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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칼럼] 95세 버마 카렌 선교사 자녀, 알리데이 목사

사진: 오영철 제공

“저의 아버지는 선교사였습니다.”

95세 알리데이 목사의 고백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선교 역사 가운데 ‘선교사 자녀’라는 독특한 존재를 생각한다.

알리데이 목사는 태국 카렌 침례총회의 역사를 초기부터 깊게 경험한 분이시다. 1952년부터 목회를 하였고 카렌총회가 세워지는데 일조한 분이다.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 95세인데 기억력은 여전히 좋은 편이시다. 그분이 떠나시면 소중한 역사의 증언들이 사라질 것이다. 마침 카렌총회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서 몇 가지 확인할 내용들이 있어서 일부러 찾아 뵈었다.

책을 쓰면서 확인하고 싶은 내용들에 대해 목격자와 참여자로서 말씀했다. 그동안 궁금한 내용들도 설명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중 버마 카렌교회가 태국에 파송한 선교사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1880년부터 2차 세계 대전 전까지 모두 2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참 대단한 헌신들이다.

그중 한 분에 대한 설명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위너 목사. 그는 1916년에 태국에 선교사로 도착했다. 1947년 소천하기까지 다양한 사역을 하셨다. 그에게 5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가 셋째라고 한다.

갑자기 알리데이 목사와 동질감을 느낀다. ‘선교사 가족’이라는 동질감이다. 그 분도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MK(Missionary Kid/선교사 자녀)이기 때문이다. 버마의 카렌족 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하기 위해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 중에 한 분이 그의 아버지이다.

그분은 자신이 ‘선교사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의 대답에서 알 수 있었다. 초기 서양 선교사와 후발주자 한국인 선교사에 대한 차이점에 대한 현지 지도자의 의견이 궁금해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 달랐다. 그는 버마에서 온 카렌 선교사를 초기 선교사로 보고 서양 선교사를 후기로 비교하여 대답했다. 한국 선교사는 그 후의 또 다른 선교사로 구분했다. 그의 아버지는 초기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자신이 선교사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주위에 많은 동, 서양 선교사 자녀들을 본다. 선교사들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노력한다. 치앙마이의 경우 대부분 국제학교나 이중 언어학교를 졸업하였거나 다니고 있다. 교육적인 면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선교사 자녀였던 알리데이 목사는 그에 비하면 혜택이라고 하기에 너무 척박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길이 없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선교사 자녀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궁핍하였던 삶이었음은 그가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발자취에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가 선교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선교사로 오기 전에 이미 이곳에 선교사를 부르시고 사역케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 서양선교사가 오기 전에 카렌선교사를 부르셨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역을 감당했다. 위너 선교사는 총각으로 왔다가 태국에서 부인을 만나서 결혼했다. 그리고 1947년 주님나라에 갈 때까지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다. 31년을 타국에서 살다가 영원한 본향으로 갔다. 그 사이 5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태어났다.

위너 목사의 자녀들을 선교사의 자녀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선교사 자녀이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이나 누림도 거의 없었다. 당시 미국의 선교사 자녀와는 달라도 참 다른 선교사 자녀의 길이다. 초등학교 4학년을 졸업한 것이 전부이다. 신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 한국의 선교사 자녀들의 혜택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같은 선교사 자녀들의 모습이 참 대조적이다.

알리데이 목사는 그런 혜택과 누림이 없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부르신 삶의 자리를 잘 감당했다. 1952년부터 목회자로 성도들을 돌보았다. 이후 목회자로 18년을 섬겼다. 지방회 의장으로 16년을 섬겼고, 지방회 총무로 8년을 돌보았다. 카렌 침례총회가 조직되는데 함께 하였고 두 개의 지방회가 세워지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더 교육을 받았다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더 풍족한 조건이라고 해서 더 많은 유익을 남기지 않는다. 척박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남긴 사람이 있다. 알리데이 목사가 그런 분이다.

96세를 앞 둔 그의 육체는 허약해졌다. 그렇지만 그가 이룬 여러 일들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자녀들 또한 믿음의 자녀로 잘 자라났다. 신앙의 유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참 존경스럽고 부러운 삶을 살아온 선교사 자녀이다. 나의 자녀들을 생각한다. 알리데이 목사와 같은 선교사 자녀들이다.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척박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살아오신 ‘선교사 자녀’ 알리데이 목사가 더 크게 보인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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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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