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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한 권을 보내는 것이 선교사 한 명을 파송하는 거예요” – 장세희 선교사

복음 전파에 순종하는 장세희 선교사 (모로뷰)

장세희 선교사 (모로뷰)

경기도 군포에 있는 모로뷰 카페를 1년 만에 다시 찾았다. 지난해 1월, 기니비사우에 성경을 전달하겠다던 장재호 선교사 인터뷰가 본지에 소개 된 이후, 1600권의 성경이 기니비사우에 전달됐다. 장재호 선교사는 그 사이 장세희 선교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 부부는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과 알리고 싶은 기도제목들이 많다며 취재진을 초대했다. 이번엔 장세희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작년 장재호 선교사님 인터뷰 당시 성경 3만 권을 가져가기 위해 한창 기도하고 계셨는데, 성경 이야기부터 들려주세요.

“성경 3만 권을 들고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한 나라에 성경이 들어간다는 게 너무 흥분되는 일이더군요. 말씀 한 절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 한 사람의 변화로 마을이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어마어마한 일을 제게 보여주신 게 너무 기뻤어요. 그러나 현실 감각은 없었죠. 우리가 이 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 각 종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시는 분들이 모인 콘퍼런스에서 성경 협회 분들을 만났을 때, 현실 감각이 돌아왔어요. ‘이 한국 사람들이 크레올어 성경 3만 권을 한국에서 가져올 겁니다.’라며 소개를 해주시는데 갑자기 부담이 몰려왔어요. 그날 저녁에 큰 부담감에 성경을 읽고 있는데, 느헤미야 2장 20절에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이오.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은 그분의 종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오.”라는 말씀을 보게 됐어요.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이 일은 당연히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님의 사인으로 받고 주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이 소식을 담대하게 선포해야겠다고 생각됐어요. 그리고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이 모두 함께 해야 될 일이라며 한국에 와서 담대하게 간증을 하러 다녔어요.”

▲ 모로뷰 공동체 지체들. 제공: 장세희 선교사

성경 보내는 일이 성벽 쌓는 일

– 실제적인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재정도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성경 인쇄를 위해 펀딩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런데 그 방법은 아니라고 결론이 났어요. 당시에는 ‘증인’이라는 단어를 계속 묵상하던 때였거든요. 기니비사우에서 영어 캠프를 하면서 무슬림 아이들이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을 본 저희가 증인이잖아요. 이번에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면서 기니비사우의 일들을 나누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리며, 그렇게 한 사람씩 일으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어떤 일들을 준비하신 거죠?

“먼저는 성경을 3만 권 인쇄해야 했고, 그 성경을 운반할 수 있는 컨테이너를 구해야 했어요. 그러다 컨테이너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을 만나게 됐는데, 그분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결론은 아프리카에 컨테이너가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컨테이너를 구하고 성경을 담아서 아프리카로 보냈다고 해도, 나라에서 관세를 많이 책정하면 현지 기독교협회에서 그 재정을 다 내지 못할 때, 결국 성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선교사님이 겪었던 여러 문제들을 말씀하시면서 현지에서 이 문제가 확실히 해결돼야 보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잠깐 고민을 하시면서 중국에 성경이 들어간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한마디로 사람이 짊어지고 가면 관세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20명 정도를 모아보라고 하시더군요. 3만 권은 다 못가져가도 1만 권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면서요.”

–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됐군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설레었어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갈 사람들을 모았어요. 20여 명이 채워졌죠. 이제 성경만 준비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성경을 인쇄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는데, 한국에 성경 인쇄 가능한 곳이 세 곳밖에 없더군요. 그것도 최근에 한 곳은 화재가 났고, 또 한 곳은 문제가 있다고. 을지로에 아는 분이 연결돼서 찾아갔는데, 견적을 내주기보다 성경 인쇄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씀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내미셨죠. ‘혹시 이런 건 관심 없으세요.?’ 김종두 작가님의 만화 전도책이었어요. 그러면서 사장님이 전화 연결을 시켜주셨어요.”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잔치 위해 아프리카에서 결혼식

남편 장재호 선교사는 바로 다음 날 김종두 작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마침 사무실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인도에서 만화 전도책을 나누며 빈민 사역을 하는 원정하 선교사였다. 장재호 선교사는 7살 때부터 선교사를 꿈꿨던 이야기, 아프리카에 성경책을 가져가고 싶은 꿈 이야기, 예수님을 전하는 그림책을 가져가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장재호 선교사는 만화 전도책 번역판이 있으면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정하 선교사는 번역만 해오면 작업할 수 있는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김종두 작가는 장재호 선교사에게 만화 전도책을 전달하는 아프리카 대표를 맡아달라고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먼저 만화 전도책이 준비됐다.

