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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에서 예배와 교회의 회복에 저를 사용해주세요” – 방예배 선교사

예배자를 세우는 방예배 선교사 (카자흐스탄)

방예배 선교사 (카자흐스탄)

5살 때 병상에서 죽어가던 작은 소년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셨다. 아직 병약한 그에게 하나님은 찬양할 수 있는 목소리를 주셨다.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그에게 하나님은 예배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름과 존재가 예배가 된 방예배 선교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방 선교사는 올해 초 K국에서 러시아어로 진행된 복음캠프에서 예배 인도를 섬겼다. 그는 러시아어가 아닌, 카자흐스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러시아어 찬양을 부를 수 있을 뿐이었다. 언어에도 구애받지 않는 예배. 모든 민족과 방언이 주의 보좌 앞에서 드리는 찬양이 이런 것일까? 막 예배를 섬기고 내려온 그를 무대 뒤 진행부실에서 만났다.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찬양 사역을 하고 있는 방예배 선교사입니다. 중앙아시아의 교회와 예배를 회복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찬양팀을 훈련하는 사역도 시작됐습니다. 주님이 저를 복음의 울타리 안에서 찬양과 예배로 섬길 수 있게 불러주셨는데, 그렇게 이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면서 주님 말씀 따라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예배를 회복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예배는 찬양과 말씀뿐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복음으로 예배자들을 진리의 사람으로 세우고 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단순히 주일 예배를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선교 완성을 위해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이죠. 이 일을 저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동역자를 구했는데, 하나님이 최근에 응답해주셨어요. 함께 교제하던 4명의 선교사들이 연합해서 좐도스라는 팀을 만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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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학교를 섬기고 있는 방예배 선교사. 제공: 방예배 선교사

‘영혼의 단짝’이라는 동역자들을 만나다

– 좐도스라는 팀은 어떤 팀이죠?

“제가 처음 카작에 왔을 때, 저 연배의 젊은 사역자가 없었어요. 그래서 교제할 만한 동역자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어요. 이후 기도응답처럼 한 가정씩 카작에서 만나게 됐어요. 모두 소속 교단은 달랐어요. 그 말은 여러 가지 생각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계속 그분들을 찾아가서 차 마시면서 교제하고, 시간 있으면 만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면서 교제를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놀고 먹고 쉬는 모임을 가졌어요. 그리고 1년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연합을 하라는 마음을 함께 갖게 됐어요. 그동안 교제하면서 예배자를 세우고 싶은 마음을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사역을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렇게 좐도스라는 팀이 탄생한 거죠. 좐도스는 ‘영혼의 단짝’이라는 의미의 카작어에요. 각자가 하는 사역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 사역을 위해서도 함께 돕고 지원하면서 서로를 도왔어요. 지금은 예배가 있는 어느 곳이든 가서 섬기고, 예배자들을 훈련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 어떻게 예배자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1학년 때 제가 카작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어요. 그 무렵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선교할 마음을 품게 됐어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무엇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일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요?’ 기도했는데 ‘내가 너를 예배하는 사람으로 세웠다.’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중앙아시아 지역에 가서 예배해라. 예배하지 않는 곳에 가서 예배해라.’ 이런 마음을 품게 되고 ‘그럼 나는 중앙아시아에 가서 예배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게 됐어요. 그때 이름도 ‘예배’를 사용하게 됐어요.”

– 매우 단순한 순종이었네요. 어떻게 주님을 만났기에 그런 순종이 가능했을까요?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저는 5살 때 백혈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작은 아이였어요.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어머니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어머님은 하나님께 서원하면서 기도하셨어요. ‘주님, 이 아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 땅에서 데려가셔도 주님 것이요, 살리셔서 뭔 일을 해도 주님 것입니다. 뜻대로 하세요.’ 그런데 주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기적적으로 저의 병이 낫고 회복이 됐어요. 의사도 기적이라며,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제게 그 얘기를 계속 해주셨어요. ‘○○아, 너는 하나님이 살려 주셨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어머니가 집에서 피아노를 치시면 저를 부르시고 옆에 앉히시고 찬양하자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네가 찬양하면 엄마는 힘이 난다.’며 늘 격려해 주셨어요. 그것이 어린 제게 큰 힘이 됐어요.”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의 마음을 품다

