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이슬람(16)
“그들의 옷 단추 하나라도 넘겨주는 일이 없을 것이다.”
북이라크 쿠르드 지역 리더인 바르자니(Mesut Barzani)의 과거 발언이 터키 정부를 향한 쿠르드인들의 만만치 않은 항전을 예상케 한다. 최근 터키군은 전투기와 무장 헬기 그리고, 탱크까지 동원해서 동쪽 주변국인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지대의 쿠르드 반군 기지를 자주 공격하고 있다. 터키 국내에서 지속해서 활동하는 쿠르드 반군이 주변국으로 숨어 들어가는 일이 계속되자 최근 터키 정부는 주변국을 향해 터키군의 월경도 불사하겠다고 선전포고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북쪽 쿠르드 민족에게 약속한 자치지역의 인정에 대해 터키 정부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주변 아랍 민족과 이란의 입장도 그리 달갑지 않다. 반세기 동안 줄곧 터키의 동부를 중심으로 계속되어 온 쿠르드 반군의 활동과 이를 저지하려는 터키 공화국의 끊임없는 진압 노력으로 터키의 경제와 정치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 터키 정부는 북이라크 내 쿠르드인들의 자치정부 인정을 쌍수를 들고 반대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터키의 대 쿠르드 강경책과 미국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지금 중동에는 새로운 먹구름이 번지고 있으며, 또 하나의 전쟁으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차라리, 터키로서는 터키 땅도 아닌 북이라크 지역에 쿠르드 자치정부를 인정하는 것이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쿠르드 사태를 끝내는 최선의 길처럼 보이는데, 터키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제2의 팔레스타인 분쟁
현재 터키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쿠르드 문제는 제2의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국가 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남의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사람들이 아랍인으로 광범한 민족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고 다른 아랍 국가의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쿠르드 민족은 그들과는 또 다른 외톨이 민족이다.
쿠르드 민족은 무슬림이지만 민족적 이질감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중동의 어느 이슬람 국가도 이들을 보호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쿠르드 민족은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에 동화되기보다 분리 독립을 추구하면서 조직적 무장 폭동과 테러의 모양으로 나서고 있어서 해당 국가의 손가락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쿠르드 민족은 국경을 넘어 외부로부터 지원 세력과 거점을 확보하고 있어서 쿠르드 분쟁은 국제 이슈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쿠르드 민족은 중동 지역 정세의 최대 불안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오랜 쿠르드 분쟁으로 이미 대규모 인명 피해와 난민이 발생하고 있어서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쿠르드 분쟁이 계속 악화하면 유엔의 인도주의 활동에 함께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쿠르드 분쟁의 배경과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쿠르드, 그들은 누구인가?
쿠르드 사람들에게는 ‘산 외에 친구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20세기 내내 영국, 미국, 이란, 이라크, 터키 등에 이용당하며 살아온 쿠르드인들에게 이것은 그들이 죽음을 피해 산속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함 속에서 생긴 말이다.
쿠르드인들이 사는 넓은 고원과 산악 지역은 오늘날 터키 동부를 비롯한 이란 북서부, 이라크 북부 및 시리아 북부와 일부 아르메니아 공화국을 포함한다. 쿠르드 민족은 성경에 의하면(창 10:2), 노아의 아들 야벳으로부터 유래하며, 그리스사람들에 의해 처음으로 ‘쿠르드’라고 불렸다.
인종적으로는 이란계 백인이고, 언어적으로는 페르시아에 가장 근접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며, 하나의 체계화된 문자와 말이 없이 현재 터키 공화국에서 사는 쿠르드인들이 사용하는 ‘쿠르만지’어를 가장 널리 사용하지만, 그 외에도 오랜 시간과 열악한 지역 조건으로 인해 다양한 쿠르드 방언이 발생해서 지역이 서로 다른 쿠르드인들끼리 대화가 잘되지 않은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쿠르드 민족은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데 바사’ 왕국 중 메대의 후손이며, BC 7세기에 고대 페르시아제국에 흡수되었다. 또, 10~13세기에는 한때 황제와 국왕에 예속된 군주가 통치하는 공국(公國)을 건설하기도 했으나, 19세기 중반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침략으로 다시 흩어졌다.
여러 사회적, 지리적, 정치적 이유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란 어렵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약 3천만 명 정도의 쿠르드인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중 약 반 이상이 지금 터키 공화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주변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독일, 구소련지역, 쿠웨이트, 레바논, 네덜란드, 프랑스 등으로 흩어져 이주하여 지금까지 2천 년 이상 국가의 형태가 없는 세계 유일한 종족 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반복되는 배반의 역사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으로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오랜 꿈을 간직해온 쿠르드 민족의 되풀이되는 ‘배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 내 쿠르드 민족이 수년 전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배경에는 결국 강대국들의 외교적 농간 때문에 독립 국가 창설이라는 민족적 염원이 중요한 순간마다 무산되어 온 ‘배반의 역사’ 속에서 나라 없는 소수민족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은 이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쿠르드 분쟁의 핵심 원인
첫째, 터키 안에서 강력한 반(反)쿠르드 감정은 쿠르드 민족주의 부활로 인해 생겨난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여러 폭력적 활동으로부터 기인한다. 19세기로 들어가면서 서구의 본격적 침탈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했던 당시 오스만제국의 정책에 대항해서 기득권과 민족적 권리를 수호하려는 쿠르드 여러 공국의 집요하고 조직적인 반란이 계속되었다.
