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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칼럼] 좌파 정부는 수능시험도 선문답 같은 헤겔변증법인가?

사진: 유튜브 채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캡처

수능 국어 최고난도 문제로 꼽힌 ‘헤겔 변증법 8번’
지문독해도, 선택지도 난해…고3 출제 적절했을까

좌파 정부여서 수능시험에도 선문답과 같은 헤겔의 변증법이 등장하는 것인가? 앞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고등학교 교실에서 헤겔, 칼 마르크스, 플라톤을 열린 사회의 적들로 분석하고 비판한 오스트리아의 칼 포퍼의 사상을 가르쳐야 한다.

애매모호성, 모순성 그리고 난해성이 고차원의 진리의 척도는 아니다. 불교학자들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같은 반논리 코드가 담긴 선문답을 헛소리라고 인정한다. 그렇듯 헤겔의 변증법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정반합(正反合)으로 이뤄지는 변증법적 필연성을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칼 마르크스의 예언도, 헤겔의 변증법적 예언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칼 포퍼의 주장처럼 이 두 사람은 모두 헛소리하는 거짓 예언자들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했다. 영국의 논리실증주의자들(예를 들어 버트런드 러셀)은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리”와 수학에 기초한 철학을 전개했고, 특히 그의 분석철학은 당시 영국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헤겔의 변증법 철학에 대한 비판작용으로 등장했다. 영국 계몽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오스트리아의 논리실증주의자들(예를 들어 뷔트겐슈타인)과 비엔나 학파는 독일 나치에 의해서 탄압받고 추방되었다. 헤겔 전공자로 젠더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고 있는 주디스 버틀러도 독일 관념론이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프로이센의 국가적 철학자 헤겔의 내적 모순(안티테제)에 집착하는 변증법적 사유와 그의 국가주의적-사회주의적 국가론은 비판적으로 성찰되어야 한다. 반아리스토텔레스적인 논리인 내적 모순에 집착하는 헤겔의 변증법은 독일 특유의 반계몽주의적-낭만주의적 철학의 산물이다.

문화막시즘은 헤겔막시즘(Hegelian Marxism)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책들인 “계몽의 변증법”과 “부정변증법”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68 신좌파 운동에서도 헤겔적인 변증법은 여전히 주요 논리로 작동한다. 미국 대학가의 급진좌파와 안티파 운동을 최근 대표적으로 비판하는 학자 제임스 린제이(James Lindsay)는  모든 좌파의 “변증법적 신앙”을 분석하면서 이 21세기 좌파의 변증법적 신앙 배후에 존재하는 헤겔 철학을 비판한 바 있다.

사회주의는 독일제였다. 히틀러도 사회주의자였다. 문화막시즘은 프로이트막시즘(Freudomarxismus)이기도 하지만 헤겔막시즘(Hegelian Marxism)이기도 하다. 안토니오 그람시(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이론가), 게오르그 루카치(헝가리의 공산주의 이론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슬라보예 지젝(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등 68 신좌파도 헤겔막시즘을 대변한다. 그래서 “계몽의 변증법”과 “부정변증법”과 같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책들처럼 신좌파도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에 집착한다. 좌파의 철학적 엔진은 부정주의적, 반논리적 그리고 반아리스토텔레스적 변증법이다.

헤겔과 칼 마르크스는 적과 같은 쌍둥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변증법에 집착한 철학자들이다. 내적 모순에 집착하는 좌파의 변증법은 내부로부터의 체제전복(subversion)의 논리로 작용한다. 하지만 구소련과 중국에서의 공산주의 혁명은 내적 모순과 관련된 변증법이 아니라, 가진 자에 대한 불타는 질투심과 르상티망(약자가 강자에 대해 갖는 원한, 열등감. 편집자주)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좌파/사회주의 사유가 부정주의적이고 반이성주의적이고 반논리적인 것은 바로 변증법적 사유 때문이다. 마르쿠제와 푸코를 계승하는 문화막시즘의 사회정의 운동(wokeness)도 기독교 문화에 대한 변증법적 지양(Aufhebung), 곧 내부로부터의 체제전복을 시도한다.

하지만 헤겔의 반아리스토텔레스적이고 반논리적 변증법은 독일 특유의 반계몽주의적 사유로부터 파생했다. 제임스 린제이는  헤겔 철학의 “사변적ㅡ” “신비주의적” 그리고 “영지주의적” 차원에 대해서 잘 지적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치철학자 에릭 푀겔린은 헤겔철학의 영지주의적 차원을 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헤겔이 독일 최초의 철학자로 높게 평가한  야곱 뵈메는 매우 영지주의적이고 난해한 철학자였다. 독일 튀빙엔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한 삼총사 헤겔, 쉘링 그리고 횔덜린 중 쉘링은 영지주의에 깊이 천착한 학자이다. 횔덜린도 광기로 생을 마감한 독일 비극 시인이다.

그래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인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라는 저서에서 쉘링에서부터 히틀러에까지 지속되는 독일철학의 비이성주의가 독일 제국주의를 생산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물론 헤겔은 신학전공자로서 기독교적-삼위일체론적 역사철학을 전개했지만, 그의 변증법적 논리는 이러한 독일 특유의 낭만주의적, 반이성주의적 그리고 반계몽주의적 사유의 산물이다.

구소련의 공산주의자들, 중국 공산당 그리고 북한 공산당은 모두 이러한 헤겔적-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의 역사적 필연성을 신앙했던 사실을 기억할 때, 헤겔의 변증법이 매우 고차원의 논리와 지혜인 것처럼 수능문제로 출제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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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박사 | 전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초빙교수.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 수학 및 연구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신학박사(Dr.theol). 학제적 연구프로젝트 박사후연구자 과정(post-doc) 국제 지라르 학회(Colloquium on Violence and Religion)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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