– 어머니와 함께 찬양하는 삶이 시작된 거군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형이 찬양 인도를 하는 것을 보고 저도 찬양 인도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 저의 그 이야기를 들은 누나가 ‘네가 무슨 찬양 인도자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때는 정말 어렸고 노래할 줄도 몰랐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게 당연했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찬양 인도를 하게 됐어요.”

방 선교사는 복음캠프 예배 인도를 섬기며 같이 찬양팀을 섬기는 청소년들을 보며 자신의 옛 모습이 생각났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찬양 인도자가 되고 싶어 했던 자신을 회상하며,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많이 성장시켜 주셨구나. 예배자로 만들어주셨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대학에 진학해서 대학생 선교단체를 섬겼어요. 여름 수련회 때 1만 명씩 모이는 단체인데, 그러면 대부분 아실 거예요. 그때 저를 학생 찬양단 리더로 세워주셔서 찬양 인도자로 섬기며 하나님이 예배자로 훈련을 시켜주셨던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수련회에 참석하면서 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선교사 콜링 시간에 응답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나는 하나님 아들이구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는데, 그때 선교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카자흐스탄으로 비전트립을 가게 됐어요. 그때 이 나라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됐어요. 그래서 2학년이 되며 전공을 선택할 때,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로 했어요.”

–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곳에 오시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있었겠죠.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 훈련을 받고 2009년에 카작으로 단기선교를 오게 됐어요. 그게 만 24살이네요. A지역에서 2년 동안 사역을 했어요. 음악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와 노래를 가르치고, 친구를 사귀고 전도도 했어요. 카작인 집에서 홈스테이 하면서 카작 음식을 먹으면서 언어를 배웠어요. 카작에서 알게 된 제 인생에 있어 중요한 친구가 있어요. 세르게이(가명)라는 친구죠. 제가 가르치던 음악학교 건너편 문구점의 아들이었어요. 제가 악보를 복사하기 위해 자주 문구점에 다니면서 친구가 됐어요. 그는 신실한 무슬림이었어요. 목에 코란을 메고 다니고 하루에 5번 기도를 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대학생 선교팀이 우리 도시를 방문했어요. 한 주 동안 한국어와 영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하고 마지막 날 복음 초청 잔치를 했어요. 세르게이와 함께 일주일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참석했어요. 마지막 복음이 선포되고 있었는데 세르게이가 중간에 나갔어요. 이 사람들을 신고하겠다고 하더군요. ‘내가 너를 존중하지 못했다.’며 말리느라고 혼이 났어요. 얼마 후 저는 단기선교사 과정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세르게이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책자를 선물해 주고 편지 한 장을 써주고 왔어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내가 기도할 거다. 너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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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학교를 섬기고 있는 방예배 선교사. 제공: 방예배 선교사

주님의 때에 현지인의 회심을 보다

– 세르게이라는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에 돌아와 결혼을 하고, 가장 먼저 아내에게 카작을 보여주고 싶어 A지역으로 갔어요. 친구들을 만났는데 세르게이도 나왔어요. 맛있게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세르게이가 다가와서 할 말이 있다고 했어요. ‘나 예수님 영접했어.’ 소름이 돋았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들어봤더니, 대학교에 들어가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힘이 들었을 때, 예수 믿는 친구가 예수님께 기도하면 평안을 주실 거라고 말을 했다고 해요.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평안을 주셨다면서 그렇게 예수를 믿게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저를 카작으로 초청했어요. 주님의 사인으로 받고 그렇게 아내와 교단 선교 훈련을 받고 2015년에 카작으로 오게 됐어요.”