“성경을 준비하는 동시에 결혼 준비, 필리핀 바세코 빈민촌 사역이 함께 진행됐어요. 필리핀 사역은 이미 저희 결혼과 상관 없이 날짜가 정해진 일정이었어요. 남편과 이전부터 ‘크리스천이라면 어떤 결혼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생각을 나누기도 했어요. 그러다 갚을 것이 없는 이들 앞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누가복음 14장에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고 돼 있잖아요. 그래서 바세코 빈민촌 아이들 앞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 영혼들도 섬기기 위해 기니비사우에서도 결혼식을 올렸어요. 어차피 필리핀 일정은 정해져 있으니 그때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그에 맞춰 먼저 한국에서 가족들끼리 결혼 예배를 드린 후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이후 두 달 동안 팀들과 함께 빈민촌에서 지내면서 나머지 사역을 감당하고, 기니비사우에서도 결혼식을 올렸어요.”

▲ 필리핀 바세코 빈민촌 아이들과 함께 한 결혼식(위)과 기니비사우에서 올린 결혼식. 제공: 장세희 선교사

– 그동안 기니비사우 성경은 어떻게 된 거죠?

“필리핀에 가기 전까지 계속 성경 인쇄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우리 지체 중 한 사람이 교회에 박스 회사를 하는 장로님에게 성경 인쇄소를 물어봤다고 해요. 그런데 장로님이 우리를 만나보고 싶어 하셨어요. 예전에 인쇄 사업을 하셨던 분이었어요. 특히 북한과 미얀마에 성경 보내는 일을 하려고 준비를 다 했다가 막상 못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이게 한이 됐다더군요. 몇 권 필요하냐고 하시길래 일단 5천 권 정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장로님이 대뜸 만들어 보겠다고 하셨어요. 재정이 얼마 드냐고 물었죠. ‘제가 할 일은 제가 하는 것이니 가지고만 가세요.’라고 하셨어요. 크레올어 성경이 이렇게 만들어졌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성경 인쇄

– 만화 전도책도 그렇고, 성경 인쇄도 그렇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너무 절묘하네요.

“이제 남은 것은 성경을 들고 가는 것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이 일에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어요. 마침 예수전도단의 한 선교사님이 남편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내용을 보고 연락을 하셨어요. 성경 가지고 가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고요. 예수전도단 설립자인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소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던 것이 성경의 빈곤을 끝내라는 것이었다고 해요. 이 일이 그 사명에 잘 맞다면서 10여 명이 합류하게 됐어요. 그렇게 40명의 팀이 꾸려져 성경을 짊어지고 기니비사우로 가게 됐어요. 아쉽게도 성경을 많이 가져가진 못했어요. 장로님이 성경책 재질을 아주 좋게 만드셔서 무게가 좀 나갔거든요. 그렇게 가져간 게 1600권이었어요. 그 성경은 3주 만에 소진됐죠.”

▲ 40여 명 한국인이 성경을 옮겨 기니비사우에 도착한 날. 사진: 장세희 선교사
▲ 한국에서 가져온 성경을 받고 기뻐하는 기니비사우 청년. 사진: 장세희 선교사

– 가뭄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 성경이 기니비사우에 흡수된 느낌이네요. 남은 성경은 어떻게 되는 거죠?

“3400권이 남았는데, 저희가 처음 3만 권을 약속했잖아요. 이제는 컨테이너로 보낼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어요. 만약 컨테이너가 가게 된다면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컨테이너가 될 거 같아요. 아프리카에서 가까운 유럽에서 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거든요.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컨테이너라면 꽉꽉 채워서 보내고 싶었어요. 먼저는 성경을 5천권 더 찍기로 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만화 전도책 10만 부도 준비하기로 했죠. 그러자면 아프리카에 맞는 흑인이 주인공으로 된 그림이 필요했어요. 상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요.”