특히,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크게 고무되어, 쿠르드 민족문제에 대한 국제적 여론과 독립 국가를 위한 외교적 접촉도 활발했다. 이들의 독립을 향한 노력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터키’라는 거대한 제국이 와해하면서 더욱 구체화하였다. 결국,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아르메니아와 이라크 지역 사이에 있는 산악 지역에 쿠르드 민족국가(쿠르디스탄)를 건설한다는 약속이 있었으나, 당시 터키 공화국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에 의한 독립전쟁으로 세브르 조약은 시행되지 못한 채 사문화(死文化)되었다.
1920년 4월 23일 앙카라에서 소집된 오스만제국 말기에 비공식적으로 구성한 터키 공화국의 전신인, ‘대(大)국민의회’에서는 합법적 통치기구인 정부를 구성하고 오스만 정부가 외국 강대국과 체결한 불공정한 조약들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이어서, 공화국으로서의 터키의 국제적 지위가 인정된 1923년 로잔 조약에 따르면, 쿠르드인의 권익보장은 고사하고 터키의 강력한 반발로 쿠르드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쿠르드인의 자치적 존재가 무시된 당시의 터키의 공화국 선포와 공화국이 지향하는 비종교적 세속주의는 오랫동안 잠재해 왔던 쿠르드 민족주의라는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즉, 쿠르드 민족은 1925년에 칼리프 제도를 폐지한 터키를 향해서 더 이상 충성을 바칠 의무를 갖지 않게 되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고유 언어에서 정통성을 찾으려는 민족 분리주의 운동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기르기 시작했다.
터키 공화국의 강력한 국가주의 표방
둘째, 터키 공화국의 강력한 국가주의 표방으로 터키 내 다른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또 다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터키 정부의 기본정책은 ‘쿠르드 정체성의 부정과 터키화’라고 볼 수 있다.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는 문화적 동화정책으로 자국 내 모든 인종이 터키어를 사용하도록 하며 오랜 시간 동안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였다.
또한, 터키 내에서 자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쿠르드 무장 세력들은 터키의 법질서를 파괴하거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자에게 중형을 명시한다는 형법 제141조, 제142조에 의해 가혹한 처벌을 받아 왔다. 한편, 쿠르드 출신 터키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쿠르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박탈당하고 국가통합을 저해한 분리주의자로 기소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외교적 힘겨루기(Power Game)
마지막 원인은, 쿠르드 민족이 산재한 지역의 자원과 이권을 사이에 놓고 터키를 비롯한 주변 국가 사이에 발생한 외교적 힘겨루기(Power Game)가 그것이다.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와 인근 아랍 국가나 이란과 함께 쿠르디스탄 유전지대의 이권 확보와 자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터키 공화국도 쿠르드 문제에 깊이 개입해왔다. 그리스나 러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터키와 이웃하면서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국가들은 암암리에 쿠르드를 지원하기까지 하면서 터키를 약화하려는 전략을 추구해 온 것도 사실이다.
3~4천 미터의 산악지대가 갖는 지형적 한계와 목축과 유목 생활에만 의존하던 그들에게 조직적인 정치통합을 통한 독립 국가의 건설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력으로 독립이나 자치정부의 수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강약과 이웃 국가와의 연대와 반목에 따라 ‘완전 복속’과 ‘부족적 자치’라는 약소 민족의 두 가지 선택이 지금까지 반복되어왔다. 결국, 독자적인 무장과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외세와 결탁할 수밖에 없는 특성이 쿠르드 민족 통합과 독립을 방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쿠르드 분쟁의 전망
현재, 쿠르드 민족은 어느 한 국가 또는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여러 국가에서 이른바 ‘집단적 난민’으로 살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쿠르드인이 현재 터키의 동부와 국경 지역에 밀집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소수민족으로서 터키 공화국에 동화되기보다 분리 독립을 추구하고 있어서 끊임없이 압제와 박해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이처럼 터키와 쿠르드 민족은 근원적으로 대립 구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쿠르드 민족이 자기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터키 공화국 안으로 동화되어 살지 않는 한, 그로 인한 분쟁은 해결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 민족은 팔레스타인인들과는 달리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동 지역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그 문제가 내정간섭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지원 외에는 달리 지원해 줄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쿠르드 문제는 터키 공화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그렇고, 터키뿐만 아니라 관련된 국가마다 쿠르드 민족을 향한 정치적 노선과 정책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라도 그 해결 방안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2의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일컫는 이 쿠르드 분쟁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유엔 같은 공신력 있는 국제단체를 통한 인도적이고 비정치적인 평화 활동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며, 이 지역에서의 무서운 전쟁을 막아 내는 데 적극 힘을 합쳐야 한다.
이는 지구촌 내 모든 전쟁과 평화는 이제 우리 모두를 관련 짓게 만드는 상생과 공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먼 남의 나라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중동의 평화가 곧, 한반도의 평화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거시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매년 호국의 달을 맞이하여 나라를 잃어버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 속에서도 세계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지만 국제 열강 사이에서 어떤 분쟁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저력이 더욱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졸업, 전,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현, 터키어권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M-NET KOREA)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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