– 그런데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결혼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20살 때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당시 아내는 저를 전도하기 위해 사탕을 주려고 했어요. 제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공항 가는 내내 교제를 했어요. 제 간증과 은혜를 나누고 헤어질 때 제가 전화번호를 물어봤어요. 이후 동갑내기 친구로, 서로 기도로 응원하는 사이가 됐어요. 7년 동안 멀리서 응원하는 좋은 친구로 지내다가 제가 카작으로 단기선교를 나올 때, 아내가 저를 후원해줬어요. 카작에 있으면서 장기선교사로 살고 싶은데, 저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먹으면서 살고 싶다며 그렇게 함께 지낼 한국인 배우자를 위해 기도했어요. 그때 아내가 소셜미디어로 제게 보낸 메시지를 받게 됐어요. ‘잘 지내냐. 기도하겠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어요. 저는 그걸 사인으로 받고 한국에 돌아가면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가서 아내를 만나 교제하던 중, 아내가 배우자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이 자매를 구원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학교로 찾아가서 좋아한다고 고백했어요. 그런데 거절을 하더군요. 그래도 기도를 해보겠다고 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하나님이 그때 아내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해요. 그때 아내도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지만, 기분이 안 좋았대요. 제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래도 주님의 강권적 은혜로 결혼을 하게 됐어요.”

<이상 295호에 게재>

– 다소 과정은 거치셨군요. 그리고 카작으로 가셨나요?

“첫째 아이 100일 때 선교훈련원에 들어가서 둘째를 임신하고 카작으로 나갔어요. 물과 피를 쏟으신 주님처럼 카작에 가서 물과 피를 쏟겠다는 마음을 주셨죠. 카작 영혼들을 위한 생명의 수고를 하겠다며 둘째를 카작에서 낳았어요. 그때 카작 친구들이 한국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는다는 걸 알고, 기름이 둥둥 뜬 미역국을 산후조리하라고 끓여줬어요. 친구가 한마디 하더군요. ‘다른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 가서 출산하는데, 너희는 정말 카작 영혼들을 사랑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 아이를 낳고 먼 이국 땅에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힘든 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가 만 서른 살이 됐을 때였어요. 아이들도 어리고, 저희도 부부가 된지 얼마 안됐고, 사역 경험도 없고, 처음에는 전쟁 같았어요. 아내는 열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에너지가 넘치고 죽으면 죽으리라며 돌진하는 스타일이죠. 그런데 아내는 사역을 못하고 애들을 키워야 되니까 대신 저를 계속 떠밀었어요. ‘여보, 예배하다 죽어야 돼.’ 그렇게 추운 겨울에 복음캠프가 열리면 섬기고, 영하 35도 되는 날씨에도 전도 여행을 다녔어요. 그러다 제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어요. 자고 일어나면 이불이 젖어있는 거예요. 백혈병이 재발한 줄 알고 파송된 지 2년 만에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건강검진을 했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고 위벽이 헐은 정도였어요. 주위 분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신경정신과를 추천해주셔서 갔는데,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어요.”

안식하며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다

– 어려운 시간을 맞으셨군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그동안 집에서도 사역자의 모습으로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편하게 쉬지 못하고 애써 기도하고 말씀 보고 했던 것들이 심적으로 부담이 됐던 것 같아요. 또 제가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어서, 아내가 제게 화가 날 때는 표현하라도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저는 아내가 힘든 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카작에 온 것도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하다보니까 병이 났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회복하는 시간 동안 약도 잘 먹고, 부부 상담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내 안에 문제가 무엇인지 보고 삶의 태도들이 변하게 되면서 회복도 일어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은 제가 선교사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먼저 회복된 자가 돼야 다른 사람들을 회복시킬 수 있고 존재로부터 흘러가는 거잖아요. 내 안에 있던 병든 모습들, 아내에게 있던 병든 자아를 복음으로 회복시키시려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꺼내서 보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셨어요. 그게 해결이 돼야 이 땅을 섬길 거 아니겠어요. 처음 한국에서 치료를 받을 때는 다시 선교지로 나가야 되나, 그만 둬야 되나 생각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나를 지금까지 선교사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일하셨나를 깨닫게 하셨어요. 어릴 때 병에서 낫게 해주시고, 찬양 인도자로 세워주시고, 카작에서 선교의 비전을 갖게 됐고, 러시아어과에 들어갔고, 카작인과 살았고, 아내를 만나서 선교사까지 되게 하셨잖아요. ‘나 한 사람을 선교사로 세우시기 위한 주님의 열심이 있으셨구나. 내가 안 가면 누가 가겠나.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빚으시고 나를 선교사로 불러주셨지.’ 깨닫게 되면서 다시 선교지로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19년에 다시 카작으로 돌아왔어요.”