– 모로뷰에서 많은 굿즈 상품들을 만들고 계시는데, 그림 실력이 이런 데서 아름답게 사용되는군요. 그런데 주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교회 나가게 된 건 초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가면서부터였어요. 교회에 갔더니 친구들도 너무 많고 재미있었죠.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서 교회를 떠났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면서 처음에는 너무 좋았어요.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1년도 못하고 그만두게 됐어요. 갑자기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져 버렸죠.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때 클럽을 다니기 시작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지면서 삶이 피폐해졌어요. 다른 것보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자살 시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제게 찾아왔던 질문은 ‘지옥이 있으면 어쩌지?’였어요. 그래도 제가 신앙생활을 십 년 이상 했잖아요. 실제 죽음 앞에 서니까 처음으로 천국과 지옥의 존재가 다가왔어요. 저는 교회 다니면서 당연히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내가 믿는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일단 하나님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직장도 다 그만두고 한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상 296호에 게재>

– 어려운 시간이 오히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네요.

“그때 모집 기한도 끝난 시기였는데, 따로 연락을 하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알고 보니 합숙을 해야 했고,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저한테는 생명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무조건 결론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훈련 받기로 했어요. 이곳에서 훈련받으면서 지옥이 없다는 게 확실하면 확실히 죽으려고 했던 것이죠.”

존재적 죄인 인정하며 십자가 믿어져

– 훈련은 어떠셨어요?

“입소하는 첫 날, 창세기 1장을 묵상해 오라고 했어요. 큐티책으로는 묵상을 해본적이 있지만, 어떻게 할지 잘 몰라서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검색을 해가면서 묵상을 해갔어요. 도착해서 지체들의 묵상 내용을 듣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저에게 성경이 재미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성경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안 믿는 친구들에게도 제가 묵상했던 것을 나눠줄 정도였어요. 얼마 후 한 주 동안 진행되는 복음학교라는 훈련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제가 진짜 죄인이라는 사실이 인정 됐어요. 세상에 빠져 살며 죄를 지었지만, 그렇게까지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 다니면서 주변 친구들보다 착하게 살고, 늘 양보하면서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해 왔죠. 그런데 제가 존재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이 그때 처음 인정 됐어요. 저는 지옥행이 확실했어요. 지금 지옥에 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그전에는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갈텐데,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냥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게 깨달아지면서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죠. 그때,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가 내 십자가라는 게 믿어졌어요. 죽어야 할 나 대신 예수님이 죽으시고 내게 예수님의 생명을 주신 거구나. 그리고 복음학교 마지막 날 ‘주 날 구원했으니 어찌 잠잠하리’ 찬양을 하는데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는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어요.”

▲ 장재호 선교사가 그린 그림 . 제공: 장세희 선교사

– 그 이후의 삶이 궁금해요.

“훈련은 1년 반만에 수료하고 6개월을 그 훈련 과정의 섬김이로 섬겼어요. 그사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주님께 부르심에 대한 기도를 시작했고, 섬김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그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어요. 당시 교회에 청년부는 저 혼자였어요. 이전에 친구들이 있었는데, 제가 훈련을 받는 사이 결혼을 해서 다 떠나버렸더군요. 주님이 하신 일은 많은데 교제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믿음의 교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어요. 다음 해에 신입생 2명이 들어오고, 군대에서 제대한 청년이 1명 오면서 이제 청년부가 4명이 됐어요. 신입생 환영회도 하고, 청년 모임을 시작하면서 제자훈련을 하게 됐어요. 제가 훈련을 받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님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제자훈련 교제를 가지고 청년들과 교제하다보니, 청년들이 복음에 반응하는 게 느껴졌어요. 청년들 숫자도 늘어나면서 10여 명이 모이게 됐죠.”

– 교회 사역이 시작됐군요.

“그때는 너무 행복했어요. 교회 친구들과 몇 명씩 짝지어서 예배 마치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방문하면서, 할머니들과 과일도 먹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도 떨고, 복음을 전했어요. 이런 삶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선교하는 마음으로 열방을 위한 느헤미야52 기도를 청년들과 함께 하고 복음 스터디도 했어요. 그런데 한가지 갈급함은 계속됐어요. 부르심에 대한 것이었어요. 복음학교에 참석했을 때, 저는 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는 제 새끼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인정됐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선교도 ‘하고 싶다, 하기 싫다.’라고 말하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더군요. 그 이후로 선교가 얼마나 좋은 건지 하나님이 계속 보여주시면서 선교사로 부르심을 확증했어요. ‘저를 어디로 부르셨나요? 저는 언제 가나요?’ 늘 기도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단체든지, 어느 나라든지 속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안정감을 찾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주님은 저를 어디로 부르셨냐고 질문할 때마다 ‘세희야, 나는 너를 십자가로 불렀어.’라는 마음만 주시는 거예요.”

