnevik) | 작가이자 강연가이다. 지은 책으로는 Ragged: Spiritual Disciplines for the Spiritually Exhausted (1517 Publishing, 2021)와 The Story of Katie Luther: The Nun Who Escaped to True Freedom (Crossway, December 2024)이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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