– 그때부터 카작에서 선교사의 삶이 달라졌겠군요.

“어머니는 제가 선교사로 나올 때부터 많이 걱정하셨어요. 신학도 안 하고 어떻게 선교를 하려고 그러냐. 그러나 저는 연합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 못해요. 나는 내 영역을 하고, 다른 분은 다른 역할을 하고, 연합해서 할 겁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는 어렸을 때였는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 마음이 동역자들과 공유된 것 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고 싶었어요. 말씀의 원칙대로 연합해서 사역하는 데 실제적인 증인이 되고 싶었어요. 복음캠프나 한국의 복음학교를 섬기는 팀을 보면서 그 스피릿을 배웠던 거 같아요.”

– 복음학교를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결혼하고 선교를 나오기 전에 복음학교에 참석했어요. 저의 가장 힘든 문제는 끊어지지 않는 죄의 문제였어요. 샘솟는 죄를 어떻게 해결을 못하는 거예요. 철야기도를 가서 가슴을 치면서 상상으로 나를 죽이기도 했는데, 복음학교에 가서 믿음으로 십자가에 연합하는 것이란 사실을 듣게 됐어요. 정말 내게 이것이 복음이었어요. 찬양 인도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해결되지 않는 존재적 죄인인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켰음을 확증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얼마나 제게 기쁜 소식이었는지 몰라요. 제가 몸이 약하다보니 부담 되거나, 어려우면 쉬려고 하는 경향이 많았어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해야 되는 영역이 있는데도요. 이런 저의 실존을 복음캠프를 섬기면서 보게되면, ‘십자가 앞에 나가야겠다. 더 내어주고, 나를 쳐서 복종하고, 주님이 세우신 원형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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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제공: 방예배 선교사

다시 한번 카작의 부흥을 기도하다

– 카작 영혼들을 섬기면서 주님이 주신 마음이 있나요?

“카작 사람들은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한 이후, 공허함을 느끼고 많이들 교회로 왔다고 해요. 교회에서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들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최근 들어 카작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돈이 우상이 되다보니까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어졌어요. 코로나 이후에 교회도 힘을 잃었어요. 지금 계속 기도하는 건 카작에 다시 한 번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이 일을 위해 저를 사용해 주세요. 예배하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교회를 회복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 말씀해 주세요.

“좐도스 동역자들과 연합해서 중앙아시아 예배자들을 복음 안에서 잘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성결한 예배자가 되고 싶어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주님 다시 오실 때 예배하는 사람으로 주님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 끝으로 선교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처음 선교사로 선교지에 나왔을 때는 제 열심이 커서 누구든지 선교사로 나와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제 아픔들, 병든 모습, 지치고 피곤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도 어렵고, 한국 사람들도 못 만나고, 가정에서 아내와 외롭게 지내야 하는 이런 선교사의 삶이 쉽지 않았어요. 아무나 오라고 해서는 큰일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회복되고 연합해서 사역하는 시간이 왔잖아요. 주님이 소망을 주시고 주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보게 된 거죠. 하나님이 소망을 주셨으면 하나님이 이루세요. 그거 믿고 오시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주님이 소망을 주셨으면 시작하신 주님을 믿고 따라가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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