– 십자가로 불렀다는 말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죠?

“에스겔 24장에 녹슨 가마 이야기가 나와요. 녹슨 가마에는 아무리 좋은 음식도 쓸모 없어진다는 거예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복음이 아무리 완전해도 내가 온전하지 않으면 불순물이 섞일 수밖에 없구나. 더 연단 받아야 되는구나. 완전한 복음에 온전한 믿음으로 화합할 때까지 훈련하시겠구나. 그리고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교회 사역을 즐겁게 하고 있었죠. 그래도 언젠가는 선교에 나가게 되겠지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 모로뷰에서 선교 사역을 같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선교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남편과는 인스타 친구였어요. 제가 한창 선교 가고 싶어할 때, 기니비사우 사진과 영상이 올라온 걸 보는데 부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좋아 보인다. 부럽다. 기도하겠다.’ 이후로 온라인 제자 양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친구와 함께 참여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모로뷰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기니비사우로 또 선교를 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루는 기니비사우로 함께 갈 사람들을 모집하더군요. 기도했어요. ‘주님, 가고 싶은데, 말씀을 주세요.’ 그때 아가서 5장을 보게 하셨어요. 술람미가 발을 씻고 누웠다며 시간을 끌다가 솔로몬을 놓쳐버리잖아요. 그 말씀으로 사랑하는 자의 반응은 지금 내 상태가 어떻든 상관 없이 그냥 달려가는 거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당시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제가 빠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님께 모두 맡겨드리고 기니비사우 선교를 가게 됐죠.”

남편 장재호 선교사는 온라인 모임을 통해 복음에 관해 나누고, 선교 사역을 함께 할 사람들을 콜링해 왔다. 2021년 10월에 시작된 모임에 장세희 선교사가 친구와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선교 사역 콜링에 응답한 사람들은 장재호 선교사가 일대일 제자양육을 하게 되고, 이 때 장세희 선교사와 온라인 제자양육 모임을 하게 된다. 기니비사우 선교는 3개월 기간으로 영어캠프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기니비사우는 물도 전기도 없어서 형제도 가서 지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장세희 선교사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염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잘지내는 장세희 선교사의 모습을 보게 됐다. 형제들도 힘들어서 다 못한 곡괭이질을 하고, 무슬림 아이들과 영어 캠프를 하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에서 아름답다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확증을 받고, 지난해 3월, 한국과 필리핀, 기니비사우에서 3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 온라인 줌으로 진행된 성경공부 모임. 사진: 장세희 선교사

– 기니비사우 선교는 어땠어요?

“영어 캠프를 하면서 한 무슬림 아이가 예수님을 믿게 됐어요. 영어 캠프 교재가 요한복음이었고 아이들과 교제 하면서 복음에 대해 설명을 해줬어요. 예수님을 믿게 된 아이에게 성경을 선물해 주고 싶어 현장 선교사님께 부탁드려서 성경을 받게 됐는데, 이게 마지막 성경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무슨 얘기냐고 했더니 서점에 성경책이 없어진지 오래라고 하셨어요. 성경을 구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고, 크레올어로 된 성경을 구해서 가져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죠.”

장재호 선교사는 성경 3만 권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지 277호 장재호 선교사 인터뷰 기사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어떤 분이 ‘재정을 구하는 게 기도제목이겠네요?’라고 물어봤는데,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어요.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하실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성경 한 권을 보내는 게 선교사 한 명을 보내는 거라는 말이 있어요. 성경 한 권 가는 것이 그 나라에 현지어를 하는 선교사 한 명을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되니 흥분이 되더군요. 또 아이들에게는 만화 전도책이 10만 권 가니까, 이렇게 되면 몇 명의 선교사가 나가게 되는 것이겠어요? 지금까지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일을 주님이 친히 인도하셨던 것처럼, 이번 일도 하나님께서 하실 거라고 믿어요. 필요한 것들 채워주실 때마다 순종하고 준비해서 또 전달하러 가야죠.”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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